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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승정원에서 열어보십시오 [承政院 開坼]

금월 13일에 도착한 전라감사 신 김문현의 장계를 베껴 옮긴 내용입니다.

“동학도당이 금월 초 9일에 다시 무장현(茂長縣)으로 향했다는 연유를 어제 이미 보고하였습니다. 11일에 도착한 무장현감 김오현(金五鉉)의 보고 내용에, ‘현감이 부임 차 인장과 병부 및 열쇠를 이미 전해 받았으나, 장성부(長城府)에서 아직 출발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유향소(留鄕所) 좌수(座首)의 보고와 또 정탐하는 아전의 보고를 연이어 접한 내용에, ‘초 9일 신시 경에 저들 만여 명이 읍내의 동헌과 각 공공건물에 모두 난입하여 이를 파괴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읍에서 이미 체포하여 구속한≪동학농민군≫40여 명을 모두 내보내고 성내와 성밖 칠개거리의 인가에 모두 불을 질러 화염이 하늘에 솟았습니다. 좌수와 공형과 수교(首校), 그리고 읍에 거주하는 관속(官屬)을 닥치는 대로 잡아 모두 죽였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주거지를 둘러싸고 성을 만들어 항상 총을 쏘고, 한편으로는 나머지 무리들을 요로(要路)에 보내어 관속들을 찾아내고, 한편으로는 읍에서 1리 쯤 되는 곳 호산봉(狐山峯, 여시뫼)에 진(陣)을 만들어 혹 갑옷이나 투구를 입고 각각 총과 창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그 위세가 두렵고 읍의 모습이 마치 어육(魚肉)과 같이 위태로운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신고하는 사람도 없고 가서 정탐할 길도 없습니다. 무장의 모든 읍민들과 성이 화재를 입었으니 듣기에 극히 놀랍고 한탄스럽습니다.

현감이 부임하지 않았으나 적의 위세는 갈수록 더욱 창궐하고 있으니, 그들을 섬멸하는 일은 시일이 다급합니다. 초토사 신 홍계훈에게 상의하여 하루 빨리 섬멸하기를 도모할 것입니다.”

이런 연유를 임금께 보고하는 일로 장계한 것을 베껴 옮깁니다. 저들을 섬멸하는 방법을 그 도신과 함께 충분하게 상의한 뒤에 신이 거느리는 병사 중 2개 부대를 우선 무장현의 가까운 곳에 보내어 적의 동정을 정탐하고 이후의 형편을 차례로 보고할 생각입니다. 이런 연유를 임금에게 급히 보고 하니, 절차에 따라 아뢰어 주십시오.

1894년(光緖 20) 4월 14일

주석
유향소(留鄕所) 각 고을 수령(守令)의 자문 기관으로서 수령을 보좌하고 풍속을 바로잡고 향리(鄕吏)의 부정을 규찰하며 국가의 정령(政令)을 민간(民間)에 전달하고 민정(民情)을 대표하는 자치 기구이다. 임원(任員)에는 향정(鄕正) 또는 좌수(座首) 한 사람과 별감(別監) 몇 명을 두었다.
좌수(座首) 지방의 주(州)·부(府)·군(郡)·현(縣)에 둔 향청(鄕廳)의 우두머리를 말한다. 육방(六房) 중에 이방(吏房)·병방(兵房)을 맡아보았으며, 대한제국 때 향장(鄕長)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아관(亞官) 혹은 수향(首鄕)이라고도 한다.
수교(首校) 지방 장교의 우두머리로 행수군관(行首軍官)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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