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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승정원에서 열어보십시오 [承政院 開坼]

4월 12일에 도착한 전라감사 신 김문현의 장계를 옮겨 베낀 내용입니다.

“태인·부안 두 읍에 모인 동도는 금월 초 7일에 고부군 도교산으로 이동하여 주둔한 뒤 감영에서 파견한 병사들과 서로 접전한 후에 곧바로 정읍현 연지원(蓮池院)으로 향한 연유는 이미 임금께 보고하였습니다.

초 9일에 도착한 정읍현 겸임 태인현감 홍면주(洪冕周)가 보고한 내용에 ‘초 7일 술시 경에 저 무리들이 곧바로 장교청(將校廳)에 들어와 방문을 부수고 갇혀 있는 죄수 6명을 멋대로 내보냈으며, 또한 군기고(軍器庫)를 부수어 많은 창·칼 등의 무기를 가지고 갔습니다. 또한 공형의 집과 도사령(都使令)의 집 살림을 모조리 부수고 보부상(褓負商)이 모이는 집도 불을 지르고는 고부군 삼거리(三巨里)로 향하였다’고 합니다.

같은 날에 도착한 고부군수 박원명의 보고 내용에 ‘저 무리들이 초 7일에 정읍현으로부터 본군(本郡)의 삼거리에 도착하여 숙박하고, 초 8일에 흥덕(興德)으로 향하여 갔다’고 합니다.

초 10일에 도착한 흥덕현 겸임 태인현감의 보고 내용에 ‘초 8일 사시(巳時, 오전 9∼11시) 경에 저들 무리 수 천 명이 곧바로 흥덕현 관아로 들이닥쳐 군기고를 부수고 탄약과 창·칼·조총 등을 아무 어려움 없이 탈취하여 동일 오시 경에 곧바로 고창(高敞) 지역으로 향하였다’고 합니다.

동일에 도착한 고창 공형이 알려온 내용에 ‘초 8일 술시 경에 동학배(東學輩) 수천 명이 곧바로 고창 관아에 들어와 먼저 옥문을 부수고 갇혀 있는 동도 7명을 멋대로 내보냈으며, 또한 관아 아래에 있는 은대정(殷大靜)의 집에 이르러 살림을 모두 부수고 이어 불을 질렀습니다. 이후 무기를 탈취하고 여러 문서를 거두고는 동헌과 각 관용건물(官用建物)을 부수고 관인을 탈취하려하는 등 일이 매우 위급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로 인해 현감은 은밀한 곳으로 피신하고, 그놈들은 초 9일 오시 경에 다시 무장읍(茂長邑)으로 향하였다’고 합니다.

저들은 거쳐 가는 곳마다 무기와 생활 기구 등을 모두 빼앗았으니 그 행태가 극히 흉악스럽습니다. 또 각 지방관으로 말할 것 같으면 병기의 소중함을 생각하지 않고 다만 급한 화를 피하는 일만 생각하여 편안히 앉아 보면서 처음부터 막는 일이 없었으니, 법에 따라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이 일이 지나기를 기다려 마땅히 차례로 죄를 논하여 처리하겠습니다. 저 무리들의 행동을 계속 정탐하여 초토사 신 홍계훈(洪啓薰)과 함께 서로 확실하게 처단할 계획입니다.”

이런 연유를 임금께 보고하는 일로 ≪감사가≫ 장계한 것을 옮겨 베낍니다. 이들의 행동은 갈수록 흉악하니 그들을 섬멸하는 방법을 도신과 함께 충분하게 상의할 것이며 이후 사태를 차례로 아뢸 생각입니다. 이런 연유를 임금께 급히 보고 하니, 절차에 따라 아뢰어 주십시오.

1894년(光緖 20) 4월 12일

주석
장교청(將校廳) 각 고을의 군무에 종사하는 속역(屬役)과 군교들이 일을 보는 곳으로, 이들은 일반 행정을 담당한 구실아치와 구별되었다.
도사령(都使令) 심부름하는 사령의 우두머리를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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