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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4월 17일 [四月十七日]

고부군 도교산(道橋山)에 있는 무남영의 진영이 도리어 피해를 입은 연유는 이미 급히 보고하였습니다. 신영(新營)의 우영관 이경호(李景鎬)는 군병을 이끌고 적과 겨루어 토멸할 적에 위험함을 거리끼지 않고, 혼자서 진을 지켜 가슴에 총을 맞고 얼굴에 창을 찔리고도 형색을 움직이지 않고 적을 꾸짖는 소리가 입에서 그치지 않았는데, 저들은 그 수가 많고 이쪽은 약하여서 마침내 전쟁에서 사망하였으니 충의가 모두 온전하여 마땅히 포상하였습니다.

서기 이은승(李殷升)은 영관과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마음을 지녔으며 자기가 맡은 곳을 떠나지 않아 총알에 맞았으나 죽을 때에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이름은 서리직을 띠고 있으나, 그 명을 다하면서 죽었으니, 그가 의로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낮은 자리에서 자신의 뜻을 세웠으니 진실로 가상합니다.

태인의 전 감역인 유병직(劉秉稷)은 이미 행부보상(行負褓商)의 반수(班首)였는데, 여러 상인들을 통솔하여 스스로 영관이 된 후 군대의 뒷전에 있었으나 창과 칼에 어지럽게 찔려 진문(陣門)에서 죽었습니다. 그러한 정상이 매우 극히 참혹하고 슬프며, 그의 의리는 또한 가상합니다.

담양의 국인묵은 담양의 수성별장으로, 그가 거느리고 있는 포군을 이끌고 와서 먼저 백산을 방어하는 중요 거점에서 적의 자취를 탐문하고, 이어서 험하고 좁은 골짜기 입구에 가서 양진의 형세를 보았습니다. 전군(前軍)이 외롭고 힘이 약하다는 소리를 듣고 힘을 합쳐 나아가 토벌하였으며, 또한 창과 칼에 찔리어 생명이 오래가지 못할 정도입니다.

집사 정창모(鄭昌模)는 자원하여 의로움을 발휘하여 몸을 던져서 적에게 나아갔으며, 처음에는 나누어 지키다가 끝내 합세하였는데, 사졸들이 떠나자 단신으로 계책이 없게 되었습니다. 비록 아뢸 만한 공은 얻지 못하였지만, 그의 용맹스러운 의로움은 볼만 합니다.

중군 김달관(金達寬)은 신영병방(新營兵房)을 겸대하여 적세를 살피지 못하고 갑자기 도망하여 물러갔으니, 망령되고 경솔하나 이미 군향을 마련하였으니, 이는 두려워서 포기하고 도망한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참작하여 용서할만한 일입니다.

신영대관(新營隊官) 이재한(李在漢), 유판근(柳判根) 등은 모두 영관으로 고부군에 탄약을 수송하여 올 임무를 담당하고 있었은 즉, 당장의 일의 기미가 비록 급한 것은 아니지만 목숨을 도모하려고 하였습니다. 군제로 살펴보건대 매우 소홀한 것입니다. 교장 백찬경(白贊景), 육용규(陸龍圭) 등은 그 군졸들이 먼저 도망하는 것을 보고, 서로 놀라서 멀리서 바라보고 무너져 흩어졌습니다.

부상(負商) 도반수(都班首)인 송병호(宋秉浩)는 거느리는 자들이 이미 활도 없고 가진 것 또한 군사용 칼도 아니어서 능히 세력을 도울 수 없었으므로 괴이한 것은 없습니다. 법의 뜻에 의하면 마땅히 조사하여 따져야 할 것입니다.

이상 5명은 저의 영(營)에서 경중을 나누어 감안하여 처리하여 할 것이며, 그만 둘 수 없는 것입니다. 병사와 보부상과 각 읍의 포군의 사망실수는 지방관이 조사하여 적발한 것을 보고하여 오면 차례차례 아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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