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초에 장수군(長水郡)의 교인 김숙여(金淑汝)가 찾아와서 은밀히 대신사가 계신 곳을 말하였다. 그래서 형이 바로 길을 떠나 보은군 고대리(高垈里) 이팔홍(李八洪)의 집에서 선생님을 뵙고 난 뒤에 계속 가까이에서 모셨고, 나도 각 처에 몰래 연락하는 것을 주로 해서 점차로 연합하였다. 갑오년 도내의 48개 포(包)가 지금에 이르러 각자 자립한 사람은 장경화(張敬化)와 조경중(趙敬中) 등 몇 사람에 불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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