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체직된 완백 [二十日 遞完伯]
지금 함평(咸平)의 보고를 받아 보니, “16일에 동도 6,000~7,000명이 영광에서 본현으로 곧바로 들어왔습니다. 깃발을 들고 포를 쏘며 각각 총과 창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말을 탄 자가 100여 명이었고, 갑옷을 입고 전립(戰笠)을 입거나 물든 두건을 두르고 칼춤을 추기도 하였습니다. 읍내에서 충돌하여 바로 동헌으로 들어갔는데, 이교(吏校)·노령(奴令)·수성군 100여 명이 막았으나, 바로 관문(官門)이 깨어질 때에 삼반(三班)의 과반수가 창에 찔렸고, 나머지는 모두 도망을 갔습니다. 각 건물에 머무르며 자신들이 먹을 쌀을 요민(饒民)에게 할당하였습니다. 공형을 잡아가서 그들을 영접하여 음식을 대접하지 않았다고 하여 곤장을 때렸습니다. 포흠(逋欠)을 한 아전의 성명과 각각의 문서와 장부를 거두어 갔습니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