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초 1일 정축 [五月 初一日 丁丑]
공사청으로부터 금영을 경유하여 온 언문 전보에 이르기를, “6·7일 동안 소식이 없어 심히 답답하더니 전보를 보니 매우 상쾌합니다. 그러나 선전관과 종사관이 살해를 당하였다고 하니 참혹하고 통분함을 이길 수 없습니다. 어찌 이와 같은 변괴가 있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적의 성을 공략하고 적을 베는 것을 조금이라도 지연시킬 수는 없습니다. 적의 형세는 가벼이 볼 수 없으니 형편을 보아 군사를 지휘하십시오. 후원할 군사가 없을 수 없기 때문에 이원회(李元會)를 순변사(巡邊使)로 임명하고 기영병(箕營兵, 평양의 장병) 500명과 통위영 포대 장병은 대포를 끌고 어제 출발시켜 보냈으며 청나라 병사 3,000명이 며칠 안에 나올 것입니다. 군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전보로 금백에게 명하여 금전과 군량을 준비하여 보내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아십시오. 승리의 전보를 앉아서 기다릴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대내의 전보가 노성(魯城)으로부터 와서 이르기를, “그 간에 전공(戰功)을 얻었고 장병들은 무사하며 군량과 실탄은 모자라지 않은가? 청주의 군사들도 출발하였다고 하니 그간에 도착하였을 듯하고, 군량은 충청감사가 보내줄 것이다. 충청감사로 하여금 지휘하게 하였으니 쓰는 대로 요청하라”고 하였다.
혜당(惠堂)이 금백에게 전보하기를, “초토사가 원평으로부터 와서 오늘 전주 접전에 참여한다고 한다. 금영에서 급히≪초토영에≫통지를 보내어 여산(礪山)과 은진(恩津) 두 곳 중에 와서 방어하라는 뜻을 전하도록 하라. 곧 처분이 있을 것이다. 심영의 병력은 군산으로 돌아와 육로의 어느 곳에 있는지 곧 함께 서로 통지하여 힘을 합쳐 방어하고 가벼이 먼저 접전하지 말고 다시 자세히 탐문하라. 향하는 바가 어디인지 속히 탐문하여 알도록 하라. 비록 포군·보부상이라도 며칠간 잘 방어하면 대군이 당도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금영으로부터 온 전보에 이르기를, “전날 혜당 어르신과 왕복한 문서의 전달은 새벽에 파발마 쌍편으로 급히 보냈습니다. 아직 받아보지 못했습니까? 여산으로 퇴진하여 다시 경중을 들은 뒤에 진퇴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답신은 곧 혜당께 전보하고 회답의 전보를 기다려 다시 통지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혜당댁에서 신임 완백의 공주 금강(錦江) 처소에 전보하기를, “완영의 소문은 자세히 들었습니까? 염찰사 엄세영(嚴世永)과 순변사 이원회(李元會) 두 사람이 병력을 이끌고 내려갔습니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