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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7월[七月]

초하루

적괴(賊魁) 최경선이 무리 수천을 이끌고 유린하여 멀리 몰아와 곧장 본주(本州)를 공격하였다. 오권선이 창귀(倀鬼)가 되어 그 무리를 이끌고 금안동(金安洞)에서 합진(合陣)하고 수삼 일을 침략하고는 금성산(錦城山)에 개미처럼 주둔하였다.

초 5일

어둘 무렵에 산꼭대기에서 일제히 내려와 곧장 서쪽 성문에 접근하였다. 민공이 급히 명령을 내리기를 “적이 우리 서문에 와 있다. 대적은 내가 마땅히 스스로 맡을 것이다. 오직 너희 북쪽, 동쪽, 남쪽 3문의 별장은 각기 엄하게 막고, 놀라지도 말고, 이탈하지도 말고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도록 하라. 이 적이 성동격서(聲東擊西)도남의북(圖南意北)하지 않을 지를 어찌 알겠는가. 더욱 경계를 엄히 하고 흉적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라. 끝내 마땅히 문에 임하여 너를 상주리라”고 하였다.
드디어 칼을 어루만지며 서성루(西城樓)에 올라 좌정(坐定)하였다. 도통장이 오른쪽에 있고 서문별장 박근욱(朴根郁)이 왼쪽에 있으니 지휘와 절제가 지극히 엄밀하고 적을 제압하여 승리할 계책이 이미 정해지니 조용하여 마치 태평한 때와 같았다. 이것이 이른바 “한가함으로 수고로움을 대하는 것이고, 고요함으로 소란스러움을 제압한다”고 하는 것이다.
적이 멀리서 성문을 보니 마치 텅 빈 듯하고 다만 등촉(燈燭)만 빛날 뿐이었다. 드디어 모든 무리가 성 아래에 이르러 북을 시끄럽게 울리고 함성을 내지르니 귀가 멀 지경이었으나 성문은 이미 닫혀 만 명이라도 열 수 없는 형세였다. 적은 한편으로는 성문을 부수고자 하고 한편으로는 차례로 성을 오르고자 하여 그 모인 것이 수풀과 같았다. 관군은 명령이 내려지자 즉각 대완포와 장대포를 연달아 쏘니 화염이 사방을 붉히고 소리가 산악을 흔들었다. 성 위의 각 초소는 일제히 함성을 지르고 큰 소리로 말하기를 “너 최경선과 오권선 두 적괴(賊魁)는 빨리 수급(首級)을 바쳐라”고 하였다. 바로 병든 몸의 나뭇꾼이 호랑이의 포효소리를 듣기 어렵고, 어린 아이가 천둥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과 같았다. 적도(賊徒)가 혼비백산하여 서북쪽으로 도망가니 스스로 서로 밟혀서 죽거나 다친 자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금새 취문성뢰(聚蚊成雷)처럼 들리다가 홀연히 비아박등(飛蛾撲燈)처럼 보였다. 성을 지키던 장사(將士)가 성문을 열고 병사를 내보내 승세를 타고 쫓아가 치고자 하였다.
민공이 말하기를 “적이 와서 응하는 것을 일러 ‘응병’(應兵)이라고 하는데 병응자(兵應者)는 이긴다. 전투에 이겨서 교만해지는 것을 일러 ‘교병’(驕兵)이라고 하는데 병교자(兵驕者)는 패한다. 우리는 지금 응병으로써 승리를 거두었고, 비록 꼭 교만해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전승한 뒤에 교만한 마음이 생기기 쉽다. 어찌 패배를 취하겠는가. 또 남은 적당들이 바위틈 수풀 사이에 매복하고 있을지 어찌 알겠는가”라면서 드디어 그만두게 하였다. 장사(將士)가 모두 기뻐 소리치며 말하기를 “처음에 우리가 아직 접전하지 않았을 때는 정말 동학에 신기한 부적과 주문을 하는 기술이 있나하고 의심했습니다. 오늘 밤 적을 겪어보니 나무인형[木偶] 과 풀각시[芻靈] 에 불과할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로부터 큰 함성이 진동하고 적도(賊徒)는 멀리 도망갔다.

