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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승정원에서 열어보십시오 [承政院 開坼]

신이 대관·교장·군관·병사를 거느리고 4월 18일 유시 경 태인현에 도착하여 숙박한 형편은 이미 보고하였습니다.

이튿날 19일 진시 경 그 현에서 출발하여 같은 날 오시 경 정읍현에 도착하여 숙박하였습니다. 곧 도착한 영광 군수 민영수(閔泳壽)의 보고 내용에, “동도 10,000여 명이 이 달 12일 사시 경 무장(茂長)으로부터 본 읍≪영광≫에 도착하여 4일간 크게 소란을 피운 후, 16일 진시 경 함평으로 향하는 큰 길로 출발하였다”고 합니다.

차례로 도착한 함평현감 권풍식(權豊植)의 보고[牒呈] 내용에, “이 달 16일 신시 경에 동도 6∼7,000명이 영광군으로부터 나올 때 깃발을 세우고 창을 잡고 칼을 휘두르고 총포를 쏘며 말을 탄 사람 등이 100여 명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혹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자도 있고, 혹 전투모를 쓴 자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칼춤을 추면서 고을을 포위하고 들어와서는 곧바로 동헌으로 향하자 군교·아전·관노·사령·수성군(守城軍) 등 150명이 관문에서 방어하였습니다.

저들이 관문을 부수고 동헌에 난입할 때 삼반관속(三班官屬) 중에 창검에 부상을 입은 자가 절반이나 되고 나머지는 모두 두려워하여 겁을 먹고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이보다 앞서 각 면의 사민(士民) 100여 명은 이들이 도착한다는 말을 듣고 미리 모여 와서는 날마다 동헌에 들어와 호위하였습니다.

저들 몇 천 명이 사방에서 겹겹으로 포위하여 총 쏘기를 그치지 않다가, 몇 십 명이 동헌의 마루에 올라 말하기를 ‘우리는 한편으로 탐관오리를 징계하고, 한편으로는 읍의 폐단과 백성의 병폐를 바로잡고 보국안민(輔國安民)하려고 각 읍을 돌아다니고 있다. 그래서 이 고을≪함평≫을 경유하게 된 것이다. 지금 사민들이 동헌에 들어와 호위하는 것을 보니 본관의 치적을 알 수 있도다’고 하고는 나와서 각 관아 건물에 나누어 머물렀습니다.

고을의 부유한 백성[饒民]에게 식량을 토색하여 각각 인가에서 밥을 지어 먹었으며, 공형을 체포하더니 맞아들이지 않고, 관의 물건으로 접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큰 곤장 5대를 친 뒤에 크게 꾸짖어 퇴출시켰다”고 합니다.

이들의 동정은 갈수록 놀라우니 그들을 섬멸할 일이 시급하기 때문에, 신은 당일 진시 경에 한편으로는 행군하여 저들≪동학농민군≫이 주둔하여 모인 곳으로 향하여 가고, 한편으로는 앞으로 진군한 대관에게 명령하여 특별히 적정을 정탐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런 사유를 우선 보고하며, 이후 행동을 계속 보고할 생각이니, 절차에 따라 임금께 아뢰어 주십시오.

1894년(光緖 20) 4월 20일

주석
수성군(守城軍) 고을을 방어하려고 아전과 민간인들을 중심으로 임시 구성된 군사들을 말한다.
삼반관속(三班官屬) 지방 관아에 딸린 향리 군졸 관노를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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