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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 기사명
    개국 503년 갑오 4월 도내 난민에게 내리는 효유문

    원문보기 원문/국역

  • 날짜
    음력 1894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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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 [公文]

전라감영총서시 [全羅監營總書時]

도내(道內) 난민에게 내리는 효유문[曉諭道內亂民文]
       -개국 503년(1894) 갑오 4월, 관찰사를 대신하여 짓다-

본 관찰사가 불일내로 사조(辭朝)하고 급히 말을 몰아 길을 나선 것은 단거(單車)로 너희들에게 가서, 내가 임금께 연이어서 받은 너희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윤음(綸音)과 은혜로운 하교를 하나하나 선포하여, 너희들의 오랜 허물을 씻어내고 너희들의 원통한 고통을 풀어주려는데 있다. 그래서 반드시 너희들이 살아갈 수 있는 곳에 두려는 성상(聖上, 임금)의 뜻을 밝히고자 한다. 본 관찰사는 반드시 성상의 진정한 뜻을 받들어 너희들 모두가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각자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런데 본 관찰사가 천안(天安)에 이르러 장성(長城)의 소식을 듣고, 다음날 밤 금강(錦江)에서 전주(全州)의 변란에 관한 소식을 접하고서, 너무 놀라 말조차 잃어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 이유는 성상의 뜻이 아직 내려가기도 전에, 너희들이 벌써 반드시 죽을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성상의> 명을 받든 신하를 죽이고 열읍(列邑)의 병권을 제멋대로 하여 전묘(殿廟)를 놀라게 하고 성(城)을 닫아걸고 웅거하고 있으니, 생각하건대 너희들의 죄를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느냐. 비록 본 관찰사가 <너희들을> 물속과 불속에서 건져내어 임석(袵席)의 단단한 곳에 두려는 마음이 있을지라도, 이 역시 어찌하겠느냐? 이것은 너희들이 살 수 없는 지경으로 스스로 들어가 마침내 나로 하여금 너희들을 살리려는 내 마음을 끝내 베풀지 못하게 한 것이니, 참혹하고 애통하다.
너희들이 신임 관찰사에게 원통함을 하소연한 것은 무슨 일이냐? 너희들이 원통하게 여기는 것은 너희의 하소연을 헤아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나도 이미 알고 있는 일이다. 처음에는 관장(官長,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로 말미암았고 두 번째는 안핵사의 실정(失政)에 격분하여 울부짖고 원통함을 하소연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한번 모이고 두 번 모이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하소연 하여도 살펴주는 사람이 없고, 흩어지려 해도 삶을 도모할 곳이 없었다. 이런 때 효파경(梟破獍) 처럼 화심(禍心)을 기른 흉괴(凶魁)가 기회를 틈타 터무니없는 말로 선동하고 불안하고 의심스런 형세로 꾀어, 아직 안정되지 않은 민심을 헤아릴 수 없는 지경에까지 몰아넣고 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차라리 말을 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다.
그렇지만 너희들의 흉괴(凶魁) 한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너희들 천백은 그래도 아직 살 길이 있다. 저 흉괴들은 제거할 것이지만, 위협을 받아 따른 자들은 죄를 묻지 않는다는 것이 본 관찰사가 직접 받은 성상의 교지(敎旨)이다. 그러하니 너희들은 진실로 거짓 없는 마음으로 귀화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즉시 무기를 반납하며 성문을 활짝 열고 흉괴를 결박해 잡아다 휘하에서 명을 청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이 여기에 미치지 못하고, 여러 번 글을 쓰고, 다시 말을 둘러대면서 사특함을 감추고 성문을 닫아걸고, 나로 하여금 가엾은 상황을 궁구하게 하면서 갈수록 더욱 함부로 하고 있다. 그렇지만 본 관찰사가 이렇게 한결같이 효유하는 것은 끝내 차마하기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이다. 아. 우리 백성들은 분명히 나의 말을 듣고 나중에 간절히 후회함이 없기를 특별히 효유한다.

주석
이 효유문은 신임 전라감사 김학진(金鶴鎭)이 동학농민군에게 반포한 것으로, 작성시기는 1894년 4월로 되어 있으나, 실제 동학농민군에게 전달된 것은 5월 초순이다. 김학진은 4월 18일 전라감사로 임명된 뒤 서울을 출발해 5월 5일경 전라도 삼례에 도착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따라서 이 효유문은 전주성을 점령한 동학농민군과 정부군 사이에 대치하던 5월 5일 무렵 동학농민군을 진무하기 위해 반포된 것으로, 전주화약을 맺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사조(辭朝) 새로 임명된 관리가 부임하거나 외국의 사신이 떠나기에 앞서 임금께 드리던 하직 인사를 말한다.
1894년 4월 23일 동학농민군이 장성 황룡촌에서 홍계훈이 보낸 관군과 전투를 벌여 크게 승리하면서 대관 이학승(李學承)의 목을 베었던 일을 말한다.
1894년 4월 27일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한 것을 말한다.
효파경(梟破獍) 악인을 비유한 말로, 효(梟)는 어미새를 잡아먹는 올빼미, 파경(破獍)은 아비 짐승을 잡아먹는 짐승을 말한다.
화심(禍心) 남을 헤치거나 반역을 꾀하는 마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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