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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3월 초1일 무인[三月 初一日 戊寅]

맑고 바람이 붐. 이 정언이 편지와 함께 『맹자』 2권부터 7권까지를 보내 왔다. 즉시 답장을 보냈다. 고 중군(高中軍)이 왔다가 갔다. 이방에게서 명주 22자를 다듬이질하여 왔다.

초2일[初二日]

맑고 바람이 붐. 섬에서 농어[鱸魚] 2마리를 가져왔다. 신 첨지가 왔다가 갔다.

초3일[初三日]

맑고 바람이 붐. 연일 『수호지』를 읽었다. 이른바 강호의 호걸이란 자 중 강도가 아닌 자들이 없었다.

초4일[初四日]

맑고 바람이 붐. 중군(中軍) 김계옥(金啓玉)이 섬 안의 연대별장(烟臺別將)에 김득정(金得正)을 차출하였다고 하였다. 주령이 몸이 불편하여 의원을 불러오기 위하여 신 첨지에게 편지를 부쳤다. 황 단천과 이한종이 왔다가 갔다.

초5일[初五日]

맑고 따뜻함. 황 참봉이 술과 안주를 가지고 왔는데, 그의 아들이 서울에서 내려왔다고 하였다. 그래서 형님의 집터 일과 강령 어른이 파주(坡州)와 포천(抱川)을 거쳐 회암(檜岩)의 산소에서 성묘를 하고 충주(忠州)로 내려간 일을 알게 되었다. 또한 고 함종에게 엽전 10냥을 융통하여 썼으며, 장제(章弟)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하였다. 또 2월 7일자로 종인(宗人)인 주서(注書) 영기(永冀)가 보낸 편지를 보니, 말을 무역하는 일은 그만두었다고 하였다. 또 동헌(東軒)으로 온 서울 편지에는, 초8일 응제(應製)에서 224인을 선발하였는데, 대과(大科)가 9인이고 진사(進士)가 77인이며, 그 나머지는 대과 초시(初試)와 감시(監試) 초시의 상격(賞格)이었다고 하였다. 만윤(灣尹) 조만승의 장전(贓錢, 부정한 돈)은 29만 냥이었으며, 그의 후임으로 이용직(李容稙)을 임명하다고 하였다. 주령의 병세가 끝내 차도가 없어 소호(少湖)의 김(金) 의원이 와서 진맥을 하고 갔다. 동헌을 수리할 목재를 백성들의 힘으로 끌고 왔다. 황 단천이 왔다가 갔다.

초6일[初六日]

맑고 따뜻함. 용단(龍丹) 오 생원의 편지와 신학수(申學秀)의 보고가 도착하였다. 마른 짚신 2켤레를 보내 왔으며, 값은 5냥이라고 하였다. 주령이 병중이라 공해(公廨)의 수리를 잠시 중지하였다. 감영에 납부하는 일을 처리하기 위하여 김봉린(金奉獜)이 떠났으며, 주령은 막중(幕中)에게 편지를 부쳤다고 하였다. 의주 양상(楊上) 충무동(忠武洞)의 김 의원이 와서 주령의 병을 진찰하였다. 저녁에 이군이 들어와서 그 부모의 병이 위중하다고 하였다.

초7일[初七日]

흐리고 간혹 비가 내림. 김 의원을 떠나보냈다. 아침에 나의 맥을 짚어 보고는, 몸은 튼튼하고 정신은 총명하다고 하였다. 하습증(下濕症)에는 계퇴수(鷄退水)로 뒤를 씻으라고 하였고, 송충증(蜙蟲症)에는 아침에 뱅어회[白魚膾]를 먹으라고 하였으며, 비홍증(鼻紅症)에는 율무죽을 오랫동안 복용하고 코끝을 침으로 가늘게 찔러 피를 내고 거기에 붉은 가지의 즙을 바르라고 하였다.

초8일[初八日]

맑고 따뜻함. 의원 김승락(金承洛)의 편지가 도착하였다. 주령의 병이 아무런 차도가 없자 내아(內衙)에서 신에게 빌기로 하였다고 한다. 지난 6일에 여성부원군(驪城府院君)의 쌍령산(雙嶺山) 분묘를 허물었는데 오늘 보령(保寧)으로 발인한다고 하였다.

