6월 초1일 병오[六月 初一日 丙午]
조금 맑고 간혹 비가 내림. 아전 박씨 편에 주령에게 편지를 부쳤다. 섬의 백성들이 주령의 선정에 감화하여 비석을 세운다고 하였다. 그 소식을 들으니 매우 기뻤다. 저녁에 음산하게 비가 내리고 습하여 나그네의 수심을 견디기 어려웠다.
초2일[初二日]
아침에 비가 퍼붓다가 낮에 조금 갬. 아전 박씨 편에 답장이 왔다. 최야(崔也)에게 줄 돈 50냥을 내가 가져다 쓰는 것을 허락한다고 하여 매우 감격하였다. 용천 노파 편에 주령에게 편지를 부쳤다. 즉시 답장이 왔는데 병은 여전하다고 하였다.
초3일[初三日]
종일 비가 내림. 오교(吳校)에게서 또 술 1사발을 가져왔다. 아전 김씨가 술 2사발을 보내 주어 감사하였다. 내아(內衙)가 여러 날 동안 몹시 아파서 걱정이 되었다. 소포(少浦)의 김 의원에게서 가미패독산(加味敗毒散) 2첩을 지어 와서 복용하였다. 저녁에 술 몇 잔을 마시고 나그네의 회포를 풀었다.
초4일[初四日]
종일 비가 내림. 개천의 물이 크게 불어났다고 하였다. 사령(使令) 편에 주령에게 편지를 부치고 아울러 진신[泥鞋] 견본을 보냈다. 즉시 답장이 왔는데, 근자에 오한이 든다고 하였다. 걱정이 되었다. 또 김제원(金濟元)에게서 편지가 왔다. 황 참봉의 집에서 꿀 1종지를 얻어 와서 술을 꿀과 섞었다. 이흥복(李興福)에게서 농어 1마리가 왔다. 5전이 들어왔는데 침모(針母)에게 2전을 빌려 주고, 어린 닭 2마리를 샀다. 저녁에 내아(內衙)의 통증이 심하여 걱정스러웠다. 오늘 저녁은 고조할아버지의 기일이다.
초5일[初五日]
오늘은 소서(小暑)이다. 종일 비가 내림. 주령이 병저리(兵邸吏, 병영의 저리)가 가져온 문서를 어제 보내 주었다. 동학(東學)을 믿는 유생이 초토사(招討使)에게 사정을 하소연한 것으로, 처음에는 백성의 나라의 근본이라고 언급하고, 중간에는 폐단을 늘어놓고, 마지막에는 국태공(國太公)을 감국(監國)으로 받들자고 하였다. 우교(右校)가 후추(胡草) 반 급(級)을 보내 왔다. 저녁에 침모에게 옷을 다 빨았느냐고 물었다.
초6일[初六日]
비가 내리고 간혹 맑고 바람이 붐. 저녁에 비가 많이 왔다. 하루 종일 「강고(康誥)」 (『서경』의 편명)의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한다[明德新民]”는 대목을 공부하였다.
초7일[初七日]
맑고 더움. 홍국(弘局) 편에 주령에게 편지를 부쳤는데 답장이 오지 않았다. 김아(金雅)에게 편지를 부쳤더니 즉시 답장이 왔다. 황 단천이 왔다 갔으며, 참외를 보내 왔다. 이방으로부터 『산고(散稿)』1권을 들여왔는데, 청나라 사람의 시가 있었다.
隔水相思信息遲 물을 사이에 두고 서로 그리워하지만 소식이 더디구나. 門前爲種綠楊枝 문 앞에 푸른 버드나무 가지를 심으니 繁陰細雨新晴後 우거진 녹음에 가랑비 내리다가 새로 갠 뒤에 兩兩黃鸝喚友宜 꾀꼬리는 쌍쌍이 정답게 지저귀네.
또, 손가락에 봉숭아물을 들인 내용의 시가 있었다.
金鳳仙花血色殷 핏빛 같은 봉숭아로 佳人染得指尖端 아름다운 이가 손톱을 물들이네. 彈琴亂落桃花片 거문고 탈 때는 어지러이 떨어지는 복사꽃잎이요 行酒輕浮玳瑁盤 술잔 돌릴 때는 가볍게 떠다니는 대모반(玳瑁盤)이로다 摩鏡火星流夜月 거울을 닦으니 화성(火星)이 달 속으로 흐르고 掃眉紅雨過靑山 눈썹을 그리니 붉은 비가 청산을 지나가네. 嫣然一笑支頤坐 아리땁게 웃으면서 턱을 괴고 앉으면 依舊臙脂點玉顔 아름다운 얼굴에 예전처럼 연지를 찍은 듯하네.
