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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5월 초1일 정축[五月 初一日 丁丑]

맑고 가뭄. 황 참봉의 집에 갔다. 주령이 보내는 (편지를) 홍국(弘局)이 가지고 왔다. 변 주사(卞主事)에게 보내는 물건을 신변(申弁)에게 거듭 부탁하고, 콩을 팔아 은으로 바꾼 일로 작정한 수쇄전(收刷錢) 천여 냥을 빠른 시일 내에 신변(申弁)의 집으로 실어 보내라고 하였다. ‘훈서(勳西)의 창방(唱榜)’을 치하하는 녹지(錄紙)를 써서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연대별장으로 하여금 먼저 100냥을 신변의 집으로 보내도록 하였다. 고 함종(高咸從)이 패(浿, 대동강의 별칭)에서 집으로 돌아왔다고 하므로 즉시 편지를 부쳤더니 답장이 왔다.

초2일[初二日]

맑고 가뭄. 섬에서 농어 3마리를 보내 와서 2마리를 덕계로 보내고 주령에게 편지를 부쳤더니 즉시 답장이 왔다. 이방이 섬에서 나와서 수쇄전(收刷錢) 200냥을 즉시 신변(申弁)의 집으로 실어 보냈다. 유하목(流下木) 절반 117개 345냥 어치를 내일 실어 보낼 계획이다. 세모시 1필 40냥 어치를 내아(內衙)에서 매입하고자 한다는 뜻으로 주령에게 편지를 부쳤더니 즉시 답장이 왔다. 고 함종(高咸從)이 왔다. 격조한 나머지 반갑게 맞이하였다. 2월에 서울에서 형님과 동생을 만났다는 소식을 들으니 고향 생각이 더욱 간절하였다. 김 중군의 집에서 술값으로 5전을 사용하였다. 침모에게 단의(單衣)를 새로 손질하도록 하였다.

초3일[初三日]

맑고 가뭄. 관아의 수쇄전(收刷錢) 300냥을 신변의 집에 보내니 도합 600냥이라 하였다. 시장에서 흥정한 흰 모시 18자의 가격은 8냥 2전 8푼이고, 망건식(網巾飾)의 공단(孔緞)이 2전, 당줄이 3전으로 합계 8냥 7전 8푼이었다.

초4일[初四日]

맑고 가뭄. 주령으로부터 두 차례 편지가 와서 역시 두 차례 편지를 부쳤다. 농어 2마리가 들어와서 1마리를 덕계로 보냈다. 육류(肉類)가 들어왔다. 황 단천과 함께 고 함종을 보러 갔으며, 지나다가 황 참봉에게 들러서 만났다. 저녁에 이군이 병을 무릅쓰고 와서 뵈었다. 내일이 명절이어서 저녁에는 나그네 수심이 더욱 깊었다. 고 함종이 서울에서 빌려 주었던 돈 10냥을 갚았다.

초5일[初五日]

맑고 가뭄. 아침에 주령의 편지가 왔는데, 집에 있는 원보(元寶) 1개를 보내라고 하였으며, 의주로 갈 하인을 정하여 보내라고 하였다. 즉시 답장을 부쳤다. 아침을 먹은 뒤에 나귀를 타고 덕계로 갔다. 주령의 병세는 여전하였다. 김 오위장과 신 첨지를 만나서 덕천산(德川山)에서 곱사춤을 함께 구경하였는데 별달리 볼 만한 것이 없었다. 오후에 길을 떠났는데 촌가에서 비를 피하였다. 김아(金雅)의 집에서 유진(油袗, 기름을 먹여 방수가 되는 옷)을 내어주어 비를 무릅쓰고 돌아왔다.

초6일[初六日]

맑고 가뭄. 본 진(鎭)의 주민이 용천(龍川)의 주민과 다투다가 그의 배를 찔렀으며, 용천 주민도 원수를 갚느라 신도진(薪島鎭) 주민의 배를 찔렀다고 하였다. 듣기에 매우 놀라웠다. 우교(右校)에게 줄 용천의 부비조(浮費條) 5냥을 받아서 보관해 두었다.

