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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취의통문(聚義通文)

이것을 비밀스레 돌려 가며 보고 알도록 하라[右祕輪通喩].

의(義)를 섬기는 것은 사람이 당연히 걸어야 할 길이니, 사람이 가야 할 바른 길은, 크기는 천지와 같고 밝기는 일월과 같이 뚜렷하다. 자식으로서 그 아비를 아비로 섬기고, 신하로서 그 임금을 임금으로 섬기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지닌 이가 일삼아야 할 마땅한 바로서, [모든 도리가] 이것에서 말미암아 행해지는 것이 아님이 없다. 그래서 선왕(先王)들은 정치를 함에 반드시 이것을 우선으로 삼았던 것이다. 우리 성명(聖明)에 이르러서도, 한결같이 옛 제도를 따르시어 지키고 이루셨으니, 예악과 문물은 이에 환하였으며, 덕으로 베푼 정치의 교화는 이로써 꽃을 피웠다. 이렇게 즐거이 기쁨을 누려 세상에 사치함이 없고 세속에서는 명분과 절개를 숭상하였다. 생각하니, 우리 동토(東土)의 원기(元氣)는 이렇게 아름다웠으며, 이는 진실로 백세토록 바뀌지 않았던 법도였다.
그런데 심하도다. 동학(東學)의 학(學)이 무슨 학인데 학(學)이 아닌 것으로 난(亂)을 일으키는가? 지금 그들의 동학(學)이라고 하는 것이 학(學)이 아니요 또한 난(亂)이 되는 까닭을 말하여 그 죄상을 들고자 하노라.

이른바 동학(東學)이라는 것은, 이번 봄부터 일어나서 서로 모여들어 도적질을 하고 완부(完府, 전주)를 범하였으니, 이 얼마나 위중한 짓인가? 이것이 동학이라고 하는 것이 학(學)이 아니요 난(亂)이 되는 첫 번째 까닭이다.
그때 성조(聖朝)에서 군사를 일으켜 죄를 묻고자 정벌하면서 오직 평정하고 편히 모이게 할 뿐이었다. 그리하여 특별히 너그럽게 은혜를 베풀고 귀화토록 하였으니, 이는 천은(天恩)이 망극하다 하겠다. 그런데도 [그들은] 지금까지 오래도록 버티면서 흩어지지 않고, 비록 높은 벼슬을 누리던 옛 족속의 후손들이나 여염집의 양민들이라 하더라도 으르고 협박하여 같이 그 무리로 끌어들였다. 그래서 큰 무리들은 성읍을 공격하고, 작은 무리들은 향리를 노략질하고 있다. 이것이 동학이라고 하는 것이 학(學)이 아니요 난(亂)이 되는 두 번째 까닭이다.
사람들의 무덤을 파헤치니 그 화가 백골에 미치고, 사람들의 집을 부수니 창생에게 원한을 맺고 있다. 이것이 동학(學)이라고 하는 것이 학(學)이 아니요 난(亂)이 되는 세 번째 까닭이다.
부녀자들과 재물을 금수처럼 겁탈하고, 사대부들의 의관을 똥 무더기에 빠뜨리며, 명분을 문란케 하여 공과 사가 헛되이 무너지고, 사람의 도리를 쓸어 버려 거의 남아 있는 것이 없게 되었다. 이것이 동학(學)이라고 하는 것이 학(學)이 아니요 난(亂)이 되는 네 번째 까닭이다.
도적들이 황지(潢池, 관권이 미치지 못하는 곳)를 농단하여 병권을 휘두르고, 창고의 곡식을 빼앗으며, 관리[長吏, 수령]를 능욕하고, 관군(官軍)에 항거하였다. 이것이 동학(學)이라고 하는 것이 학(學)이 아니요 난(亂)이 되는 다섯 번째 까닭이다.
아! 난신적자(亂臣賊子)가 어느 시대인들 없었겠는가마는 이렇게 심한 적은 있지 않았다. 하늘은 어찌 [그런] 사람들을 싫어하지 않는가? 또한 괴로울 뿐이다. 이때 유독 나주목(羅州牧) 민공(閔公, 이름은 鍾黙)이 성벽을 굳게 다지고 성을 지켰으며, 흥성현감(興城顯監) 윤후(尹侯, 尹錫禛)가 역시 다행히도 지키고 있었다. 이 두 읍은 호남(湖南)의 거(莒)요, 즉묵(卽墨)이다.

