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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1894년 1월[甲午正月]

성상 31년 광서 20년 갑오 정월 초1일 기묘[聖上三十一年 光緖二十年 甲午正月初一日己卯]

맑고 따뜻함. 여러 장리(將吏)들이 아침에 와서 문안하였다. 주령(主令)이 달력 하나씩을 나누어 준다고 하였다. 황 단천(黃端川, 단천수령을 지낸 황씨를 말함. 아래도 동일)이 아들을 데리고 왔다. 황 참봉(黃參奉)의 아들 형제가 들어와서 만났는데 모두 단아하고 사랑스러웠다. 망건식(網巾飾)을 황령(黃令, 황 단천을 가리킴)에게 맡겼다.

초2일[初二日]

밤에는 눈이 내렸으며, 맑고 따뜻함. 고 중군(高中軍)과 황 참봉이 왔다가 갔다. 김아(金雅)가 용천(龍川)에서 돌아왔다. 평양(平壤)의 가마꾼이 출발하였으며, 주령은 그 편에 감사와 막중(幕中)에게 편지를 부친다고 하였다.

초3일[初三日]

맑고 따뜻함. 각 동의 존위(尊位)와 여러 손님이 왔다가 갔다. 이군(李君)도 왔다.

초4일[初四日]

맑고 따뜻함. 고 함종(高咸從)과 김제원(金濟元), 황 단천, 이인건(李仁鍵)이 모두 왔다가 갔다.

초5일[初五日]

흐리고 따뜻함. 김아(金雅)가 나에게 붓 한 자루를 주어 감사하였다. 이군(李君)이 와서 공부하였다.

초6일[初六日]

맑고 따뜻함. 이방(吏房)이 황가(黃哥)의 일을 구두로 보고하였다. 최(崔)는 용천(龍川)으로 잡혀 갔다고 하였다.

초7일[初七日]

맑고 따뜻함. 주령이 박천군수(博川郡守)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하였다. 신 첨지(申僉知)와 고 함종, 황 단천이 왔다가 갔다.

초8일[初八日]

맑고 따뜻함. 고 함종 소유의 『회남자(淮南子)』를 어제 돌려보냈다. 오위장(五衛將) 김경달(金景達)이 와서 잤다. 신학수(申學洙)가 와서 잤다.

초9일[初九日]

맑고 따뜻함. 뒷산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니 빙산(氷山)이 만 리에 걸쳐 있었다.

초10일[初十日]

맑고 따뜻함. 김아(金雅)가 용천으로 갔다. 조용주(趙用周)가 왔다가 갔다. 갓에 옻칠을 새로 해 와서 값으로 5전(錢)을 지불하였다. 새로 부릴 계집종 월선(月仙)이 들어왔다. 홍 훈장(洪訓長)이 왔다가 갔다.

11일[十一日]

맑았다가 흐림. 새 옷을 입었다. 이군이 연일 와서 공부를 하였으나 내일은 동생의 혼사 때문에 간다고 하였다.

12일[十二日]

아침에 안개가 끼며 맑고 따뜻함. 간밤에 눈이 왔다. 황 단천과 고 함종이 왔다가 갔다. 박석준(朴石俊)이 왔다가 갔다. 김아(金雅)가 용천(龍川)에서 왔다. 감사(監司)의 편지가 주령에게 왔는데, 2월의 동궁(東宮) 망삼십(望三十) 연회용으로 명주 40필을 복정(卜定)한다는 내용이었다. 쇠잔한 진(鎭)에서 일이 매우 난처하게 되었다.

13일[十三日]

맑고 따뜻함. 명주는 주령이 용천(龍川)에 편지를 보내어 부탁하였다고 한다. 저녁에 주령과 함께 달빛을 받으며 황 단천과 고 함종의 집으로 갔다가 닭이 운 뒤에 돌아와서 잤다.

14일[十四日]

맑고 따뜻함. 오늘 저녁은 바로 대보름날이어서 고향 생각이 더욱 간절하였다.