초7일[初七日]

맑고 가뭄. 이방이 양식으로 쓸 쌀 1석을 덕계로 실어 보내기에 주령에게 편지를 부쳤다. 또 김제원에게도 편지를 부치고 우진(雨袗, 비옷)을 돌려보냈다. 즉시 답장이 왔다. 용천부사가 시신을 검안(檢案)하고 갔다고 하였다. 참빗 1개의 값으로 1전 8푼을 지급하였다. 정월 이후로 사용한 돈이 90냥 5전 9푼이다. 설 이전에 남아 있던 돈 163냥에서 이것을 제하면 남은 돈은 72냥 4전 1푼이다.

초8일[初八日]

맑고 가뭄. 하루 종일 「우공(禹貢)」 (『서경』의 편명)을 읽기만 하였다. 어제 저녁과 오늘 저녁에는 두 노파가 와서 바느질일에 대하여 의논하였다.

초9일[初九日]

맑고 가뭄. 관노 사령이 가는 편에 주령에게 편지를 부쳤는데 즉시 답장이 왔으며, 또 국수를 보내 왔다.

초10일[初十日]

밤에는 비가 조금 내리고 낮에는 맑음. 평양 사람 김성은(金聖殷)에게 쌀 10석과 좁쌀 28석을 팔기 위해 내어주었는데, 쌀은 1석당 27냥 3전이고, 좁쌀은 15냥이라고 하였다.

11일[十一日]

밤에는 비가 조금 내리고 낮에는 맑다가 흐림. 관노 편에 주령에게 편지를 부쳤는데 즉시 답장이 왔다.

12일[十二日]

밤에 비가 내리고 종일 비가 내림. 가뭄 뒤에 비가 흠뻑 내려서 보리농사에 희소식이었다. 방자(房子) 편에 주령에게 편지를 부치면서 달걀 20개와 섬에서 가져온 농어 1마리를 보냈다. 오후에 답장이 왔으며, 통인(通引) 최장석(崔長石)을 새로 임명한다는 패지(牌旨)에 도장을 찍어 보내 왔다. 어제 저녁과 오늘 저녁은 나그네 수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김영하(金永河)에게 일을 맡긴 대가로 20냥을 받아서 보관해 두었다. 아전 김씨가 최장석에게 일오표(一五標)를 받아서 보관해 두었다고 하였다.

13일[十三日]

맑고 더움. 주령이 덕계에서 시를 지었다.

主人知己許心寬 주인이 나를 알아보고 너그러이 마음을 허락하며 殊遇能令客意歡 특별한 환대로 나그네 마음을 기쁘게 하네 守將無憂遊翰墨 수장(守將)은 근심없이 필묵을 가지고 노닐며 高朋多會盡衣冠 훌륭한 벗 많이 모였는데 모두 의관(衣冠)이로다 數篇詩曲南風和 몇 편의 시에 남풍이 온화하고 一片氷心五月寒 한 조각 얼음 같은 마음은 오월에도 차갑구나. 麥雨知時三日洽 맥우(麥雨)가 때맞추어 사흘 동안 흠뻑 적시니 昇平烟月好相看 태평세월에 만나 보기 좋구나.

새 옷을 입었다. 최장석 편에 주령에게 편지를 부쳤다.

14일[十四日]

맑고 간혹 비가 내림. 농어 3마리가 들어와서 2마리는 덕계로 보내고 1마리는 내아(內衙)에 들여보냈다. 주령에게 편지를 쓴 다음 봉하여 아전 원(元)씨에게 주었다. 내아(內衙)의 평상을 만들어 왔다.