초8일[初八日]
밤에는 크게 우레가 치고 비가 내렸으며 낮에는 흐리고 간혹 비가 내림. 술이 떨어져서 마시지 못하여 더욱 무료하였다. 이방이 양시(楊市)에 가면서 유진(油袗, 비옷)을 빌려갔다. 백목(白木) 20자의 값은 4냥이고 갓끈의 값은 1냥 1전이었다.
초9일[初九日]
밤에 크게 우레와 비바람이 쳤다. 새벽에 일어나 등불을 밝히고 앉아서 아침을 기다렸다. 이는 성인(聖人)이 “반드시 변화한다[必變]”고 한 뜻이다. 낮에는 맑고 더웠다. 고 중군(高中軍)이 왔다가 갔다. 저녁에는 고향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초10일[初十日]
종일 비가 내렸으며, 낮에는 크게 우레와 비바람이 쳤다. 섬의 이한종(李漢宗)이 편지와 함께 마른 농어 1마리를 보냈다. 즉시 답장을 보냈다. 이시권(李時權) 군에게 편지를 보냈다. 저녁에 고향 생각이 더욱 간절하였다.
11일[十一日]
밤새도록 비가 내리고 낮에는 조금 갬. 여러 군교(軍校)들이 가는 편에 주령에게 편지를 부쳤으며, 즉시 답장이 왔다. 아전 원(元)씨가 중국 두루마리[唐周紙] 1축을 보냈다.
12일[十二日]
맑았다가 흐림. 주령에게 편지를 부쳤으나 답장이 오지 않았다. 김 중군(金中軍)이 꿀을 탄 술 몇 잔을 들여보냈다. 저녁에 그것을 마시고 나그네의 회포를 풀었다. 주령이 중군(中軍)을 불러 갔는데, 관노·사령을 진휼하는 일에 대해 분부하였다고 한다.
13일[十三日]
아침에 우레가 치고 비가 내림. 이방이 양시(楊市)에서 돌아왔다. 오늘 저녁은 고조할머니의 제삿날이다.
14일[十四日]
흐리고 간혹 비가 내림. 이방이 가는 편에 주령에게 편지를 부쳤다. 즉시 답장이 왔다. 또 김제원의 편지가 도착하였으며, 『주서백선(朱書百選)』 3권을 보내 왔다. 감사하였다. 김 중군이 들어와서 나가자고 하여 같이 나갔다가 크게 취하여 들어왔다. 밤새도록 몹시 아팠다.
15일[十五日]
오늘은 초복(初伏)이다. 흐리고 더움. 이경세(李京世)가 술 1사발을 보내 주었다. 종일 몹시 아팠다. 이방이 섬에 들어간다고 하였다. 창고의 비축미 10석으로 관속(官屬)들을 진휼한다고 하였다.
16일[十六日]
맑고 더움. 주사별장 김명현(金明玄)이 술 반 사발을 들여보냈다. 공방(工房)이 제수를 들여보냈다. 나졸(羅卒)이 가는 편에 주령에게 편지를 부쳤다. 답장이 왔는데, 병세는 오한 때문에 종종 괴롭다고 하였다. 고 함종(高咸從)이 의주에서 와서 만났다. 안경 50경(鏡) 1개를 사가지고 왔으며 값은 7냥이라고 하였다. 서울 소식을 들으니, 청(淸)과 왜(倭)가 병선(兵船)을 불러 경강(京江)에 정박하고 있다고 하였다. 몹시 걱정스러웠다. 저녁에 술 몇 잔을 마셨다.
17일[十七日]
맑고 더움. 주령에게 편지를 부쳤으며, 답장이 왔다. 또 김제원에게 편지를 부쳤다. 포제(褒題)를 베껴 오기 위하여 박도겸(朴道兼)을 용천으로 보냈다.