15일[十五日]

맑고 따뜻함. 고 함종이 와서 내일 서울로 길을 떠난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간동(間洞)에 편지를 부치고 집에 보내는 편지도 부쳤다. 주령도 서울로 보내는 편지를 부쳤다. 평아(平娥)가 와서 조가(趙哥)를 데리고 갔다. 주령은 그 편에 감영(監營)으로 보내는 편지를 부쳤다고 하였다. 황 참봉과 이변(李弁)이 왔다가 갔다.

16일[十六日]

맑고 따뜻함. 황 단천이 와서, 그의 족인(族人) 황가가 방송(放送)되었으며, 황 소년(黃少年)이 왔다가 서울로 올라갔다고 하였다.

17일[十七日]

맑고 따뜻함. 김아(金雅)가 용천으로 가기에, 오 생원(吳生員)에게 보내는 편지를 부쳤다. 돈 20냥(兩)을 얻어 수집사(首執事, 일을 맡아 보는 우두머리 관원)에게 맡겼다.

18일[十八日]

맑고 따뜻함. 새벽에 김아(金雅)가 돌아왔다. 용천부사(龍川府使)의 편지가 도착하였는데, 물목 내역을 바꾸는 일이 실패하였다. 주령은 즉시 답장을 보냈으며, 곧장 김학린(金鶴獜)을 의주로 보냈다. 주령은 길인범(吉仁範)에게 패문(牌文)을 부쳐 원보(元寶) 2개를 사서 보내도록 부탁하였다. 뒷산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니 얼음이 점차 풀리고 있었다. 용천의 이아 신묵(李雅信默)이 왔다가 갔다.

19일[十九日]

맑고 따뜻함. 새벽에 김아(金雅)에게 용천의 환간(換簡)을 가지고 의주로 발송하도록 하였다. 황 단천과 김인건(李仁鍵), 김 중군(金中軍)이 왔다가 갔다. 망건식(網巾飾)이 도착하였다.

20일[二十日]

맑고 바람이 붐. 김학린이 길인범의 고목(告目)을 가지고 아침에 의주에서 왔다. 물목 내역을 바꾸는 일이 또 실패하였다. 즉시 급족(急足) 재신(才信)을 평양으로 보내어 어떤 방식으로든 주선하여 탈을 면하게 해달라고 막중(幕中)에게 편지를 부쳤다고 하였다. 잡기(雜技)에 관한 일은 오늘부터 명령을 철회한다고 하였다. 이군이 날마다 병을 무릅쓰고 와서 뵈었다.

21일[二十一日]

맑고 따뜻함. 경주인(京主人) 김명석(金命錫)이 와서 평양에서 물목 내역을 바꾸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주령이 다시 막중에게 편지를 부쳤다. 초시(初試) 김제원(金濟元)이 왔다가 갔다. 이흥보(李興甫)에게 내일 새벽에 출발하라고 분부하였다고 한다.

22일[二十二日]

맑고 바람이 붐. 김아(金雅)가 의주에서 왔다. 길인범이 원보(元寶) 2 개를 사서 보냈으나 이제는 소용이 없어서 도로 그의 형 길인덕(吉仁德)의 집으로 돌려보냈다. 신용환(申用桓)과 송신옥(宋信玉), 이 감찰(李監察)이 왔다가 갔다. 이흥보(李興甫)가 오늘 새벽에 감영으로 출발하였다. 송신옥이 담배 2 줌을 보내 주었다.

23일[二十三日]

맑고 따뜻함. 고 중군(高中軍)이 왔다가 갔다. 신도(薪島) 중군(中軍)의 고목(告目)이 왔는데, 김 중군(金中軍)의 혼수를 보내 왔다고 한다. 주령이 중화(中和)의 오태영(吳台泳)에게 편지를 부쳤다고 하였다.

24일[二十四日]

맑고 따뜻함. 김아(金雅)와 여러 날을 함께 머물다가 오늘 비로소 헤어지니 섭섭하였다. 붓 값 200냥을 바꾸어서 간다고 한다. 김대경(金大敬)이 왔다가 갔다. 황 단천이 왔다가 갔다.

