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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6월 23일 [六月二十三日]

읍예(邑隷)가 한양에서 돌아와 소식을 전했는데, 21일에 대궐안에 변란(變亂)이 있었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매우 두려워서 영접사에게 사람을 보내 소식을 알아보게 하였다.

24일 [二十四日]

영접사의 답장을 받고 한양의 변고(變故)에 대해 상세히 들었다. 영접사가 원수 섭사성에게 군대를 북쪽으로 전진하도록 요청하여 성환역(成歡驛)에 이르렀는데, 한양으로부터 전보(電報)가 와서 중지하고 성환에 지금 주둔하고 있다고 하였다.

25일 [二十五日]

주공이 내게 말하기를, “그대에게는 노모(老母)가 있는데, 이런 유사시를 맞아 친구에게 부모의 임종을 못하게 내버려 둘 수가 없다. 어찌 한번 집에 가서 뵙지 않겠는가? 그대가 돌아갈 때에 일은 다행히 급박한 낌새가 없으니 바로 돌아오는 것이 어떠하겠는가”라고 하기에, 대답하기를, “삼가 명을 받들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바로 출발하여 덕산읍(德山邑)에서 점심을 먹고 북창(北倉)에 이르러 유숙(留宿)하였다.

26일 [二十六日]

신천의 금초(錦樵) 이장헌(李章憲)에게 들렀다가 오후에 내도에 이르렀다. 본주(本州), 홍성의 아전들이 청국 군함을 영송(迎送)하는 일 때문에 모두 와서 머무르고 있었다.

27일 [二十七日]

내도에 머무르며 탐리(探吏)를 통해 영접사에게 편지를 보냈다.

28일 [二十八日]

배를 타고 출발하려고 할 때에 멀리서 일본 병선(兵船) 2척이 앞바다에 닻을 내리는 것을 보았다. 작은 배 1척이 조수를 타고 빠르게 아산 백석포로 향했는데, 해변에서 그것을 보는 자들이 모두 의심을 하고 겁을 먹었다. 관리가 내 길을 만류하며 말하기를, “지금 저 병선의 기세가 좋지 않은데, 어찌 배를 타서 서로 가까워질 필요가 있겠는가? 다시 육로를 잡는 것이 매우 좋을 듯 싶습니다”라고 하였으나 나는 웃으면서 배에 올라 돛을 올렸다. 이미 저녁 조수가 지나가서 율도(栗島)에 도착하니 밤이 이미 깊었다. 그래서 배 위에서 잠을 청하였다.

29일 [二十九日]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는 별다른 탈이 없었고, 막내 아우가 하동(河東)에서 올라와 있었다. 소식이 끊겼던 뒤라 매우 반가웠다. 그 기쁨은 손으로 움켜쥘 정도로 분명하였다. 이때에 성환역에 주둔한 청나라 군사가 일본군에게 습격을 받아 한꺼번에 도망하여 흩어졌다는 소문이 소란스러웠으나 그 단서는 자세하지 못하였지만 한양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한쪽 길이 막혔다고 한다.

주석
변란(變亂) 6월 21일 일본군이 경복궁을 강제로 점령한 일을 말한다. 일본군은 조선정부가 동학농민군과 1차 전주화약을 맺어 자국의 세력 진출이 어려워 질것을 예상하여 개혁(갑오개혁)을 도와준다는 빌미로 경복궁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6월 23일 아산만에 정박 중인 청국 군함을 기습 공격하여 청일전쟁을 야기함으로서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 야욕을 드러내었다.
탐리(探吏) 봉명사신(奉命使臣)의 가는 길을 탐문(探問)하는 아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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