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목[節目]
절목을 만들어 성급(成給)할 일은,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도(道)를 충효(忠孝)라고 하고, 귀신을 섬기는 예를 제사라고 한다. 사람으로 충효를 하고 귀신으로 제사를 받게 한다면 이것은 떳떳한 인륜(人倫)의 아름다운 행동이고 신명(神明)이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충효로 죽은 사람에게 제사를 지내서 귀신이 흠향하면, 어찌 수많은 귀신보다 빛나지 않겠는가?
본읍(本邑)의 갑오년(甲午年) 변고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어 늘 분노를 하던 것이었다. 이곳에 부임한 뒤에 더욱 참혹하여 애통함을 이를 데가 없었다. 먼저 내무참의(內務參議)에 추증(追贈)된 박공(朴公, 박헌양)으로부터 수성(守城)한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그 충의(忠義)를 논(論)하면, 반드시 은전(恩典)을 받아야 할 것이고, 그 정경(情景)을 말하면 누가 감탄하지 않겠는가? 간략하게 제사를 마련하여 그 충혼과 효성스런 넋을 위로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해를 입은 그들의 자제들의 원한이 이를 데가 없고 추모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여 재물을 모아 계(契)를 만들어 그 이자로 일년에 한 차례씩 제사를 올리기로 하였다. 그래서 관에서도 50냥을 지급하였고 각 면 민인들도 계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감동을 받아 능력에 따라 계를 보충하여 모두 1,000여 냥이 되었다. 그러나 이 돈을 각 면에 보내 이자를 불리려는 생각은 비록 등소(等訴)했더라도, 곗돈을 백성에게 불리면 나중에 폐단이 있을 듯하여 시행할 수가 없었다. 또한 혹시라도 성안에서 이자를 불리면 몇 년 못가서 쉽게 없어져버리므로, 이는 논을 사서 도지(賭地)를 받아 제사를 지내는 것만 같지 못하였다. 그래서 거두어서 모은 돈 1,169냥에서 499냥은 재실(齋室)을 만드는 데에 떼어놓고 670냥으로 논 21두락(斗落)을 샀다. 논의의 자호(字號)와 평명(坪名) 및 복수(卜數)는 계를 만든 조약(條約)과 함께 나열하여 절목(節目) 2건(件)을 만들어서 하나는 계중(契中)에 두고 다른 하나는 작청(作廳)에 두었다. 영구히 바꾸지 않으면 부형(父兄)의 목숨을 버린 의(義)와 자손(子孫)의 추모하는 정성이 산처럼 높고 물처럼 넘쳐서 오랫동안 전해질 것이다. 각자 따라서 실천하는 것이 마땅하다.
병신년(丙申年, 1896) 8월 일
행장흥부사(行長興府使) 착함(着銜)
후록[後]
一.제원(祭員)은 제삿날 전에 헌관(獻官)과 집사(執事) 등을 뽑는다.
一.계중(契中)에서 세 가지 소임은 나이가 많고 그것을 감당할 사람으로 뽑는다.
一.계답(契畓)은 계원(契員)으로 하지 말고, 따로 착실하게 경작할 사람을 정해 모두 준다.
一.해마다 계(契)의 유사(有司)로 하여금 추수를 감독하여 도지(賭地)를 받아 그대로 들여 쌓아두었다가 때에 맞춰 내다 팔아서 제수(祭需)를 준비한다.
一.도지를 내다 팔아 돈을 마련하여 제사를 지낸 뒤에 혹시라도 남은 돈이 있으면 따로 밖에 주어 이자를 불리고 돈이 커나는대로 논을 산다.
一.따로 양안(量案)을 구비한다.
一.미진한 조항은 나중에 마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