아! 우리 윤후의 마음은 애초 그들을 안정시키려고 하였으나 안정시킬 계책이 없으니, 계책을 달리 어떻게 낼 것인가? 반드시 이길 수 있는 형편을 기다려 이기려는 것뿐이었다. 그리하여 날마다 순행하면서 한편으로는 적정의 허실을 탐지하고, 한편으로는 훌륭한 인재들을 살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신정(新亭)의 술잔을 기울이며 통음하고, 묵묵히 광주의 벽돌(廣州之甓)을 운반하면서 오늘과 같은 거사는 참으로 준비함이 쉬웠다고 여겨진다. 이것은 말을 드러내고 할 것이 아닌지라 서로 간담을 비추어 다만 그 뜻을 보일 뿐이었다.
우리들은 [동도들이] 난을 일으킨 초기부터 시사(時事)의 변란에 분개하였고, 의기(義氣)로운 인사들과 암암리에 교류하면서 의병을 일으키리라 약속한 자들이 이미 수천 명이 되었다. 그러나 스스로 돌아보니 지혜와 술수가 얕고, 또한 마땅한 계기가 없음을 한하였다. 그래서 나중에 싸울 일에 대해 먼저 모의하고, 그들의 폐단을 기다리면서 거사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 윤후의 뒤처리를 보고 우리의 뜻이 결정되었다. 이에 춘추(春秋)의 ‘난신적자는 사람마다 죽일 수 있다[亂臣賊子 人得而誅之]’는 대의에 따라 곧 성토하려 하였는데, 지금 갑자기 관의 명령에 근거해 먼저 세상의 향로(鄕老)·향대부(鄕大夫)와 이웃 읍의 여러 군자(君子)들에게 이서(移書)한다. 우리 성조(聖朝) 5백 년 이래, 모두 인화(仁化)의 덕(德)과 예의(禮義)의 기운을 입은데다가 또한 그 임금을 임금으로 섬기고 그 아비를 아비로 섬길 줄을 아니, 신하가 충성을 바치고 자식이 효도를 하는 것은 인화(仁化)에 의해 행해지는 까닭이다. 예의(禮義)를 숭상하여 받들 날은 바로 오늘이다.
오늘날 저 흉악한 무리들은 인의(仁義)를 돌아보지 않고, 감히 반역을 저질러 임금의 위엄을 범하였다. 참으로 임금과 아비가 노할 노릇이고, 신하와 자식이 같이 원수로 여길 일이다. 그러니 진실로 하루라도 하늘을 이고 땅을 딛고 살 수 있게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에 마땅히 정법(正法)에 따라 그들의 죄상을 성토해야 할 것이니, 어찌 감히 소홀히 할 수 있겠으며, 스스로 천박하다 하며 뒤로 물러서서, 진실로 5백 년 이래로 생성(生成)시키고 함양하고 길러 주신 은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릇 우리 선비들은 국가와 함께 하고 또한 세상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다. 아! 크게 드러내어 함께 영원히 존재하려면, 마땅히 뭇사람들이 힘을 보태어 그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니, 흙먼지를 몰아 기세를 올리고 병사들을 모은다면 싸우지 않고도 [저들을] 깨뜨릴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맨주먹일지라도 하늘의 이치에 응하고 사람들의 도리에 따른다면 어찌 이기지 못할 것을 걱정하겠는가? 이기고 이기지 못하는 것은 의(義)와 불의(不義)에 달린 것이니, 의(義)로운 것은 우리 의병(義兵)이요, 불의(不義)한 것은 저들 동학(東學)이다. 그러니 하나라도 다른 논의를 내세운다면 마땅히 저들 동학과 같은 벌을 내려 당장에 엄한 심판의 도끼날을 내리칠 것이요, 대벽(大辟, 사형)에 처하여 결단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손자(孫子, 중국의 병가)의 병법과 같이 적을 토벌하고 사로잡아 베겠다[如孫討虜斫案]는 거사를 각자 살펴 후회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세상에 혹 난신적자(亂臣賊子)가 있기도 하니, 자식이면서 적이 되면 그 적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이고, 신하이면서 난을 일으키되 그 난이 또한 막심하다면 비록 눈이 어둡고 귀가 어두우며 다리를 절고 일어서지 못하는 앉은뱅이일지라도 또한 기세를 더할 것인데, 하물며 강개(慷慨)한 울분을 지닌 충의지사(忠義之士)야 이보다 백 배는 더하지 않겠는가? 이에 관령(官令)의 지중한 명을 기다려 일제히 같은 함성을 지르고 죄상을 성토하여 서로 응해 토벌할 것이다. 그리하여 위로는 성상(聖上)이 백성들을 자식처럼 지켜 주시는 은혜에 감사 드리고, 아래로는 여러 사람이 자신에게 바라는 소원을 성취하여 해동(海東, 우리나라)의 호남(湖南)이 다시 하늘의 해가 밝게 빛남을 보게 된다면 심히 다행일 것이다.

갑오년(甲午, 1894년) 9월 9일.
강영중(姜泳重), 박윤화(朴胤和), 최영섭(崔榮涉), 이회백(李會白), 박추화(朴錘和), 최규섭(崔奎涉), 김봉섭(金鳳燮), 이길의(李吉儀) 등.

주석
성명(聖明) 영명성철(英明聖哲)하여 무소부지(無所不知)하다는 것. 봉건시대에 임금을 칭송하던 말.
성조(聖朝) 왕조시대에 본조(本朝)를 높여 부르던 말.
호남(湖南)의 거(莒)요, 즉묵(卽墨) 중국 고대 춘추시대 나라와 고장을 굳게 지킨 곳.
신정(新亭) 신정루(新亭淚), 신정읍(新亭泣), 신정대읍(新亭對泣)이라고도 한다. 고국(故國)을 그리워하거나 나랏일을 근심하거나 시절을 걱정하는 비분강개한 심정을 가리킴.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言語)에 나옴.
광주의 벽돌(廣州之甓) 어려운 일을 벌인 유래를 말하는 듯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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