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번(除煩, 번다한 인사말은 생략)하고, 모자(母子)가 이별한 후로 소식이 서로 막혀 막막하였습니다. 남북으로 가 있었으니 죽은 줄만 알고 소식이 없는가 답답하였습니다. 처음에 나주 동창 유기 모시 굴점 등에서 죽을 고생을 하다가 한 사람을 만나서 소자의 토시로 신표(信標)를 해서 보내어 어머님 함께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12월 20일 소식도 모르고 이 날 나주 옥중으로 오니 음식이 전혀 없고, 노자(路子) 1푼 없으니 아무래도 죽게 되니 어찌 원통하지 않겠습니까? 돈 300여 냥이면 어진 사람을 만나 살 묘책(妙策)이 있어서 급히 사람을 보내니 어머님 불효(不孝)한 자식을 급히 살려주십시오. 그간 집안 유고를 못 들어 갑갑합니다. 어머님 혹시 불편하시거든 제게라도 와 계실 수 있으니, 부디부디 명심하여 잊어버리지 마시고 즉시 오시기를 천만복망(千萬伏望)하옵니다. 나눌 말씀 무수하니 서로 만나 말하기로 하고 그만 그칩니다.
갑오년(甲午年, 1894) 12월 28일 달문(達文)이 편지를 올립니다.
의복 상하 한벌, 버선 한 벌, 망건, 노자 2냥, 토시 한 벌, 주이 한 벌.
온 사람과 함께 설을 편하게 지낼 터이니, 혹 가고 있어 못 오면 옥동(玉洞)가고골 한기수에게 의복을 지어 보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