초9일[初九日]

맑고 따뜻함. 황 단천이 왔다가 갔다. 신 첨지의 편지가 도착하였다.

초10일[初十日]

맑고 따뜻함. 『수호지』 20권을 다 읽었다. 이른바 천강성(天罡星) 36좌와 지살성(地煞星) 72좌의 정기가 110갈래로 흩어졌다가 내려와서 108인이 되었으며, 이들은 모두 강도로서 양산박(梁山泊)에 모여 조직하였는데, 주군(州郡)에서는 제압할 수 없었고 결국에는 하나가 되었다고 하니 어찌 진실 됨이 있겠는가. 이는 황당무계한 이야기이니 참으로 우습구나. (이 책은) 본래 이내암(施耐菴)이 짓고 김성탄(金聖歎)이 평어(評語)를 단 것으로 4대 기서(奇書)에 속한다. 20권을 아전 원영보(元永輔)에게 돌려주었다. 오늘부터 『맹자』를 연구하여 천리(天理)를 보존하고 인욕(人欲)을 막는 데 힘쓸 계획이다. 지나가는 밀매상의 배를 붙들어 왔다고 하였다.

11일[十一日]

맑고 따뜻함. 어떤 경객(經客, 경을 외는 판수) 정(鄭)씨가 이방의 집에 왔는데, 주령의 병이 점차 심해져서 내일 경(經)을 왼다고 하였다. 이는 망령된 일이나 병중이니 어찌하겠는가? 태옥(泰玉)을 김 의원 집에 보내어서 약을 조제하여 왔다고 하였다.

12일[十二日]

맑고 따뜻함. 산에는 꽃이 활짝 피었고 제방의 버드나무는 점차 초록빛을 띠었다. 좋은 날을 헛되이 보내고 있으니 참으로 한탄스럽다. 주령의 병세가 더욱 심해져서 정객(鄭客)으로 하여금 동헌에서 경(經)을 외도록 하고 주령은 작청(作廳)으로 자리를 피하였다.

13일[十三日]

흐리고 따뜻함. 황(黃) 소년 형제가 왔다가 갔다. 중방(中房)이 병을 돌볼 수 없어서 다른 곳으로 피접을 간다고 하였다. 의주 양시(陽市)에 명의(名醫) 이(李)가가 있다고 하여 이방이 글을 보냈다.

14일[十四日]

종일 비가 내림. 용천(龍川) 노파가 3전을 빌려가고, 서울 노파가 2전을 빌려갔다.

15일[十五日]

오늘은 곡우(穀雨)이다. 맑고 따뜻함. 새 옷을 입었다. 황 단천이 왔다가 갔다. 경객(經客)이 사귀(私鬼)를 잡아 가두었다고 한다. 참으로 우습다.

16일[十六日]

맑고 바람이 붐. 신 첨지가 왔다. 이방이 8냥짜리 신발 3켤레의 값으로 7냥 5전을 들였다. 이를 오 생원에게 전해 달라며 신 첨지에게 주었다. 중방이 들어왔다. 고 중군(高中軍)이 왔다가 갔다. 경객(經客)이 일을 파하여 돌려보내고 주령이 동헌으로 들어가서 좌정하였다.

17일[十七日]

맑고 따뜻함. 밤을 지내고 나니 주령의 병세가 더욱 심해져서 하는 수 없이 용천 고을로 피접을 갔다. 아침을 먹은 뒤에 출발하였는데, 그 서글픔을 형용할 수 없었다. 각종 수쇄(收刷) 업무가 전혀 두서가 없는데, 또 관아까지 비우게 되니 참으로 답답하였다.

18일[十八日]

맑고 따뜻함.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활짝 피고 버드나무의 녹음이 짙어지니 참으로 좋은 날씨다. 주사별장(舟師別將) 김명현(金明玄)이 검색하는 과정에 사사로운 정을 두는 일이 있으므로 불러들였다. 어제 황 단천이 와서 방문해주기를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종인(宗人) 경칠(景七)과 함께 문을 나서 황 참봉의 집에서 단천의 집으로 갔으며, 다시 그들과 함께 용수암(龍首菴)에 갔다. 그 암자는 폐사된 지 이미 오래되어 별달리 볼 만한 것이 없었다. 단천이 비빔밥과 술, 안주를 내어왔다. 해가 질 때 들어와서 율시(律詩) 한 수를 읊었다.

