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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영회당 시의 서문[永懷堂詩序]

혹자가 나에게 묻기를, “동비(東匪)가 창궐한 것은 스스로 초래한 것이 아닌가? 복정(卜定)의 횡렴(橫斂), 무명세(無名稅)의 추가징수, 탕환(蕩還, 탕감된 환곡)의 재생, 물세(物稅)의 신설에 남쪽 백성이 들고 일어나서 동비에 의탁하여 일제히 부르짖었다. 어찌 그 근원을 고치고 그 근본을 깨끗하게 하지 않고서 단지 그들을 섬멸하는 것만을 일삼는가? 그렇다면 땅을 지키는 신하는 적을 치는 일에 목숨을 바칠 의무가 없을 듯하다”라고 하기에, 내가 놀라서 한참 만에 말하기를, “이것이 무슨 말인가? 인심(人心)의 불의에 빠짐과 사설(邪說)의 정도(正道)를 해침이 어찌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가? 하늘은 음양(陰陽)을, 땅은 강유(剛柔)를, 사람은 사악함과 바름을 가지고 있다. 종류는 부류로 모으고 물건은 무리로 나눈다. 시비(是非)가 크게 정해진 뒤에 한번의 행위를 반드시 전부 물을 수가 없고, 한 종류의 행위도 반드시 다 논할 수가 없다. 만약 장수와 군사, 자식과 도적을 구분하지 않고 사리(事理)를 단정하면 바로 눈금이 없는 저울과 같고 치(寸)가 없는 자와 같은데, 무슨 의리(義理)를 이루겠는가? 아! 동비가 처음 일어난 것이 장리배(贓吏輩)가 초래한 이유가 없지 않더라도 깃대를 세워 이름을 걸고, 명리(命吏)를 죽이며, 조정의 명령을 거역하고 성(城)을 공격하여 재물을 약탈하는데 이르니, 그것은 진실로 비류(匪類)이다. 토벌하지 않으면 재앙이 만연할 것이다. 그렇다면 땅을 지키는 신하가 목숨을 바쳐 떠나가지 않는 것이 충(忠)이고, 그 아래의 장리(將吏)가 따라 죽는 것은 의(義)이다. 충의(忠義)가 모두 아름다운데, 조정에서 어찌 포상하여 선양하는 은전이 없겠는가? 사림(士林)도 어찌 드러내는 거사(擧事)가 없겠는가? 혹자의 논의는 사설(邪說)이라 사람으로 하여금 당황하게 한다”라고 하였더니, 혹자는 순종하며 응낙하고 물러갔다.
마침 관산(冠山)의 아전이 급히 달려와서 호소하기를, “그들의 전 부사(前 府使) 박공(朴公, 박헌양)이 동비의 난리를 맞아 적에 대항하여 의에 용감하였고, 기실(記室)과 장리(將吏)까지 의를 따라 죽은 자가 90여 명이었습니다. 현(縣)의 수령 이공(李公)과 관찰사 윤공(尹公)이 그 의를 사모하여 비각(碑閣)을 도와서 세우고 그 제당(祭堂)을 군(郡)의 경내 동쪽 성문(城門)안에 마련하여 영회(永懷)라고 이름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도 10,000문(文)을 내어 그 일을 도왔고, 마침내 문답(問答)한 말을 순서대로 적어 영회당(永懷堂) 시(詩)의 서문(序文)으로 삼는다.

일찍이 웅어(熊魚, 곰의 발바닥과 물고기)를 구별하여 상(床)에서 내려놓지 않았으니,
박공(朴公)의 절개는 가을서리보다 늠름하다.
성(城)동쪽 띠풀집이 가련한데
군(郡)의 아전은 해마다 술 1잔을 올리네.

구름과 바람 비참한데 쇠와 나무에 깃든 혼령
가을밤 성의 동쪽에서 함께 괴로워하네
부모와 처자가 와서 곡(哭)을 하니
두 줄기 눈물이 흘러 구원(九原)에 흘러든다.

무술년(戊戌年, 1898) 5월 일 완산(完山) 이승욱(李承旭) 씀.

[이 때 어사(御史)였다.]

[이승욱 편지]

지난번 편지와 기문(記文)은 받아보셨는지? 병자호란 때에 화이(華夷)의 구분이 없어졌는데, 화이의 구분이 없어진 것을 애석하게 여겨 절개를 세운 자는 강화도의 충렬사(忠烈祠)에 있는 여러 공(公)들이 그런 분들입니다. 갑오년(甲午年 ) 동비때에 사람과 짐승의 구별이 없었는데, 그런 구별이 없어진 것을 통탄스럽게 여겨 절개를 세운 자는 영회당(永懷堂)의 여러 공들이 그런 분들입니다. 충렬사의 여러 공들은 태평성대에 추증하는 은전과 벼슬 및 시호의 영예로 저승에서 유감이 없을 것이고, 그 자손들은 지금 한나라의 세족(世族)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회당의 여러 공들은 한 편의 역사기록도 없는데다가 그 성명(姓名)이 상세하지 않으니, 어찌 이런 이치가 있습니까? 이것이 내가 나라의 역사에 올리고 중외(中外)에 펴려는 이유입니다.
큰 절개가 있으면 사당(祠堂)이 없어서는 안되고, 사당이 있으면 역사가 없어서는 안 됩니다. 역사는 가깝게는 사해(四海)에 도달할 수 있고, 멀게는 만세(萬世)에 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당에는 발흥과 폐지가 있으나 역사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만약 역사가 없다면 무엇을 따라 근거하여 믿고 대의(大義)를 펴겠습니까? 황하(黃河)가 흘러 한번 맑아지고 상서로운 해가 중천(中天)에 뜨면 영회당의 여러 공들이 그 연원(淵源)의 시조(始祖)가 되고, 그 자손은 반드시 천하에 제일가는 집안이 될 것입니다. 어찌 충렬사의 자손에 비유할 뿐이겠습니까? 내 말을 믿지 못한다면 하늘의 해에 맹서하겠소. 어떻게 생각하신지 모르겠습니다.

11월 2일 세하(世下) 이승욱(李承旭) 올림.

주석
복정(卜定) 상급관아에서 공납물의 액수를 결정하여 하급관아에서 바치게 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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