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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전라감사 김학진의 장계 [全羅監司 金鶴鎭狀啓]

신이 이 달 9일에 전주부에 도착한 연유는 이미 치계하였습니다. 지난 달 27일에 비류가 성에 들어올 때에 흉악한 칼날이 창궐하여 막을 수 없는 형세였고, 형편없는 병졸로 성을 지키는 것은 상대가 안되는 처지여서 애초에 방어하지 않았습니다. 법의 취지가 허물어졌으니 지난 일이라고 논죄하지 않아서는 안됩니다.
중군(中軍) 김달관(金達寬)은 신영병방(新營兵房), 무남영을 겸직하고 있어 성 지키는 것에 힘을 대하기를 남보다 갑절이나 해야 하는데도, 포소리를 듣고 먼저 도망가서 목숨을 도모하는데에 급급했습니다.
전주 영장 임태두는 적의 종적을 살핀다고 하며 먼저 성 밖에 나가 기다리다가 돌아오지 않고 갑자기 피신했습니다. 기강이 무너진 것이 이보다 심한 것은 없습니다. 성을 지킬 임무가 있는 전주 판관 민영승도 직무를 수행하지 못한 책임을 면하기가 어렵습니다. 우선 파면하여 내쫓고 담당 관사로 하여금 여쭈어 처결하게 하십시오.
또한 신영 대관(新營 隊官) 이재한(李在漢)·유재풍(柳在豊)·유판근(柳判根)으로 말한다면, 이미 패배한 병사들이 남은 용기가 없고 거느리는 주민(州民)이 비록 기본 법식이 없더라도, 끓는 물에 뛰어들고 불을 밟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는데, 어려워하지 않고 성을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군율로 살펴보면, 잠시도 보류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신의 감영에서 죄의 경중을 가려 죄상을 조사하여 처벌할 생각입니다.
감영으로 들어오는 길에 성의 서남문 안팎 인가들이 모두 불에 타서 계단은 검게 그을리고 벽은 붉게 물들었으며, 연기와 먼지가 서로 잇달았습니다. 요호가 저장한 것은 이미 없어졌고 편맹(編氓)의 항아리는 남은 것이 없어서, 남녀노소가 끌어안고 손을 끌며 길 위에서 괴로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광경이 참담하니 어찌 말로 하겠습니까?
또한 크고 작은 창고의 문은 제대로 된 것이 없고 각종의 문서와 장부는 거의 불타버렸습니다. 이민과 관예배(官隷輩)들이 모두 흩어져서 남은 호수가 10집에 9집은 비어 있었습니다. 금탕(金湯), 견고한 성과 웅장한 관부(官府)가 맥을 못 추고 하룻밤에 무너져서 이런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더욱이 이 관부는 주의 기읍(岐邑)과 한의 풍패(豊沛)와 같고 묘전의 의관이 매우 가까우니, 영부(營府) 방어의 중요함을 비교할 것이 있겠습니까?
한편으로는 대면하여 회유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令)을 내걸어 거주하는 자로 하여금 안도하게 하고 떠난 자로 하여금 다시 돌아오도록, 특별히 위로하고 구제하였습니다. 매우 불행한 이때를 맞아 서둘러 품어 보호하기를 마치 불에 타는 사람을 구제하고 불길을 잡는 것처럼 할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집을 지어 살게 하는 방법은 비록 강구하고 싶어도, 공사(公私)간에 너무 가난하여 낼 곳이 없습니다. 이른 밤에 걱정하여 빙탄(冰炭)이 마음에서 교대합니다. 보좌하는 관리을 나누어 보내어 불탄 집을 일일이 직접 가서 조사하게 한 뒤에 다시 치계하겠습니다.

주석
편맹(編氓) 호적에 편입된 평민을 말한다.
기읍(岐邑)과 한의 풍패(豊沛) 기읍(岐邑)·풍패(豊沛): 임금의 고향 또는 도읍지를 일컫는 용어로 사용된다. 전주를 ‘풍패지향(豊沛之鄕)’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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