淡烟微雨喜新晴 옅은 안개 보슬비 내린 뒤 새로 갠 날이 좋아서 數里芳園一杖輕 수 리 길 꽃동산 지팡이가 가볍구나 春服冠童當與點 봄옷 입은 어른 아이, 증점(曾點)과 함께 하며 前川花柳又思程 앞개울의 꽃과 버들에 또 고향 생각이 나네 油窓靜几高人臥 유지창 가 고요한 안석에 고상한 사람이 누워 簟食匏樽遠客迎 도시락밥과 한 동이 술로 멀리서 온 객을 맞이하네 西出關山今日會 서쪽으로 관산(關山)을 나서서 오늘에야 만났으니 幷州鄕裏故人情 병주향(幷州鄕) 속의 친구의 정일세라

저녁을 먹은 뒤에 주령의 편지가 도착하였는데, 신병이 밤새 더 악화되어, 각종 수쇄(收刷)와 환곡을 나누어 주는 업무는 이방에게 분부하였다고 하였다. 병증이 이와 같으니 듣기에 매우 걱정스러웠다. 주령이 관아를 비운 뒤로 배를 나누어 보내는 것은 내가 기록하여 두었다.

19일[十九日]

맑고 따뜻함. 주사별장을 질책하고 수검소(搜檢所, 수색하고 검문하는 곳)로 내보냈다. 국경을 넘은 배 1척을 붙들어 와서 뱃놈들을 즉시 가두었다. 용천 노파의 소지(所志)를 작성해 주었는데, 용천으로 보내는 글을 고쳐 준 것이다. 어제 이군에게 갔는데, 그 사이 서모(庶母)의 상을 당하였다고 하였다. 그 집안 형편이 딱하였다.

20일[二十日]

맑고 바람이 붐. 하인을 용천으로 보내어 주령에게 편지를 보냈다. 황 단천이 와서 함께 가자고 간청을 해서 우리 두 사람은 다시 그의 집으로 갔다가 저녁을 먹은 뒤에 돌아왔다. 이군이 와서 경의(經義)와 집안에서 처신하는 도리에 대하여 논하였다. 주령이 읽었던 『맹자』 1권을 오늘에서야 이군으로 하여금 돌려주게 하였다.

21일[二十一日]

맑고 따뜻함. 종일 『맹자』를 연구하였다. 주령의 편지가 도착하였는데, 병세가 줄곧 차도가 없다고 하였다. 국경을 넘은 배의 선원에 관한 일은 중간에서 조치하라고 하였다.

22일[二十二日]

맑고 따뜻함. 용천에 편지를 보냈다. 의주의 국경을 넘은 선박이 50냥을 속전(贖錢)으로 내어 일이 순조롭게 끝났다. 이방과 우교(右校)가 수쇄 업무 때문에 섬으로 들어갔다. 김 오위장의 편지가 와서 즉시 답장을 보냈다. 신 첨지의 편지가 도착하였다.

23일[二十三日]

맑고 따뜻함. 언덕의 꽃들이 점차 떨어지고 냇가의 버드나무에 녹음이 짙어지니 늦봄임을 알겠다. 회포를 부치는 시를 지었다.

空堂盡日坐如禪 빈 대청에 종일 참선하듯 앉아 있으니 愁裏春光過遽然 근심 속에 봄빛은 쏜살같이 지나가네 佳氣最多芳草野 아름다운 기운 가장 많이 서린 꽃다운 들판이지만 何生不見落花年 어느 때인들 꽃잎 떨어지는 해를 보지 않겠는가 關山非我因緣好 관산(關山)은 나와 좋은 인연이 아닌데 京洛無人信息傳 서울에서는 아무도 소식 전하는 이 없네 此地始知知己少 여기에서 비로소 나를 알아주는 이 적음을 알았으니 未聞佳節設詩筵 좋은 계절에 시회(詩會)를 연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네

주령의 편지가 왔는데, 근자에 또 학질이 더해졌다고 해서 걱정스러웠다. 감사는 교체되어 병조판서가 되었다고 하였으며, 신임 감사는 민영달(閔泳達) 대감이라 하고 혹은 민영규(閔泳奎) 대감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기필할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24일[二十四日]

맑고 따뜻함. 늑현(勒峴)의 하인 최여홍(崔汝弘)이 출발한다고 하여 그 편에 주령에게 편지를 부쳤다.

