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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4월 29일 을해 [二十九日 乙亥]

금영에서 대내에 전보하기를, “23일 장성 황룡장 전투 후에 저들은 장차 순창(淳昌)·담양(潭陽)·나주 등지로 향한다고 하였기 때문에 함평으로 쫓아가려고 하였으나, 완영을 지키지 못함이 있을까 염려되어 25일에 군사를 돌려 전주로 향했습니다. 적당(賊黨)이 과연 장성의 갈재[葛峴]를 넘어 완영으로 가기에 앞서 금구의 원평(院坪)에 이르렀을 때, 노문선전관(勞問宣傳官)과 하인 2사람, 윤음선유종사(綸音宣諭從事) 이효응·배은환(裵垠煥)을 모두 살해하였으니, 세상에 어찌 이와 같은 역적이 있습니까? 죽여도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급히 달려 뒤를 따르면 항상 하루의 거리 앞에 있어 마침내 적이 먼저 전주를 점거하였습니다.

전주판관과 새로 부임한 감사는 겨우 화를 면하여 다른 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28일 진시 경에 전주의 앞산에 도착하여 진을 치고 전주성을 공격하였지만 악전고투하였습니다. 신시 경에 이르러 적당 중에 갑옷을 입고 칼춤을 추며 천보총(千步銃)을 쏘는 자 30여 명을 사살하고 그 나머지 수백 명을 베고 승리의 기세를 타서 성을 공격하여 함락하게 되었는데 해가 어두워 장병들을 후퇴시켰습니다.

술시 경에 적당은 성 내외의 관청건물과 집에 불을 질러 다 태우고 성문을 닫고 굳게 지킴에 급히 공격하여 함락시키기는 어려웠습니다. 우선 산 위에 진을 치고 마을의 집에서 식량을 빌려먹으니 외로운 전세가 민망하였습니다. 지금에 이르러 저들을 적자(赤子)로 볼 수 없으므로 섬멸하여 남김이 없어야 백성들의 소생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살펴주시기를 엎드려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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