25일[二十五日]

맑고 따뜻함. 뒷산에 올라가서 바다를 바라보니 얼음이 녹아 떠다니고 있었다. 『서전(書傳)』 10권을 모두 읽었다.

26일[二十六日]

맑고 따뜻함. 고 중군(高中軍)이 왔다가 갔다. 동네에서 성황제(城隍祭)를 지내면서 소를 잡아 소가죽 1조를 들여왔다.

27일[二十七日]

맑고 따뜻함. 김제원이 편지를 보내와서 중군(中軍)의 일을 부탁하였다. 즉시 답장을 보냈다. 장이주(張履疇)와 그의 친족이 함께 왔다가 바로 갔다. 신용환이 왔다가 갔다. 섬의 진속(鎭屬)들이 모두 나왔다.

28일[二十八日]

맑고 따뜻함. 육지와 섬의 관속(官屬)들이 회합을 하니 마치 웅장한 고을과 같았다. 섬에서 야견사(野繭絲, 멧누에고치실) 1통을 가져왔는데, 이것은 호인(胡人, 만주에 사는 북방민족. 곧 여진족)들의 뱃짐이 전복하여 흘러내려온 것이다. 박석준(朴石俊)이 왔다가 갔다. 이흥복(李興福)이 왔다가 갔다. 저녁에 또 편지가 도착하였다. 오늘 저녁은 돌아가신 할머니의 제삿날이어서 슬픈 마음을 감당할 수 없었으며, 고향 생각이 갑절이나 간절하였다. 오늘은 경칩(驚蟄)이다.

29일[二十九日]

맑고 따뜻함. 섬의 진속(鎭屬)들이 하직하고 (섬으로) 들어갔으며 더러 남는 자도 있었다. 이한종(李漢宗)의 편지에 답장을 보냈다. 김제원의 편지가 와서 답장을 보냈다. 김 중군(金中軍)이 들어왔다.

주석
주령(主令) 손님이 정3품 이상의 위치에 있는 주인을 높여 부르던 말로, 여기서는 신도진첨절제사(薪島鎭僉節制使) 김일식(金一植)을 가리킨다. 이 글의 저자인 김영식(金永植)은 이때 동문수학한 동료이자 종인(宗人) 김일식이 신도진첨절제사로 부임할 때 동행하여 함께 생활하며 막하(幕下)로 일을 보았다.
김아(金雅) 아(雅)는 미칭.
막중(幕中) 비장(裨將). 감사의 잡무를 보는 관원.
동궁(東宮) 망삼십(望三十) 순종은 1874년이다. 곧 이 해 탄신일이 ‘망삼십’이 되는 달이다. 망삼십은 30세를 바라본다는 뜻으로 21세를 가리킨다.
복정(卜定) 정기적으로 징수하던 공물(貢物) 이외에, 필요에 따라 상급 관아에서 하급 관아에 그 지방의 토산물을 강제로 바치게 하던 일.
패문(牌文) 상급관청에서 하급관청에 내리는 통문. 공문의 성격임.
원보(元寶) 말굽 모양으로 만들어진 은덩이. 말굽은이라 부르는데, 중국에서는 화폐처럼 사용했다.
이아 신묵(李雅信默) 아(雅)는 상대방에 대한 미칭.
환간(換簡) 먼 곳의 사람과 금전 거래를 할 때에, 지정된 제삼자에게 돈을 주라고 써 보내던 편지. 받는 사람은 편지에 적힌 액수대로 치르되, 치를 수 없을 때는 그냥 ‘퇴(退)’ 자를 써서 돌려보냈다. 환표(換標)라고도 한다.
고목(告目) 각사(各司)의 서리 및 지방 관아의 향리가 상관에게 공적인 일을 알리거나 문안하는 일 또는 그때에 올리던 간단한 문서 양식.
급족(急足) 급한 소식을 전하는 심부름꾼.
진속(鎭屬) 각 진영(鎭營)에 속한 구실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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