18일[十八日]
맑고 더웠으며 간혹 비가 내림. 섬에 사는 이창규(李昌圭)가 말린 새우 몇 되를 보내 왔다. 섬의 장리(將吏)들이 모두 나왔다. 말을 타고 덕계로 갔다. 오리정(五里亭)에 이르렀을 때 비를 만나서 황재명(黃在明)의 집으로 피해 들어갔다. 이군(李君)을 불러서 만나 보았다. 날이 갠 뒤에 출발하여 곧장 김아(金雅)의 집에 도착하였다. 주령의 병세는 마찬가지였다. 포제(褒題)를 보니, “열악한 진보(鎭堡)에서 백리에 걸쳐 합당한 조치를 하였다[何有殘堡合施百里上]”고 하여 매우 기뻤다. 신 첨지를 만나 보았다. 육지와 섬의 장리(將吏)들이 모두 와서 문안하였다. 저녁에 돌아왔다. 저녁을 먹은 뒤에 이군이 들어왔다. 섬의 좌교(左校)를 불러서 관재장(官齋長)의 일을 의논하였다. 새 옷을 입었다.
19일[十九日]
맑고 더우며 간혹 비가 내림. 이창규(李昌奎)가 술 몇 잔을 들여보냈다. 주령이 김제원에게 서문(序文)을 써서 보내 주라고 나에게 부탁하기에 골똘히 생각하였다. 이방이 용천 노파의 은가락지 값으로 26냥 6전 3푼을 빌려 주었다고 하였다.
20일[二十日]
밤에 비가 내렸으며 낮에는 맑고 더우며 간혹 비가 내림. 주령에게 편지를 부쳤으나 답장이 오지 않았다.
21일[二十一日]
맑고 더움. 아전 김씨가 술 1사발을 들여보냈다. 김제원의 서문(序文)을 짓고 아전 박씨에게 글씨를 쓰도록 하였다.
22일[二十二日]
맑고 더움. 주사별장 김명현이 술 반 사발을 들여보냈다. 중군(中軍)이 참외 몇 개를 들여보냈다. 용천의 수통인(首通引) 박근양(朴近陽)과 공리(工吏) 오병하(吳丙夏)가 와서 만났다.
23일[二十三日]
맑고 더움. 저쪽 사람들의 군함이 강을 메우면서 가서 사하자(沙河子)에 진을 쳤다고 한다. 민심이 어지러웠다.
24일[二十四日]
맑고 더움. 주령의 편지가 왔다. 일본 사신 오토리 게이스케(大鳥圭介)가 우리나라에 올린 글과, 승지(承旨) 서상교(徐相喬)가 천진(天津)에서 보낸 전보(電報)가 도착하였다. 고 중군(高中軍)이 와서 술을 가져갔다. 주령에게 답장을 부쳤다. 또 김아(金雅)에게 편지를 부치고 서문(序文)과 이전의 운(韻)에 화답한 시를 보냈다. 어제 저녁과 오늘 저녁에는 술을 마셨다.
25일[二十五日]
오늘은 중복(中伏)이다. 밤에 비가 내리고 낮에는 맑고 더움. 주령에게 편지를 부쳤더니 답장이 왔다. 어제 덕계로 보낸, 이전의 운(韻)에 화답한 율시(律詩) 2수와 절구(絶句) 1수는 다음과 같다.
율시 1
知己幸逢長者寬 지기(知己)가 다행히 너그러운 장자(長者)를 만나
通心主客兩相歡 주인과 손이 마음을 통하고 서로 기뻐하네.
風流太守同留席 풍류 넘치는 태수가 자리를 함께 하고
勝會高朋每正冠 성대한 모임의 훌륭한 벗들은 늘 의관을 단정하게 하네.
暍病長歸應不起 더위 병은 멀리 가서 다시 생기지 않고
雷鳴東野倘無寒 동쪽 들에 천둥소리 나서 아직 춥지 않네.
願隨孤月詩家宿 외로운 달을 따라 시가 있는 집에서 머물면서
長得諸君帶笑看 오래도록 여러분들을 웃으며 바라보고 싶네.
율시 2
南遊遊子又西遊 남쪽에서 놀던 나그네 또 서쪽에서 노네.
到處萍鄕是幷州 도처의 평향(萍鄕)은 제이의 고향 병주(幷州)로다.
宇宙百年人已老 우주에서 백년, 인생은 이미 늙었고
風塵萬事水東流 풍진 속의 만사, 물은 동쪽으로 흐르네.
有名高士開書牖 유명하고 뛰어난 선비는 서재의 창문을 열고
無事將軍下戍樓 일없는 장군은 수루(戍樓)에서 내려오네.
