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초 4일 경술 [初四日 庚戌]
금월 초 4일 오시(午時, 오전 11∼오후 1시) 경에 장위영(壯衛營) 대관(隊官) 원세록(元世祿)이 거느리고 있는 1개 부대의 병력이 군수물자와 대포를 창룡호(蒼龍號)에 싣고, 대관 이두황(李斗璜)이 거느리고 있는 1개 부대의 병력은 한양호(漢陽號)에 탑승하였으며, 그 나머지 3개 부대의 병력은 중국의 군함 평원호(平遠號)에 탑승하고 신시(申時, 오후 3∼5시) 경에 출발하여 호남으로 내려간 연유를 공사청, 혜당댁, 본영≪장위영≫ 사또댁, 수교대신댁에 전보하였다. 군함에 올라 떠나려 할 때 원세개(袁世凱)의 전보를 접하여 보니 이르기를, “홍초토사(洪招討使, 洪啓薰)의 서신으로 알아 이미 평원호를 관할하는 곳인 인천 이사(仁川理事)에게 조회하여 일렀는데, 서울로부터 나에게 병선을 요청하는 서찰이 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답전을 한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