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회당 이건상량문[永懷堂移建上梁文]
예(禮)는 고전을 숭상하는지라 충의와 도덕은 진실로 가엾게 여기는 정성에서 연유한다고 들은 적이 있다. 이 성(城)에서 목숨을 버렸으므로 영구히 사모할 만한데, 희생(犧牲)과 폐백 및 술과 단술이 어찌 영령을 편하게 모시는 곳에 없을 수 있겠는가? 비로소 영회당의 단확(丹雘, 단청)을 새롭게 하고 옆에 푸른 옥(玉)을 두었다.
영회당으로 말하면 지명(地名)은 장흥(長興)이고 관아는 도호부(都護府)이다. 인산(仁山)이 피향각(披香閣) 뒤에서 형국을 맺으니 누각 매화의 운치가 높고, 예수(汭水)가 임벽루(臨碧樓) 앞에서 옷깃을 여미니 인가가 조밀하게 둘러싸고 있다. 경사(京師 )가 비록 천리나 멀리 있지만 물고기는(백성들은) 강호(江湖, 세상)에서 서로를 잊고 살았다. 고로(故老, 덕망이 있는 노인)가 500년간의 일을 전하나 사람들은 전쟁을 보지 못하였다. 어찌 허망하게 선동하는가? 실제로 크나 큰 근심거리다. 발해(渤海)의 적자(赤子)는 황지(潢池)의 군사를 일으켰고, 거록(鉅鹿)의 황건적(黃巾賊)은 부수(符水)란 말로 속였다. 불은 저절로 꺼지기가 어렵고 퍼지면 도모할 수가 없다. 도성(都城)은 엄중히 경계하였으나 조정의 계책이 적의 토벌할 때를 놓쳤고, 여러 읍들은 무너져버렸으나 인심이 다행히 쫓아왔다. 북군(北軍)이 빠르게 금강(錦江)을 건넜으나 의지할 것은 외국 군대의 도움이었고, 호남은 적이 모여들어 소굴이 되었으나 궁색한 이 적을 쫓아내지 못하였다. 올빼미와 맹수처럼 흉악한 마음을 쓰고 돼지와 뱀처럼 거듭 먹어버리려는 계획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길이 막혀 이웃의 도움을 의지할 수가 없었고, 칼날이 서로 부딪히니 어찌 귀중한 목숨을 아끼겠는가? 세상에서 말하는 2천만 동포가 적은 것은 아니나, 96명이 죽은 일을 나는 아는데, 어찌 그리도 많았는가? 항간(巷間)에선 오히려 칭송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조정에서는 넉넉하게 은전을 베풀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인자한 아비와 효자의 눈물이 그치지 않고, 지사(志士)와 어진 사람의 심정이 끝이 없었다. 그들이 옛날 맡은 일에 온힘을 다한 논의를 살펴보고 이 영원한 그리움을 의탁한다. 동문(東門)에 나가 방을 만들어 적을 막을 때를 상상한다. 북산(北山)을 가리켜 맹서하니 칼로 찔러 죽일 때를 잊을 만하다. 송사(松沙) 기문장(奇文丈, 기우만)이 기문(記文)을 지었고, 운정(篔汀) 이칙사(李勅使, 이승욱)가 보충하였다.
석우풍(石尤風)은 같은 심정에서 서글프고, 금비(金錍)는 내세(來世)를 권장하였다. 이어서 윤관찰사(尹觀察使)가 봉급(俸給)을 내었고, 이어사(李御士, 이승욱)가 서문과 시를 지었다. 착하지 않아 재앙을 초래하니 말(馬)에 대해 묻지 않았고, 옛일에 의하여 점을 구하니 거북이 싫어하였다. 계중(契中)에서 함께 논의하고 비석 아래에서 방향을 살피니 장인(匠人)이 정교함을 다하고 사람들은 기꺼이 일을 하는 곳에 나왔다. 산꼭대기와 물가에 이름 없는 토목(土木)이 많고, 월사(月榭)와 풍함(風檻, 난간)은 마치 정령(精靈)이 있는 것을 보는 것 같았다. 이에 파유(巴歈, 촉의 노래)를 그치고 영(郢, 초땅의 지명)의 장인(匠人)을 거들었다.
어기어차 들보를 동쪽으로 올려보자.
사자청산(獅子靑山)이 가까이에 있다.
적을 격퇴하기를 어찌 박수를 치는 것처럼 할 수 있겠는가?
태평하여 일이 없는 것은 사방(四方)이 같네.
어기어차 들보의 서쪽으로 올려보자.
봉명대(鳳鳴臺) 위에 나뭇잎은 무성하네.
왕국(王國)에 훌륭한 선비가 많이 나서
성력(聖曆, 태평성대)이 돌아와 하늘과 짝하기를 바라네.
어기어차 들보의 남쪽으로 올려보자.
예수(汭水)는 힘차게 흘러 푸른 빛으로 물들었네.
대나무 가지를 잡아 초사(楚些)를 노래하지 말라.
봄이 오니 빈조(蘋藻)가 강에 가득하네.
어기어차 들보의 북쪽으로 올려보자.
별들은 줄지어 북극성을 돈다.
충의(忠義)한 혼백(魂魄)이 어찌 다만 그렇겠는가?
강상(綱常)을 지탱하는 것은 정성에서 연유하네.
어기어차 들보의 위로 올려보자.
옛날에 도둑이 북쪽 봉우리에서 온 것을 기억하네.
대를 이은 원수에 대해 와신상담(臥薪嘗膽)한 지 지금 몇 해인가?
하늘을 향해 부르짖어도 말이 없어 더욱 처참하네.
어기어차 들보의 아래로 올려보자.
제사가 끝나니 의관(衣冠)은 결사(結社)와 같네.
하늘과 땅이 광대하니 감회는 한이 없고
마치 물이 무엇에 의지하여 쏟아내는 것 같네.
상량(上梁)한 뒤로는 향례(享禮)가 더욱 근실하고 사당의 모양은 바뀌지 않으며 완악한 사람은 청렴해지고 나약한 사람은 뜻을 세워 더욱 백세(百世)의 명성을 이루고, 효와 충을 권면하여 영구히 많은 선비들의 본보기로 삼기를 바란다.
무진년(戊辰年, 1928) 4월 9일 한양(漢陽) 조면형(趙冕衡)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