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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4월 11일 정사 [十一日 丁巳]

본영 사또가 회전하기를, “극로백(克爐伯, 크루프 소총)과 실탄(藥丸)을 소지한 1개 부대의 군사에 대한 일은 상부에 아뢰어 처분을 받은 뒤에 곧 다시 전보할 계획이다. 김시풍의 일은 이 어찌 의심하거나 염려할 바이겠는가? 평일에 흉측한 마음은 고사하고 당장의 태도가 어찌 통탄스럽고 악독하지 않겠는가? 심히 통쾌하게 처리하였다. 원세록은 지금 어느 곳에 이르렀으며 계속 탐문하는지? 그가 거느리는 군사는 모두 잘 있는지? 상세히 알려라”고 하였다.

서울로부터 완백에게 전보하기를, “일전에 향군(鄕軍)이 패배한 뒤에 경군(京軍)이 겁을 먹었다고 하니, 1개 부대를 파견하여 태인·정읍 2개 고을을 다니면서 순찰하게 하라. 혹 비류들의 계책에 넘어가 불리하게 되면 여러 가지로 불리하니 적을 가볍게 보지 말고, 또한 군사를 나누어 파견하지도 말라. 비록 호서(湖西)에서 행패를 부리는 자가 있으나, 아직 토벌하지 못하고 있다. 고부의 난민은 충분히 조심성 있게 다룰 것이요. 절대로 적을 가볍게 보지 말라”고 하였다.

본영 사또댁에서 전보하기를, “이경호가 죽었다고 하니 매우 놀랍고 참담하다. 원세록은 그저께 어느 곳으로 가서 밤을 보냈으며 오늘은 어느 곳에 머무는지, 장병들의 무고한 소식은 계속 들었지만 절대로 소홀하게 하지 말라. 원세록의 행군(行軍)은 무슨 포를 가지고 갔는가? 비밀 전보에 대한 일은 삼가 대내(大內)의 처분에 의하여 거행할 것이다. 지난날 진산(珍山)과 금산(錦山)의 소요 시에 힘써 싸운 상인(商人) 김치홍(金致洪)·임한석(任漢錫)을 장차 발탁하여 쓸 것이고, 그 외의 사람에 대한 실상도 아울러 자세히 알리도록 하라”고 하였다.

내서에서 비밀리 전보하기를, “적들의 실정을 살폈으나 아직 확실히 알지 못하고 또 호서가 소요스러우며 경기도의 방어는 미비하니 경군을 또 보내면 서울이 허술함을 면치 못한다. 전주 감영군과 민간에서 모집한 장병과 도내의 보부상은 밖≪지방≫에서 지원하도록 하라. 경군은 기회에 따라 임기응변할 것이다. 보부상들은 손에 무기가 없으니 도내 각 읍의 무기를 내주어 방어에 대비하도록 하고 조금도 놀라거나 겁을 내어 약함을 보이지 않도록 하라. 어쩔 수 없이 연락할 일 외에는 번거롭게 각처에 전보를 하지 않도록 하라”고 하였다.

공사청에 전보하기를, “호서가 또 소요스럽고 경기에는 방비가 없으니 고민스러우며 향군은 오랑캐로 오랑캐를 공격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보부상은 겨우 수백 명이지만 보발(步撥, 걸어서 문서를 전달하는 사람)로 소식을 탐지케 하였습니다. 파송된 대관 원세록은 지금 태인읍(泰仁邑)에 군사를 주둔하여 민심을 진정시키고 있습니다. 각 지방관으로 하여금 비도 중에 통문을 들고 왕래하는 자와 사방에 흩어져서 백성을 침탈하는 자를 체포하게 하였는데, 나주목(羅州牧)에서는 19명, 무장현(茂長縣)에서는 9명을 붙잡았고, 주발, 염주, 부적과 여러 가지의 술수 통문과 사서(私書) 등 책자를 수색하여 얻었고, 또 심문하여 체포하도록 명하였습니다. 지금 군민(軍民)들을 크게 모아 김시풍과 더불어 내외로 서로 호응함이 가장 심한 자 세 놈을 함께 효수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엊그제 각처에 전보하기를, “극로백 1좌, 화약과 실탄 각 1,000봉, 나화(挪火, 불을 붙이는 부싯돌) 2,000개와 장병 1개 소대를 번갈아 곧 보내주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또 전보하기를, “김시풍은 이미 처형되었고 김인동(金仁同)은 이미 도주하였으며 정석희(鄭錫禧)는 잡아 가두었습니다. 또 지난번에 사로잡는 80여 명 중 세 놈은 오늘 남문 밖에서 처형하고 67명은 무죄로 훈방하여 보내고 15명은 그대로 가두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상국(商局)에서 온 전보에 이르기를, “지난날 진산·김산에서 있었던 동도(東徒)의 소요에 너희들 두 상인(商人)이 한 마음으로 함께 모여 부상을 무릅쓰고 토벌하여 체포하였으니 극히 가상한 일이다. 그 중에 김치홍과 임한석이 제일 먼저 힘을 내어 이처럼 충성을 돈독하게 하였기 때문에 조정에서 그들을 양국(兩局)에 발탁하여 임용하려 하니, 사인(士人)인지의 여부와 내력이 어떠한지를 탐지하여 전보로 보고하고, 또 상인 중에 부상을 입은 사람이 몇 명인지 성명을 기록하여 전보로 알리고 동도 몇 명을 잡아 바쳤는지 일체를 자세히 전보하라.

비도들이 진산·김산의 소요뿐만 아니라 다른 곳의 소요도 우리 상인들이 마음과 힘을 합하여 쫓아가 체포하고 토벌하여 괴멸시키면 모든 다른 상인보다 크게 빛날 뿐 아니라 장차 조정에서 수고에 보답하는 은전(恩典)이 있을 것이니, 특별히 생각하여 방어에 대비하도록 하라. 조정으로부터 무기를 내어 주라는 내용으로 장차 영읍에 관문으로 명령을 할 것이니 이 명령이 있기 전에 혹 싸움에 이르게 된 일이 있으면 곧 영읍에 보고하여 무기를 받아 사용하도록 하라.

또한 이 전보를 감영과 초토사에게 알려 영읍에서 각별히 힘써 돕게 하라. 감영에 전보하여 모두 살펴서 알게 할 것이니 너희들이 이런 사세(事勢)를 혹 털끝만치라도 소홀하게 하면 장차 말하기 어려운 경지에 이를 것이니 끝까지 마음을 다하여 실효를 거두도록 도모하라”고 하였다.

주석
진산(珍山)과 금산(錦山)의 소요 1894년 3월경에 진산과 금산 두 곳의 농민 수천 명이 관아를 공격하고 구실아치들의 집을 파괴하자 보부상들이 이를 토벌하였다. 당시 두 곳은 전라도에 속하였다.
상국(商局) 혜상통국(惠商通局) 또는 상리국(商理局)의 줄인 말인데 상당(商堂)이라고도 한다. 이 기구는 상업관련의 일을 보았다. 한편 보부상을 관리하는 기구로 1883년 혜상통국을 설치해 보상과 부상을 완전 통합하였고 1885년 내무부로 이관해 상리국으로 개칭하고 부상을 좌사, 보상을 우사로 구분하였다.
양국(兩局) 보부상을 관리하는 좌사(좌단)과 우사(우단)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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