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 정유 [二十一日 丁酉]
대내와 혜당댁, 수교 대신댁, 본영 사또댁에 전보하기를, “지금 21일 미시 경에 장병들은 무사히 금영에 도착하였습니다. 길에서 정탐 차 전주로 내려가는 섭통령이 보낸 윤득승(尹得勝) 등을 만났는데 호남의 정세는 염려할 것이 없다고 자세히 말을 하였더니 그가 말하기를 ‘이미 장수의 명령을 받았으니 잠깐 갔다가 곧 돌아온다’고 하였습니다.
또 일본 사람 3명을 만났는데 저들도 전주로 향한다고 하면서 정탐 차 내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이미 금영에 도착하여 잠시 머물러 정탐한 뒤에 서울로 올라가는 것이 좋을 듯하니 삼가 처분을 기다립니다”라고 하였다.
진남영 병방으로부터 온 전보에 이르기를, “남쪽의 소요를 토벌하여 안정시키고 지금 군사를 철수하니 나라에 다행한 일입니다. 완영에 머물러 있는 장병들의 군복은 오늘 부쳐 보냈는데 순찰[輪回]하는 일은 병영에서 묘당의 지휘를 기다리라고 합니다. 공주로 부대를 이동하는 일은 어느 날에 출발하며 우리 진영의 장병 80명은 우리 진영으로 돌려보내도록 지시해 주기를 삼가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정익산(鄭益山)으로부터 보낸 전보에 이르기를, “휴가를 얻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총제영으로부터 온 전보에 이르기를, “행차는 안녕하십니까? 오늘 아침에 일부러 사람을 시켜 글을 올렸으니 내일이면 받아 보실 것입니다. 요사이 태인에 있는 적도가 장성으로 갔는데 수효는 많지 않고, 순창으로부터 순천으로 간 자는 수효가 100명도 안 되는데 조석으로 음식을 사서 먹습니다. 각자가 귀화할 뜻이 있다고 두 읍에서 올린 보고가 순영에 들어왔습니다. 순창군수가 순영에서 급히 달려갔을 때 확실히 귀화하는 말을 주고 받았습니다.
식구와 집이 있는 자들은 모두 이미 귀화하였고, 도로에서 방황하는 자들은 식구도 집도 없고 추적당하여 체포될지 겁을 내어 아직 흩어져 가지 못한다고 순천 부사와 영장의 보고가 왔습니다. 삼가 차례로 들은 바에 따라 다시 보고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심영의 영관과 전주부에 전보하기를, “요즈음 저들의 정세는 어떠합니까? 길가는 사람들의 말만 따르지 말고 사실에 의하여 자세히 알리면 대내에 전보로 보고할 계획입니다. 섭통령(聶統領)이 군사 400명을 거느리고 전주로 향하였다고 하니, 전주에 주둔하고 있는 청의 파원(派員)들이 저들 무리가 아직도 고부(古阜)에 진을 치고 있다고 전보하였기 때문에, 청국 군사들이 내려온다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완영에 전보하기를, “정익산은 군량을 운반한 문서를 아직 마감도 하지 않은 일로 위에 여쭈었으나 휴가를 주라”라고 하였다.
사처에 전보하기를, “엎드려 금영에서 온 전보를 보니 ‘섭통령이 군사 400명을 거느리고 전주로 향하였다’고 하니 전주의 백성들이 난리를 겪은 이후로 겁을 먹어 하루에도 몇 차례씩 그냥 놀라 혹 짐을 지고 나가 피하였다가 곧 다시 들어오기 때문에 섭통령이 파견한 청의 파원이 길에 떠도는 말을 믿고 이렇게 군사를 동원하였습니다. 지금 보건대 저 ≪동학농민군의≫형세는 아무런 일이 없기 때문에 전보로 보고하고 전주를 떠났습니다. 이미 청주영과 심영의 장병들을≪전주에≫머물게 하여 저들을 진압하게 하였습니다.
저들 무리 중 아직 진을 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혹 5·60명 혹 10명 혹 5·6명에 이르는데, 아직 본업에 편히 종사하지 못한 자들입니다. 태인·금구·정읍·고부의 아전이나 관노 사령의 무리들이 전날의 원한을 씻고자 그들의 살림을 몰수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돌아가도 의지하여 머물러 살 곳이 없어 도로에서 방황하고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부유한 집에 가서 밥을 뺏어 먹을 뿐, 감히 전과 같이 노략질을 하지는 못합니다. 또 살기를 애걸하며 귀화한다는 호소문이 있기 때문에 먼저 전보로 이런 상황을 보고하였으니 이해하기 바랍니다.
5월 초 7일 저들이 올린 글에 이르기를, ‘엎드려 생각건대 저희들은 귀화하는 날이 곧 신원되는 날입니다. 감히 명령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일전에 호소한 민원은 조목마다 왕에게 보고되고 여러 읍에 하달되어 백성들이 편안하기에 이르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튿날 초 8일 올린 문서에 이르기를, ‘지금 귀화하는 날에 엄한 명령이 거듭되니 감히 감복하지 않겠습니까? 억울함을 호소한 것이 민원에 따라 관청의 뜰에 오르게 되어 영원히 덕을 송축하게 되는 것은 오직 합하의 처분에 달려 있습니다. 저희들은 곧 문에 나가 물러가서 다음의 밝은 하회(下回)를 기다립니다. 무기는 분부대로 반납하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정상이 이와 같으니 그들을 어루만지고 편안하게 하며 선후책의 길은 감사와 수령에게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내서에서 내려 보낸 전보에 이르기를, “청국군, 일본군 및 각국의 사람들이 비류를 토벌하였다고 하자 초토사가 속여서 보고하였다고 하면서 끝내 믿지 않고 있다. 전주성을 수복한 사실과 적도들이 올린 문서를 속히 먼저 올려 보내어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돌려 보여서 그들의 의혹을 없애고 입을 놀리는 단서를 막도록 하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