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甲午年, 1894) 6월 1일 아침에 지었다.
[이 때 방언(方彦)이 악독(惡毒)을 품은 것이 매우 심했기 때문에 그에게 보여주었다.]
너희 동도(東徒)는 모두 내 말을 들으라.
난신적자(亂臣賊子)는 반드시 사사(士師, 형벌을 맡은 관리)가 죽이지 않더라도 사람마다 죽이려 할 것이다. 사설(邪說)로 남을 해치는 사람은 반드시 성인(聖人)이 공격하지 않더라도 사람마다 공격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성인(大聖人)이 춘추(春秋) 한 부를 세상에 전하여 법을 세운 바른 가르침이고, 주부자(朱夫子)가 따라서 주해(註解)를 하였다. 이러한 의리(義理)를 누가 밝게 익혀 실천하지 않겠는가? 만약 이것을 벗어난다면, 그것은 성인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천명(天命)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너희들은 모두 우리 임금의 신자(臣子)가 아닌가? 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몇 선세(先世) 이후 오래도록 500여년간 가르치고 기른 임금의 교화를 입었고, 너희들이 하늘을 떠받치고 땅을 밟고서 비단 옷을 입고 밥을 먹어 오늘에 이른 것은 바로 누구의 힘인가? 설령 불행하게도 외국의 침범이 있으면 이성(彝性)과 혈기를 조금이나마 가진 우리나라의 신자라면 진실로 죽기를 서약하고 힘을 합쳐 모욕을 막고 적에게 저항할 겨를이 없는 것이 어떻겠는가?
너희들은 근래에 점차 사교(邪敎)에 물들어 완악한 무리를 모아 사람의 마음을 현혹하고 우리의 인륜을 어지럽혔다. 덮어주고 길러준 은혜를 모두 잊어버리고 감히 이런 패악한 일을 일으켜서 여러 읍들을 제멋대로 다니며 군기(軍器)를 빼앗고 왕사(王師)에 대항하는 등 나라의 법을 함부로 어기면서 도리어 보국안민(輔國安民)이란 가당치도 않은 말을 가지고 한 세상을 우롱하니 너희들의 마음은 길의 행인(行人)도 모두 알고 있다. 이것이 바로 사설(邪說)의 거괴(巨魁)요 난적(亂賊)의 수창(首倡)인데, 임금을 배반하고 부모를 잊어버린 불충과 불효가 이것보다 무엇이 심하겠는가? 하늘에 죄를 지으면 도망갈 곳이 없다. 너희들이 충효를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충성스럽고 효성스런 사람도 이런 일을 하는가? 위로는 국가에서 밤낮으로 불안해하는 걱정거리를 제공하고, 아래로는 민생(民生)이 경작할 곳을 잃어버리는 해를 끼치는데, 이와 같은 것이 과연 보국안민인가? 아! 세상의 저 어리석은 남자와 어리석은 여자가 너희들의 술수(術數)에 빠져 단지 사람 목숨을 함부로 죽이고 촌락을 약탈하지 않은 것만을 눈앞의 임시적인 다행으로 여기고 그 “너희를 적대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 말은 진짜를 빌어 거짓을 파는 것으로 끝없는 큰 재앙의 장본(張本)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니 진실로 불쌍히 여길 만하다.
또한 너희들은 옛 역사책을 읽어보지 않았는가? 치우(蚩尤)는 난리를 일으켜서 동액(銅額)으로 안개를 뿜었으나 결국은 탁록(涿鹿)의 들판에서 사로잡혔고, 황건적(黃巾賊)이 천하에 가득하였으나 영웅들의 손에 모두 멸하였다. 너희들과 같은 자가 회회(回回, 이슬람교)와 구파(歐巴, 유럽)의 사악한 도(道)와 현란한 술법으로 약간의 불량한 무뢰배를 규합하여 감히 반역을 저지르니, 어찌 삼천리 강산에 너희들의 죄를 성토하고 토벌을 할 충의(忠義)한 영웅호걸이 없겠는가? 게다가 금성탕지(金城湯池)는 기본이 견고하니, 너희들의 이 거사는 나무를 흔드는 개미와 불에 달려드는 나방과 같은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지금 너희들을 위하는 계획은 너희들의 병기(兵器)를 버리고 돌아가서 법사(法司)의 명령을 기다리는 것만 못하다. 우리 국가는 하늘과 땅의 관대한 도량으로 너희들의 거사를 황지(潢池)에서 무기를 가지고 작란치는 것으로 보고 오래 물든 습속을 새롭게 할 것이다. 만약 끝내 마음을 고쳐 먹지 않고 계속 버티며 감히 상대한다면 황천조종(皇天祖宗)의 영령(英靈)이 크게 분노하여 위엄을 내려 남김없이 죽일 것이고, 네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너희를 끊어버려 구제하지 않아 죽을 것이다. 너희들이 “어찌 같은 임금의 백성으로 서로 공격하는가”라고 하는데, 너희가 이미 임금의 백성인 것을 알았다면 임금의 백성으로 이와 같이 하는가? 아비가 비록 인자하지 않더라도 자식은 불효를 해서는 안되고, 임금이 비록 사랑하지 않더라도 백성은 불충을 해서는 안된다. 이 이치는 매우 분명하여 실제로 만고(萬古)에 바뀌지 않는 일정한 법도이다. 신하가 그 임금을 시해하고 자식이 그 아비를 해치는 것은 늘 옳지 못한 것을 보는 데서 시작된다. 너희들은 지금 하는 행위가 마음에 편안한가? 이치에 합당한가? 마음에 편치 않고 이치에 합당하지 않은데 참고서 이것을 한다면 반역이 심한 것이다. 일국(一國)과 일세(一世)의 죄인이 될 뿐 아니라 바로 천하 만세(萬世)의 죄인이다. 하나의 불의(不義)를 행하고 죄 없는 사람 1명을 죽여 천하를 얻는 것은 성인이 하지 않는다. 지금 너희들이 감히 이런 불충과 불의를 행하고, 이 무고한 민생(民生)이 생업에 안도할 수 없게 하는데,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옛 사람이 말하기를, “이단(異端)과 사설(邪說)의 해는 홍수와 맹수보다 심하다”고 했는데, 그 유행의 폐단은 시체가 백만이 되고 피가 천리까지 흐르는 데 이르기 때문이다. 고금(古今)을 두루 살펴보면 정말로 거짓이 아닐 것이다.
