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초 4일 경진 [初四日 庚辰]
독판(督辦)으로부터 온 전보에 이르기를, “어제의 대첩은 매우 다행한 일이니 치하합니다. 귀댁에도 평안하고 군중도 평안합니다”라고 하였다.
공사청에 전보하기를, “전투에 사망한 여러 사람은 이미 염습을 하여 매장하고 영혼을 위로하였습니다. 실탄과 흰 무명은 마땅히 추산하여 사용할 계획입니다. 적이 믿는 바는 전녹두(全祿豆, 전봉준)와 14세의 동자인 장사 이복용(李福用)인데 전녹두는 우리의 총탄에 부상을 입어 왼쪽 다리를 쓰지 못하고 이복용은 어제 나가 싸우겠다고 큰 소리를 치다가 우리 군에게 목을 베이고 나머지는 모두 도주하고 흩어져 성안으로 들어가 담략이 떨어지고 혼을 잃어 지금 자중지난 중에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금영에 전보하기를, “어제 악전고투 끝에 저들의 괴수 몇 사람과 동자 장사 한 사람과 그 나머지 5백여 명을 베거나 사로잡고 소위 대장기를 탈취하고 총과 창 3백여 자루를 취하니 적의 무리가 반은 도주하였습니다. 중상을 입은 자는 성안으로 들어간 뒤에 굳게 지키면서 나오지 않습니다. 청국의 군사가 만약 상륙하면 양호의 민폐가 적지 않을 것이니 천천히 동정을 보면서 그들을 상륙하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순변사는 어느 날에 귀영(貴營)에 도착하였습니까? 은진에 진영을 머물게 하고 3백 명은 출발시켜 보낸 연후에야 전주를 지탱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