초 6일

민공이 도통장과 더불어 4문의 수문장 및 16초(哨)의 군병, 그 나머지 별장(別將)과 별초(別哨)를 모두 불러 잔치를 베풀어 음식을 먹였으며, 또 말하기를 “전투에서 이겼으나 장교가 교만해지고 병졸이 나태해지는 것은 병가(兵家)에서 꺼리는 일이다. 아! 우리 성을 지킨 군교(軍校)들이 4월 이후 서너 달 동안 전장에서 노고가 많았다. 지난 밤 서문에서 한 번 이긴 것이 비록 그 노고를 보상할 수 있다고는 하나 어찌 한 번의 승리로 적을 얕볼 수 있겠는가. 최경선과 오권선 두 적이 지금 비록 쫓겨 갔지만 아직 죽여 없애지 못했다. 하물며 거괴(巨魁)인 김개남, 손화중과 전봉준 등은 각기 수만의 무리를 싸안고 이르는 여러 군(郡)마다 그 기세만 보고도 두려워 문을 열고 들어오게 했다고 한다. 그 밖에 이른바 ‘대접’(大接)과 ‘사접’(私接)과 ‘대포’(大包)와 ‘소포’(小包) 등 각양 잡색(雜色)의 왕래가 빈번하고 곳곳에 지렁이처럼 맺고 개미처럼 모여 본주(本州)를 엿보며 틈만 나면 들어오려고 하니 우리 고성(孤城)의 위태로움이 마치 함곡(函谷)의 일환(一丸)이나 진양(晋陽)의 삼판(三版)과 같다. 진실로 혹여 대중의 마음이 약해지고 무비(武備)에 조금이라도 게을리 한다면 지난 밤 한 번의 승리가 뒷날에 사면으로 침략하는 근심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더욱 마땅히 조심하고, 여러 범절을 막아 지키고, 게으르지 말고 더욱 부지런하면 아마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저 흉봉(凶鋒)이 지난 번 풍패(豊沛)에 입성(入城)한 날에 비해 열 배 더 많다면 우리 군대는 모름지기 백 배 더 경계해야 풍성(豊城)의 치욕을 씻을 수 있을 것이니 각기 마땅히 알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에 군사들의 사기가 더욱 고무되고 성의 수비가 더욱 단단해졌다.
이 때 승지(承旨) 엄세영(嚴世永)이 왕명(王命)으로 남쪽으로 내려와 동학을 무유(撫諭)하여 그들을 귀화(歸化)시켜 상인은 상인으로 농부는 농부로 돌아가게 하여 각기 생업을 안정시키고 평민을 어지럽히지 말며 왕법(王法)을 범하지 말라는 뜻을 낱낱이 효칙(曉飭)해서 조정의 호생광절(好生曠絶)한 은택을 보이고자 하였다. 말 한 마리와 시동 하나로 주군(州郡)을 두루 다니다가 나주에 이르러 들어와 민공을 보고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크게 기뻐했다. 도통장의 체구가 훤칠하고 말 하는 것이 시원시원한 것을 보고는 민공에게 말하기를 “내가 처음에는 영공(令公)이 이러한 어지러운 때를 당하여 개미만큼의 원조도 없이 고성(孤城)을 지키는 기세가 마치 잡아맨 깃발[綴旒] 같아 내 마음 속으로는 위태롭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와서 이 사람을 보니 진실로 간성(干城)의 임무를 맡을 만한데, 영공(令公)은 무슨 근심이 있겠습니까. 나주가 영공을 수령으로 얻은 것은 나주의 다행이고, 영공이 이 사람을 장수로 얻은 것은 영공의 복입니다. 아! 만약 영공과 이러한 사람 십 수명을 얻어 묘당(廟堂)의 위에 두고 경륜을 펼치고 천하를 호령하게 한다면 비록 지금 열강세계이라 하나 어찌 강한 이웃을 두려워하며 적국(敵國)을 근심하겠습니까”라고 하며 칭찬해 마지 않았다.
왕사(王事)가 어려움이 많아 겨우 이틀을 묵고 곧 출발하였다. 저 동학이 지극히 흉악하고 패악스러우며 도당이 참으로 많으니 영졸(營卒)로 토벌하고 왕사(王師)로 제압해도 오히려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도리어 흉역(凶逆)을 자행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항전하니 하물며 문덕(文德)으로 품어 편안하게 하는 것이 어찌 용이하게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새로 동학에 붙는 자가 날마다 늘어가고 협박으로 복종하는 자도 많아 국이 끓듯 매미가 울듯 시끄럽게 끝날 줄을 몰랐다. 한 성(省) 모든 현(縣)이 그의 손아귀 속에 있지만 오직 나주만이 의연하여 마치 금성철관(金城鐵關) 같았다. 그래서 저들이 크게 욕심내는 것은 오직 나주만을 삼키는 것이고, 크게 꺼리고 두려워하는 것도 나주였다.

주석
성동격서(聲東擊西)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적을 친다는 뜻으로, 적을 유인하여 이쪽을 공격하는 체하다가 그 반대쪽을 치는 전술을 이르는 말이다.
도남의북(圖南意北) 남쪽을 도모하는 체하면서 북쪽에 뜻을 둔다는 뜻으로, 성동격서(聲東擊西)와 비슷한 말이다.
취문성뢰(聚蚊成雷) 작은 모기도 많이 모이면 그 소리가 우뢰와 같이 들린다는 뜻으로, ‘간악한 무리들이 모여 하찮은 일을 과장하여 떠들어대면 작은 일도 대단한 일이 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비아박등(飛蛾撲燈) 비아(飛蛾)는 등불에 날아드는 불나방, 박등(撲燈)은 등불을 때린다는 뜻으로 ‘스스로 화를 자초함’을 비유하여 하는 말이다.
호생광절(好生曠絶) 살리기를 좋아함이 무한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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