내 성명은 김한섭(金漢燮)이다. 일찍이 가훈(家訓)을 이어 약간이나마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알고 있다. 또한 스승과 친구를 따라 읽은 것은 성현의 책이고, 익힌 것은 충효의 도리였다. 그 밖에 바르지 않은 책은 눈에 한번도 접한 적이 없었고, 법이 아닌 말은 한번도 입 밖으로 내어 본 적이 없었다. 이것이 바로 평소에 지니던 것이었다. 어찌 구차하게 허튼 소리를 하고,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겠는가? 비록 궁벽한 곳과 황량한 들에 있었으나 매번 너희들이 요사와 술수로 사람을 꾀어 무리를 모은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입이 닳도록 배척하는 것은 너희들과 사소한 원한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우리의 바른 도를 해치고 인(仁)을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비록 작은 아교로 탁류(濁流)를 그치게 할 수 없음은 아나 외로운 촛불이 어두운 거리에 빛이 나게 하는 것에 슬그머니 비유하노라. 너희들이 진실로 만약에 이것으로 나에게 분풀이를 하고 반드시 원한을 갚으려고 한다면 병졸 한 사람으로 하여금 찔러 죽이면 그만일 뿐인데, 어찌 번잡하게 너희들의 많은 도당을 동원하여 지나는 곳마다 소란스럽게 하고 생령(生靈)에게 해독을 끼치는가? 옛날부터 어지럽지 않은 나라가 없었으나 난이 평정되면 민생은 저절로 편안해졌다. 지금 너희들은 반역일 뿐만 아니라 그 죄는 죽이고도 남음이 있다. 인륜(人倫)과 의상(衣裳)을 가진 우리로 하여금 점점 오랑캐의 후예와 금수(禽獸)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만약에 이것을 그만두지 않으면 기자(箕子)의 나라에서 3천년 전해오는 예의(禮義)와 문명의 풍속이 모두 없어질 것이다. 그 재앙과 죄가 어찌 반란의 갑절이나 다섯 배에 그치겠는가? 하늘이 두렵지 않은가? 사람이 두렵지 않은가?
옛날 노(魯) 나라의 왕동(汪童)이 어린 나이에 사직(社稷)을 지키다가 죽었으나 성인(聖人)이 상례(殤禮)로 장례를 치르지 말게 하였다. 지금 나는 늙고 병들었으니 장차 죽을 것이다. 군사의 일은 들어본 적이 없으나 이렇게 어지럽고 위급한 때를 맞아 비록 왕동이 했던 것처럼 무기를 잡고 사직을 지킬 수 없더라도 만약에 성인의 도를 지키고 사설을 배척하는 한 가지 일로 너희들에게 해를 당한다면 나도 달갑게 여길 것이다. 비록 아홉 번을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갑작스런 액운이 오는 것은 성인도 모면하지 못하였다. 내가 비록 어리석고 못났더라도 어찌 두려워서 달아나 몸을 온전히 할 계책을 세우겠는가? 세상의 사람 중에 누구나 한번 죽지 않겠는가? 죽을 곳에 죽는다면 이보다 다행한 것이 없다. 사는 것을 버리고 의(義)를 취하며, 몸을 버려 인(仁)을 이루는 것을 맹서한 지가 이미 오래 되었다. 지금 바름을 얻고 죽는다면 달리 유감이 없을 것이다. 밖으로부터의 영욕(榮辱)에 내가 어찌 간여하겠는가? 나의 거처는 바로 수양산(首陽山) 아래이다. 이 몸이 죽는 날에 수양산의 옆에 묻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두 사람을 따라 지하에서 노닌다면 충분하다. 어찌 달리 무엇을 말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