15일[十五日]

맑고 간혹 비가 내림. 서울로 갔던 하인이 돌아왔는데 여행 중에 무사히 서울로 들어갔다고 하였다. 다행이었다. 그러나 집에서 온 편지를 받아 보지 못하여 답답하고 걱정스러웠다. 호남의 동도(東徒)의 난리는 줄곧 소란스럽다고 하였다. 매우 걱정이 되었다.

16일[十六日]

맑고 더움. 주령에게 편지를 부쳤더니 즉시 답장이 왔다. 서울 소식도 적어서 보내 주었는데, 거기에는 지난달 27일에 동도(東徒)가 완부(完府, 전주)에 입성하여 버티고 있는데 그 군대의 위세가 대단하며, 도백(道伯, 전라감사) 김문현(金文鉉)이 허둥지둥 경계를 넘어 달아났기에 즉시 잡아 가두라는 명령이 내렸다고 하였다. 이달 초3일에 초토사(招討使) 홍재희(洪在羲)가 보낸 전보에는, 그날 신시(申時, 오후 3시~5시)에 적과 접전을 벌여 그 우두머리 김순명(金順明)과 14세짜리 아기장군 이복룡(李福龍)전녹두(全綠豆)를 참수하니 인심이 조금 진정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소탕되지 않았으니 어찌 걱정을 놓을 수가 있겠는가? 완백(完伯, 전라감사)은 김학진(金鶴鎭)이고, 영백(嶺伯, 경상감사)은 조병호(趙秉鎬)이며, 금백(錦伯, 충청감사)은 이헌영(李永)이라고 하였다. 주령이 경영하는 일은 어지러운 말이 조금 가라앉은 뒤에 주선할 것이라고 하였다.

17일[十七日]

맑고 더움. 주령에게 편지를 부쳤더니 방곡(防穀)하라는 전령(傳令)이 도착하였다. 저녁을 먹은 후 달밤에 마당을 거닐면서 집 생각을 하였다. 이러한 난세를 당하여 집의 소식을 듣지 못하였다. 노년의 형제들과 어미 없는 어린 자식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18일[十八日]

맑고 더움. 나귀를 타고 덕계로 가니, 주령의 병세는 마찬가지였다. 주인 김아(金雅)가 나를 문장으로 대우하며,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시고(詩稿)를 빌려 주어 보았다. 오후에 돌아오며 이군에게 들렀다. 당목(唐木) 5자(가격은 3냥 1전 5푼)와 담배 1줌(가격은 1냥 5전)을 샀다. 내아(內衙)에 들여보낸 모시항라 4자는 가격이 3냥으로 침모가 흥정하였다고 하였다. 오늘은 하지(夏至)이다.

19일[十九日]

밤에는 크게 비바람이 치고 낮에는 맑음. 유하목(流下木)이 두포(豆浦)에서 건져 올린 것이 36개이고 용암(龍岩)에서 건져 올린 것이 12개이며, 김치영(金致永)이 건져 올린 것이 2개로 도합 50개라고 하였다. 매일 『서전(書傳)』을 읽었으며 오늘은 「이훈(伊訓)」과 「태갑(太甲)」 등의 편(篇)을 연구하였다.

20일[二十日]

맑음. 주령에게 편지를 부쳤더니 오후에 답장이 왔다. 관아 소유의 유하목(流下木)이 28개라고 하였다. 주령이 덕계에서 시를 지었다.

西來先學子長遊 서쪽으로 온 선학(先學)은 자장(子長)처럼 노닐며 周覽關山四十州 관산(關山) 사십 고을을 두루 유람하였네. 遠戍功名都逆旅 변방 수자리에서 공명(功名)을 세워 봐야 한갓 나그네 신세지만 故人文酒好風流 친구의 글과 술은 좋은 풍류로다. 麥秋方至民歌野 바야흐로 보리가 익어가니 백성들은 들에서 노래 부르고 秧雨初晴客滿樓 모내기 때 내리는 비 처음 개이니 손들이 누각에 가득하네. 泉石烟霞高士宅 안개와 놀 낀 산수 간 고상한 선비의 집 有君知我我來留 그대 나를 알아주니 내가 와서 머무네.