25일[二十五日]

맑고 따뜻함. 김학린(金學獜)이 감영에서 돌아와 신임 감사는 심상훈(沈相薰) 대감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병저리(兵邸吏)가 알려 오기를, 주령이 보낸 짚신 30매를 남겨 두었다고 하였다. 박도겸이 와서 『맹자』 「부정제기장(簿正祭器章)」 을 강론하였다.

26일[二十六日]

맑고 따뜻함. 오위장 김경달이 주령의 편지를 소매에 넣어서 왔는데, 죽동궁(竹洞宮)에 상납할 언문으로 된 목록(諺錄)을 만들어 보낸다고 하였다. 학질은 그간에 나았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이방이 섬에서 나왔다. 김 의원이 비자(枇子)를 보내 왔다.

27일[二十七日]

맑고 바람이 강하게 붐. 이방의 보고에, 섬의 수쇄(收刷) 업무는 별다른 낭패가 없었다고 하였다. 어제오늘 두 노파가 서로 위로하였다.

28일[二十八日]

종일 비가 내림. 패실(浿室)이 통증을 느껴서 향소산(香蘇散) 2첩을 썼다.

29일[二十九日]

맑고 따뜻함. 이방과 우교(右校)가 용천으로 가기에 주령에게 편지를 부쳤다. 뒷산에 올라 우연히 봄을 전별하는 시를 지었다.

四序成功古語云 옛말에 사계절이 공을 이룬다고 했는데 落花時節忽相分 꽃 지는 계절에 갑자기 이별하네 來如有意多遲日 올 때는 뜻 있는 듯 날이 더디었는데 去是無情散片雲 떠날 때는 무심히 조각구름 흩어지듯 하네 此日三春經蝶夢 오늘 석 달 봄날에는 나비 꿈을 꾸었으나 明朝四月始鶯聞 내일 아침 사월에는 비로소 꾀꼬리 소리 듣겠네 初心好作還鄕伴 처음에는 그대를 귀향길 동무로 삼으려 하였는데 君去我留我送君 그대는 떠나고 나는 남아 그대를 보내누나.

주석
연대별장(烟臺別將) 연대는 연기를 피워 신호를 보내는 돈대(墩臺)를 말하며, 별장은 돈대를 설치한 곳의 봉화를 올리는 책임을 맡은 장교이다.
상격(賞格) 과거에서 급제를 하지 못했으나 그 실력을 인정해 상을 주는 격례(格例). 여기 상격에는 상격목이라는 이름의 무명을 상으로 줌.
여성부원군(驪城府院君) (1799년(정조 23)∼1858년(철종 9)). 이름은 민치록(閔致祿)이며, 고종의 비인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아버지이다.
이내암(施耐菴) 『수호지』의 저자인데 ‘시’(施)가 성으로 쓰일 때는 ‘이’로 발음함. 성의 고유성을 표현하는 음의 관례임. 거(車)를 차가로 부르는 것과 같음.
작청(作廳) 군아(郡衙)에서 구실아치가 일을 보던 곳.
봄옷 입은 어른 아이, 증점(曾點)과 함께 하며 공자가 여러 제자들에게 각기 자기의 뜻을 말해 보라고 했을 때 증점(曾點)이 대답하기를 "늦은 봄에 봄옷이 만들어지면 관을 쓴 자 오륙 인에다 동자 육칠 인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쐰 다음 읊조리며 돌아오겠습니다."라고 하였다(『논어(論語)』 「선진(先進)」 편).
병주향(幷州鄕) 제2의 고향을 말한다. 당(唐)의 가도(賈島)가 병주(幷州)에 오래 살다가 떠난 후 시를 지어 그곳을 고향처럼 그리워한 데서 유래하였다.
병저리(兵邸吏) 병영에 딸린 저리. 중앙관청과 지방의 병영 업무를 연락하는 구실아치. 감영에 딸린 영저리도 있다. 저리를 주인이라고도 함.
부정제기장(簿正祭器章) 『맹자』 「 만장(萬章)」 하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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