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3일. 장성(長城) 북이면(北二面) 금량리(金良里) 두민(頭民) 등이 아룁니다. 당일 밤에 어떤 도인(道人) 수백 명이 우리 마을로 난입하여 음식과 돈을 토색(討索)하고는 저들이 타고 있던 말 7필을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특별히 처분을 내려주십시오.
제(題):고립된 마을에서 당한 일이 괴이할 것이 없다. 말은 모두 끌어다가 바치도록 하라. 앞으로 만약 이처럼 지나가는 놈이 있는데 잡아다 대령하기 힘들면 신속하게 알리도록 하라.
초 3일 [同日]. 영남(嶺南) 산청(山淸)에 거주하는 유생 박제일(朴齊一)이 단자를 올립니다. 시생은 대대로 문학(文學)을 업으로 삼았습니다. 작년 9월에 호남(湖南) 나주(羅州) 시조산(始祖山) 아래 회진(會津)으로 이주하였으며, 시생의 아들 형제는 신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였습니다. 불행히도 동도(東徒)가 사방에서 일어나자 20여 학생들은 사방으로 흩어졌으며 약간의 금전은 적인(賊人)에게 빼앗겼습니다. 가족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으나 전쟁으로 길이 막혀 남의 도(道)의 귀신이 될까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한 장의 글을 올려 호소하니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학교를 세우고 스승을 두는 것은 선왕(先王)의 훌륭한 제도이며, 시를 외고 글을 읽는 것은 후생의 아름다운 모범입니다. 무우(舞雩)에서 바람 쐬고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읊조리며 돌아오는 예닐곱 명의 어른과 아이들, 날이 저물도록 염락(濂洛)에서 3,000가지의 예악(禮樂)을 익힙니다. 청년시절에는 용문(龍門)에서 이마에 점이 찍혔고, 백발의 노년에는 도리어 달팽이집 속에서 머리를 움츠립니다. 영재를 교육하는 일은 맹자(孟子)의 삼락(三樂)을 거론하지 못하고, 이와 혀를 부딪치는 일은 부질없이 한유(韓愈)의 오궁(五窮)을 이룹니다. 세 때의 강학(講學)에선 스승과 제자의 분의(分義)가 스스로 존재하였으나 하루아침에 흩어지니 초(楚)와 월(越)의 무관심과 다름이 없습니다. 나이 70세가 넘어 숨이 금방이라도 넘어갈 듯한데 8~9명의 식구들을 데리고 돌아갈 길이 막막합니다. 500리 긴 여정을 하루 이틀에 가기는 어렵습니다. 낮에는 적적하여 적공(翟公)의 그물을 칠 정도이며, 가을밤은 더디고 더뎌 맹상군(孟嘗君)의 닭울음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늙은이의 다리는 앉은뱅이가 되어 한걸음도 떼기 힘들며, 쇠약해진 눈은 장님과 같아서 지척도 분간할 수 없습니다. 아! 어디로 돌아갈거나? 끝없는 탄식만 나옵니다. 동서로 유랑하니 사람을 살리는 부처를 만나기 어렵고, 남북으로 떠도니 나그네를 꺼리는 주인들만 우글거립니다. 특별한 혜택을 내려주시어 귀향하여 고향의 귀신이 되도록 해주십시오.
제(題):추로(鄒魯)의 고장에서 공맹(孔孟)의 글을 읽었고 이미 단표(簞瓢)의 낙에 뜻을 두었으니 어찌 회수(淮水)를 건너는 행보를 하겠는가? 그 사정이 딱하며 그 절조가 참으로 애석하다. 사악함에 물들지 않았으니 어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걱정하겠는가? 증빙하기 위한 입지(立旨)를 작성하여 발급한다.
一. 장성(長城) 읍내의 김중길(金仲吉)이 아룁니다. 금년 4월에 전사한 이 대장[李隊官, 장성 황룡촌전투에서 동학농민군에게 죽은 이학승]과 병정들의 시신을 제가 묻어주었는데 이 때문에 동도(東徒)에게 욕을 당하였습니다. 다행히 대군[大軍, 이규태가 이끄는 선봉진]이 본 고을에 왔기 때문에 옥석(玉石)이 모두 불에 타버리는 지경에 이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題):듣기에 매우 가상하다. 향(鄕)의 장리(將吏)와 각 두목(頭目)은 상세하게 조사하여 아뢰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