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인고현 창의토포소 사실 [泰仁古縣 倡義討捕所 事實]
이는 조약에 관한 것이다. 충성할 때는 목숨을 바치고 효도할 때는 자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 신하와 아들의 본래 임무이며, 이단을 배격하고 사설(邪說)을 물리치는 것은 성현이 마음으로 경계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추로(鄒魯)의 옛 나라로 호남의 우리 현(縣)과 같은 곳에서도 현자들이 서로 일어나고 충효가 계속 이어져서, 실제로 도(道)내 기북(驥北)의 땅이었다. 무성(武城)의 거문고 소리에 아직 자유(子游)의 고풍이 남아있고, 상대(觴臺)의 노래 소리에 오히려 고운(孤雲), 최치원의 옛 터가 남아있다. 또한 순박한 풍속이 계속 이어져서 아직도 충효와 예의, 그리고 문물이 있는 땅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은 소요가 매우 심하고 세상일이 매우 혼란하도다. 이때에 함께 약조한 우리들은 모두 충훈(忠勳)과 유현(儒賢)의 후예로서 선대의 유업을 저버리지 않고, 충성된 마음을 품어 밭을 갈고 책을 읽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칼을 갈아 깊이 감추어 목숨을 바쳐 굳게 지키려 했다. 다만 좋지 않은 시기를 만났으니 한 마음으로 적에게 나아가 생사를 함께 하여, 위로는 만분의 일이라도 성은(聖恩)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충효의 선업을 지키려고는 뜻으로 조약을 만든다. 100명을 모아 피를 마시며 함께 맹세하고 오가작통을 행하고, 또한 별도로 절목(節目)을 만드니,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