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처음에 민공이 4월부터 성을 방어할 준비를 하면서 정수루(正綏樓) 위에서 사무를 보았다. 앞뜰에 숙정패(肅靜牌)를 세우고 아전과 민인을 통솔하고 격려하며 대중에게 맹세하여 고하기를 “아! 너희들은 시끄럽게 하지 말라. 꿈틀거리는 이 요적(妖賊)이 처음 부적과 주문을 끼고 백성들을 속였으니 참으로 이미 명교(名敎)에 죄를 얻었다. 무기로 우롱하고 하읍(下邑)에 해독을 끼쳐 결국에는 국가를 반역하게 되었으니 사람의 꾀로 마땅히 현륙(顯戮) 해야 하며 귀신의 밝음으로 반드시 죽여야 하지마는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도리어 더욱 부딪히고 홍수와 맹수의 화가 아침저녁으로 임박하니 내가 비록 지혜가 부족하고 견식이 모자라지만 임금의 깊은 걱정을 나누고 백리(百里)의 생명을 근심하며 맡기 위해 한 조각 고성(孤城)으로 춘추토적(春秋討賊)의 의로움을 담당하고자 한다. 군대에 대해 배운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내수외양(內修外攘)으로 좋은 책략이 있으니 중과부적(衆寡不敵)이 걱정은 아니다. 적에게 억만의 무리가 있으면 억만의 마음일 것이나 우리는 곧 한 마음 한 덕(德)이니 이기지 못할 것을 어찌 근심하겠는가. 옛 성인의 말씀에 ‘지리(地利)는 인화(人和)만 같지 못하다’고 한 말씀이 있다. 인화를 얻는다면 천지의 조화가 진실로 응할 것이니 어찌 사악한 기운이 감히 끼어들 수 있겠는가. 하물며 이 본주는 몇 백 년 의관(衣冠)의 고을이요 50 주(州) 보장(保障)의 땅이다. 오늘날 나주가 없으면 호남이 없고 호남이 없다면 온 나라가 흔들릴 것이니 지금 지키지 않으면 재앙이 일어날 기색이 하늘까지 뒤덮을 것이니 어찌 그 끝이 있겠는가. 또한 적이 반드시 나주를 빼앗아 마음을 시원하게 하려는 것은 우리 성첩이 점점 완비되고 무기가 굳세고 날카로워서 만약 빼앗아 취하면 그의 소굴이 앞으로 뒤얽힌 뿌리와 엉크러진 마디와 같은 형세에 있게 되므로 군침을 흘리며 집어삼키려 하는 것이다. 내가 이 성을 지키는 까닭이 어찌 곧 한 주(州)를 위한 계책이겠는가. 나라를 위한 계책이다. 명령을 따르고 어기는 사이에 충성과 반역이 구별될 것이다. 명령을 따르는 자에게는 상을 내릴 것이요,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에게는 항복한 적과 같은 죄를 내려 용서가 없을 것이니 마땅히 마음에 깊이 새겨 각자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대중이 모두 엎드려 대답하기를 “누가 감히 명령을 어기겠습니까. 감히 공경히 따르지 않겠습니까. 마땅히 죽을 힘을 다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때 우진영(右鎭營)이 남문 밖에 있었다. 영장(營將) 이원우(李源佑) 공이 같은 마음으로 의리를 합해서 중요한 정무를 처리하고, 주승(州丞) 박상수(朴祥壽)가 명령의 준수 여부를 감독하고 살폈다.
