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12월 5일 태인향청 전령 [甲午十二月初五日 泰仁鄕廳傳令]
곧 도착한 순영문(巡營門)의 감결(甘結)에, “침탈한 뒤에 대군이 경내에 들어와 약탈을 하여 민심을 살펴보지도 않으니 죄가 있건 없건 모두 두려워서 동서로 흩어지며 가산을 버리고 떠돌고 있다. 이미 군의 경계에 들어온 초기에 눈에 들어오는 참담한 모습을 이루 표현할 수가 없다. 대저 원괴(元魁)를 잡는 것은 그만둘 수 없는 천토(天討)이지만, 흩어진 백성을 안정시키는 것은 지금 수령이 시급히 해야 할 일이다. 이에 고시(告示) 한 장을 뒤에 기록해 감결을 보내니 원본을 정확하게 수백 통을 베껴 신속하게 각 면(面)에 두루 알리고, 또한 거리의 벽 위에 부쳐서 백성들로 하여금 모두 알게 하여 속히 다시 돌아와 살도록 하고, 거괴(渠魁)는 먼저 해당마을에서 잡아들이게 하고, 혹시 옥과 돌이 함께 불타는 탄식이 있다고 하였는바, 고시문 한통을 뒤에 베껴 쓰고 보내니 모두 알게 하여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하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