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회생들의 상서 [湖南會生等 上書]
삼가 저희들의 거사는 모두 전임 감사김문현의 날조로 꾸민 것입니다. 군사를 일으켜서 병기를 지니고 도망하여 목숨을 보존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처지에서 나왔습니다. 사람 중에 누가 살기를 좋아하고 죽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이 없겠습니까? 동학교도들도 모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은 행동거지와 사리의 옳고 그름을 논하지 않고, 집을 불태우고 재산을 없애며 아버지와 자식을 죽여, 그 참화(慘禍)가 혹독했습니다.
사람이 살아서 생업을 즐기려고 하지 어찌 죽기를 바라겠습니까? 지난번 함평땅에서 초토사가 임금의 윤음을 받들고 내려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매우 원통한 심정을 호소하려고 한차례 의송(議送)을 내었는데 말이 매우 슬프고 간절하였으나, 한 자의 효유도 없었습니다. 다음 날 장성(長城), 땅에서 많은 대포 탄환을 뜻밖에도 어지럽게 쏘아 수백 명을 죽였습니다.
전주 감영에 들어갈 때에도 효유도 없이 많은 대포 탄환을 어지럽게 성안으로 바로 쏘아서, 매우 중요한 양전(兩殿)이 거의 무너졌고 인가 수천호가 잿더미가 되었으며, 죽거나 다친 사람은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한 임금의 신민으로 이런 패악한 변고가 있었다는 것은 고금(古今)에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어찌하여 명령을 받든 신하가 사람을 살리려는 국가의 은덕(恩德)을 펴지 않고, 도리어 김문현과 김명수(金命洙)의 간사한 청탁을 듣고 이런 지경에 이르게 하였습니까? 저희들의 오늘 형편은 진퇴유곡(進退維谷)과 같습니다. 비록 초토사의 화해(和解)의 명령을 받았더라도, 지나가는 읍들이 군대를 만들어 벌떼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금구관아에서는 군대를 동원하여 토벌하였고, 나주목사는 영장과 함께 무고한 사람을 죽였는데, 그 수를 셀 수가 없습니다. 각자 돌아가서 생업을 편안히 하라는 말씀을 어찌 믿고 따를 수 있겠습니까?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고 또한 백성이 없는 것은 두려워 할 만하다고 합니다. 교화를 펴고 백성을 기르는 관리가 생업에 돌아갈 것을 회유한 뒤에 죽이는 것이 옳은 것입니까? 그른 것입니까? 사람 중에 누가 부모를 그리워하고 처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겠습니까? 집이 불타고 처자가 죽은 자가 10에 8~9입니다. 집에 들어가는 날에 관속(官屬)이 뒤쫓아 와 잡아가서, 죽어도 그 장소를 알지 못합니다. 어떻게 집에 돌아가 생업을 안정시킬 수 있겠습니까? 아랫사람의 형편을 생각하지 않고, 다만 생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성품을 질책합니다.
진퇴를 용납하기 어려운 중에 지금 고시(告示)를 받으니, 살아날 희망이 있는 듯합니다. 특별히 임금께 아뢰어 원정(原情)의 조목마다 일일이 허락해서 시행해 주신다면 저희들이 돌아가서 안정하는 것은 저절로 될 것입니다. 밝게 살펴서 처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순변사(巡邊使)께. 1894년 5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