최장석이 밀주(蜜酒) 1병을 가져왔다. 용천의 강교(姜校)라는 자가 왔다고 하였다.

21일[二十一日]

맑음. 주령에게 편지를 부쳤더니 즉시 답장이 왔다. 콩을 매매하는 일로 아전 전(田)씨와 김씨를 덕봉(德峰)으로 보냈다.

22일[二十二日]

맑았다가 흐림. 오늘 저녁은 증조할아버지의 제삿날이어서 집 생각이 더욱 간절하였다.

23일[二十三日]

밤에 비가 내리고 종일 비가 내림. 하루 종일 「반경(盤庚)」 과 「열명(說命)」 (『서경』의 편명)을 공부하였다.

24일[二十四日]

맑았다가 흐리고 간혹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붐. 주령에게 편지를 부쳤더니 답장이 왔다. 강교(姜校)가 20냥을 얻어서 갔다고 하였다.

25일[二十五日]

밤에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으며 종일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림. 보리농사가 거의 흉년이 들어 걱정스러웠다. 농어 1마리를 가져왔다.

26일[二十六日]

맑았다가 흐리고 간혹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붐. 오교(吳校)가 술 반 사발을 들여왔다. 사흘 동안 비가 내리니 고향 생각이 갑절이나 간절하였다.

27일[二十七日]

맑았다가 흐리고 더움. 주령의 편지가 왔는데, 병세는 그간 더욱 심해졌다고 하였다. 듣기에 매우 걱정스러웠다. 관아로 돌아오는 것은 내달 초5일 무렵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오늘 처음 참외를 먹었다. 황경록으로부터 명주 1필이 왔다.

28일[二十八日]

맑았다가 흐리고 간혹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붐. 주령에게 편지를 부쳤더니 답장이 왔는데 내달 초2~3일 사이에 관아로 돌아온다고 하였다. 오교(吳校)의 집에서 술값 5전을 썼다. 아전 김씨가 와서 말하기를 최장석으로부터 150전을 받아 두었다고 하였다. 새 옷을 입었다.

29일[二十九日]

종일 비가 내림. 오교(吳校)의 집에서 술 1사발을 샀는데 값이 1냥이었다. 망건 고치는 공임으로 1냥 5전을 지불하였다. 침모에게 망건을 꾸며 달라고 하였다. 관아의 목수에게서 목침모(木枕帽) 1개를 가져왔다.

주석
훈서(勳西)의 창방(唱榜) 조정에서는 서북 지방 인사들에게 특별 과거시험을 때때로 보였다. 그 명목은 ‘서북 지방의 공훈을 기린다’고 붙였다. 훈서는 서북의 공훈을 뜻함. 창방은 그 합격자 발표 명단.
부비조(浮費條) 일을 하는 데 드는 비용의 조목. 교량을 놓거나 도로를 보수할 때 드는 비용 등을 말한다.
패지(牌旨)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내리는 서면. 여기서는 임명장을 뜻함. 임금의 임명장은 교지(敎旨)라 함.
맥우(麥雨) 보리가 익을 무렵 오는 비.
김순명(金順明)과 14세짜리 아기장군 이복룡(李福龍) 홍계훈의 보고에 따르면, 5월 초3일 동학농민군을 공격해 대장기를 빼앗고 거물급인 김순명과 나이 어린 동장사(童壯士) 이복룡을 사로잡아 참수했다고 하였다.(『兩湖招討謄錄』). 이복룡은 농민군 사이에서 소년장사로 이름을 떨쳤다 한다.
전녹두(全綠豆) 전봉준(全琫準)을 말하는 것 같으나, 전문(傳聞)에 의하여 기록한 것이어서 착오가 있는 듯하다. 전봉준은 12월 2일에 순창에서 체포된 뒤 서울로 압송되어 재판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방곡(防穀) 곡식을 다른 곳으로 내보내지 못하게 막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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