長夏孤堂狂叫客 긴 여름날 외로운 당(堂)에서 미친 듯이 부르짖는 나그네
緣踈何敢願同留 세상을 멀리 하니 어찌 함께 머무르자고 할 수 있겠나.
절구 獨在愁城未解圍 홀로 근심의 성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네. 問君何事却忘歸 그대 무슨 일로 돌아갈 것을 잊어버렸나 靑山誰喚故人去 청산은 누가 불렀나, 벗님들 떠나가네. 伐木丁丁黃鳥飛 나무 찍는 소리 쩡쩡 들리고 꾀꼬리 날아드네.
26일[二十六日]
맑고 더움. 주령에게 편지를 부쳤더니 답장이 왔다. 청군(淸軍) 1만여 명이 의주성(義州城)에 주둔하고 있으며, 또 안주(安州)와 평양(平壤) 두 지방에도 군대를 나누어서 주둔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혜당(惠堂, 선혜청당상) 민영준(閔泳駿)이 이달 12일에 잡혀 갇혔다고 하였다. 나라와 집안을 걱정하며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여러 장리(將吏)를 불러서 성(城)을 잘 지키라는 뜻으로 분부하였다. 새 옷을 입었다.
27일[二十七日]
맑고 더움. 말을 타고 덕계로 가서 주령을 만났다. 청군(淸軍) 1만여 명이 과연 상경하여 연로 각 고을에서 온갖 폐단이 발생하였다. 특히 백성들의 소로 무기를 실어서 가버리니 인심이 소동하여 차마 보고 들을 수가 없었다. 고향집은 까마득히 천리 밖에 있어서 소식이 막연하니 이를 장차 어찌하겠는가? 하루 종일 주령 및 주인과 문장을 논하다가 거기서 잤다.
28일[二十八日]
맑고 더움. 여러 사람들과 시회(詩會)를 열었다. 술과 안주가 나왔다. 주령의 시는 다음과 같다.
關防地重愧人輕 변방의 중요한 지역에 사람이 가벼워 부끄럽네. 不是尋常太守行 평범한 태수의 행차가 아니구나. 病起詩朋開小硯 병에서 일어나니 시 짓는 벗들이 작은 시회를 열고 時平壯士老孤城 시절이 태평하여 장사(壯士)는 고성(孤城)에서 늙어가네 潦田禾帶新涼色 물 댄 논의 벼 띠는 새로운 빛을 띠고 暮樹蟬淸近日聲 저물녘 나무의 청신한 매미 소리는 해 가까이서 들리네. 一詠一觴今日會 한 번 읊고 한 잔 마시는 오늘의 모임 幷州鄕裏故人情 병주향(幷州鄕) 속 벗님의 마음
나는 아래의 시를 지었다.
千里關河一杖輕 천리 산하를 가벼운 지팡이로 돌아다니다 暮年詩賦又西行 만년에 시부(詩賦) 지으며 또 서쪽으로 가네. 長天一色連滄海 넓은 하늘은 푸른 바다와 이어져 한 색깔이고 遠峀千重望塞城 먼 산은 첩첩이 쌓여 요새와 마주하네. 鄕國何天來雁信 고향에서는 어느 날에 편지가 오려나. 君家今日又蟬聲 그대의 집에서는 오늘 또 매미 소리가 나네. 主人戀戀猶無盡 주인의 애틋한 마음은 끝이 없는 듯하여 纔罷詩筵更有情 시 짓는 잔치를 끝내자마자 다시 정이 생겨나네.
오후에 돌아오면서 이군의 집과 김 중군(金中軍)의 집을 들렀다. 저녁에 술 몇 잔을 마셨다.
29일[二十九日]
맑고 더움. 주령이 부탁한 용천부사와 오 생원(吳生員)에게 보내는 편지를 지어서 하인 재신(才信) 편에 덕계로 보냈다. 황 단천이 왔다가 갔다. 죄를 짓고 쫓겨난 통인(通引) 송석석(宋石錫)이 나타났다. 이에 이치를 따져 엄하게 꾸짖었다. 지난 27일에 포촌(浦村)에 압류해 둔 곡식이 68석이었는데, 그 배의 선주 안주(安州) 사람이 몰래 빼돌려서 실어 가려고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장교를 보내어 엄하게 지키도록 하였다. 저녁에 고사떡을 가져왔다. 오늘 저녁은 5대조 할아버지의 제삿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