민공이 다시 명령을 내리기를 “병법에 이런 말이 있다. 기계(器械)가 날카롭지 않으면 그 군졸을 적에게 넘겨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고 군졸이 훈련을 하지 않으면 그 장수를 적에게 넘겨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고, 장수가 병법을 알지 못하면 그 임금을 적에게 넘겨주는 결과를 가져오게되고, 임금이 장수를 택하지 않으면 그 나라를 적에게 넘겨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러니 누가 장수로 삼을 만한가”라고 하였다. 모두 말하기를 “정석진(鄭錫珍)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라고 하였다. 민공이 말하기를 “내가 이미 마음속으로 그것을 알았다. 차장(次將)은 누가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김재환(金在煥)이 본래 활쏘기와 말타기를 잘 하고 또한 일을 잘 처리해나가는 수완이 있으니 차장이 될 만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정태완(鄭台完, 정석진)을 도통장(都統將)으로 삼고, 김재환을 부통장(副統將)으로 삼아 대오를 나누고 차례대로 가려서 정하였다. 손상문(孫商文)은 도위장(都衛將), 김성진(金聲振)은 중군(中軍), 김창균(金蒼均)은 통찰(統察)로 삼았다. 별장(別將) 박근욱(朴根郁)은 서문(西門)을 맡고, 별장 문락삼(文洛三)은 북문(北門)을 맡고, 별장 박윤칠(朴允七) 은 동문(東門)을 맡고, 별장 문관후(文寬厚)·박경욱(朴京郁)은 남문을 맡았다. 그 나머지 별장·별초(別哨)·참모(參謀)·서기(書記)·정탐(偵探)·도훈(都訓)·도천총(導千摠)·파총(把摠)은 각기 재주에 따라 직능을 맡겼으니 대체로 68인이었다.[성명은 모두 토평비(討平碑)에 실려 있다.]
별도로 힘이 좋고 튼튼한 자를 가려서 포군(砲軍)으로 삼았다. 각 고을의 한정(閒丁)도 모두 모아 들여서 16 초(哨)로 나누고 성 위에 군막을 만들어 한편으로는 손상된 성가퀴를 고치고 한편으로는 식량을 지급하였다. 낮에는 포를 쏘는 연습을 하고 밤에는 불을 밝히고 새벽까지 마름쇠[(蒺藜] 를 성호(城壕)에 몰래 늘어놓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였다. 군사의 지휘(指揮)와 통제는 모두 도통장(都統將)이 하였다.
대개 정태완은 지모(智謀)와 담략(膽略)이 평소에 많은 사람의 성망을 등에 지고 있었으므로 누구도 감히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주는 또 본래 12읍(邑) 진영(鎭營)으로, 깃발, 북, 창, 검, 활, 쇠뇌, 약환(藥丸), 대완포(大碗砲), 장대포(將臺砲), 천보총(千步銃), 편전(片箭), 장전(長箭) 등이 오랫동안 군고(軍庫)에 저장되어 있었다. 이때에 이르러 조발(調撥)하고 새로 더 고치고 정돈하니 용기가 날로 더해졌다.
전봉준(全琫準)이 함평읍(咸平邑)으로 들어갈 때 매우 패악스런 편지를 보내어 장리(將吏)가 편지를 전하러 온 사람을 베어서 적들의 무리에게 경고를 하자고 하였을 때 민공이 그만두게 하면서 단지 편지 뒤에 16 글자를 써서 쫓아버렸다. 전봉준은 화들짝 놀라 멀리 도망갔다.[상세한 내용은 위에 보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성(長城)이 적에게 시험을 당하고, 경군이 크게 패하고, 풍패(豊沛, 전주)가 무너지고, 순찰사(巡察使)가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는 소식들이 들렸다. 민공이 분연히 기운을 일으키며 말하기를 “흉도(凶徒)가 백성을 해치고 나라에 화근이 되는 것이 어찌 이러한 극한에 이르렀는가. 사내는 죽더라도 불의에 굽혀서는 안 된다. 풍패와 같이 중요한 땅은 관찰사가 지켜야 하는데도 성을 버리고 도망을 갔으니 이것이 어찌 오로지 한 성(省)의 변괴이겠는가. 실로 온 나라 백성들이 모두 분노할 일이다. 여러 군사는 각각 왕성한 기력을 쌓고 용기가 넘쳐흐르니 풍패가 무너진 것을 복철(覆轍)의 귀감으로 삼아 우리의 금성을 굳게 지키고 쓸어가는 물결 속에 지주(砥柱)가 되어 끝이 있게 하라”고 하였다. 모든 군병이 감격하여 모두 서로 힘을 합해 적을 토벌할 마음을 지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