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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고 장흥부사 박공과 순절한 분들의 비문[故長興府使朴公及各位殉節碑文]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이르기를, “소문이 다르고, 전해들은 것이 또한 다르다”고 하였으니, 그것은 아마 “전해들은 말이 소문만 못하고 소문은 본 것만 못하는데, 본 것에는 다른 말이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리라. 아! 박공(朴公)의 순절(殉節)은 우리 남쪽의 선비들이 모두 직접 보아서 한목소리로 곧고 위대한 충절로 추대하였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한번 변하여 소문이 되고 다시 변하여 전해들은 말이 되었으나 다른 말이 없었다.
지난 갑오년(甲午年)에 사악한 비도(匪徒)가 작당(作黨)하여 여러 읍(邑)이 바람을 맞이하듯 문을 열어 비도를 받아들였다. 제법 절조가 있는 자도 오히려 관인(官印)을 풀고 가는 것을 면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박공(朴公) 헌양(憲陽)은 그 때에 장흥부사로 부임하였는데, 여러 차례 남군(南郡)을 맡아 명성과 공적이 평소에 드러났었다. 진실로 그가 큰 물결에 지주(砥柱)가 되어 의(義)를 잡고 사악(邪惡)을 배척하였다. 성(城)을 지키는데 방편이 있어, 비록 저들은 많고 우리는 적었을지라도 5개월 동안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다. 왕사(王師)가 남쪽으로 정벌함에 이르러 저들이 궁색한 도적이 되어 그 해독을 펼쳐 적은 수로 많은 수의 병사를 감당하지 못한 것은 형세상 필연적이었다. 그러나 한번 죽는 것이 백만의 군사보다 강하여 때에 맞게 저들을 소탕한 것도 공(公)이 한번 죽은 힘이었다.
아! 용맹스럽다. 함께 해를 입은 기실(記室) 박영수(朴永壽), 수성별장(守城別將) 전 사과(前 司果) 임기남(任璂南), 통장(統將) 통덕랑(通德郞) 주두옥(周斗玉), 호위장(護衛將) 전 수문장(前 守門將) 주열우(周烈佑), 그 밖에 부곡(部曲)의 장졸(將卒) 90명 등의 이름을 모두 말할 수가 없다. 임(任, 임기남)과 주(周, 주두옥과 주열우) 3명의 순절(殉節)은 모두 의기가 본래 사람에게 미더워 끝내 한 번의 장한 죽음을 이루었다.
아! 장하다 박공의 일은 조정에 알려져서 포상으로 참의(參議)에 추증(追贈)되었다. 세 사람의 죽음도 이치상 선양하는데 부합되지만 아직 거행하지 못하였다. 충신(忠臣)을 등용해서 기풍을 세우는 데에 급급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나, 지금 국가에 일이 많아 오랫동안 은전이 빠져 세로(世路)를 개탄하게 되었다. 당당한 죽음들이 어찌 이것으로 더하거나 훼손되겠는가?
공공의 논의에 따라 제단(祭壇)을 쌓고 제사를 지냈는데, 박공을 맨 처음에 두고 차례대로 배향하였다. 비(碑)를 세워 그 일의 시말(始末)을 적으려고 할 때에 내가 당시의 일에 참여하여 들었기 때문에 글을 짓게 되었다. 장명(將命)한 사람은 고향 사람인 임병추(任炳秋)였다. 아! 사악함이 바름을 해치는 것은 진실로 하늘과 땅 사이에서 용납해서는 안된다. 지금 조야(朝野)의 어려움을 보건대, 공(公)과 같은 사람이 신홀(紳笏)을 잡아 조정에 서고 장사(壯士)와 같은 사람들이 읍(邑)에서 노력한다면 보탬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죽음을 당하였다. 아! 저 사악한 무리는 만번을 죽여도 부족할 뿐이다.
명(銘)하기를,
높고 웅장하여
의로운 제단은 천관산(天冠山)에 있어
산처럼 높네.
귤은 노랗고 여지(荔支)는 빨갛네.
바닷물을 떠다가 내 술을 빚으니 정결하고
내 안주는 향기롭네.
공(公)이 오니 계기(桂旗, 깃발)가 날리고
공이 죽으니 마치 이 세상의 강상(綱常)을 지탱하는 것 같네.
공(公)을 따라 죽은 사람들도 공이 있는 곳에서
가상스럽게도 늘어서 배향하여
말없이 정도(正道)를 지탱하고 사도(邪道)를 배척하네.

무술년(戊戌年, 1898) 1월 행주(幸州) 기우만(奇宇萬)이 지음.

공(功)은 높은데 글 솜씨가 낮아서 감히 감당할 수 없었으나, 나도 위정척사(衛正斥邪)의 은택을 입은 자로서 의리상 사양할 수가 없었다. 거칠고 조잡하게 지어서 쓸 수가 없으니 당대의 큰 문장가를 다시 선택하여 그 의로운 빛을 더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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