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2일 계초 [啓草 四月十二日]
동학도당이 이번 초 9일 무장현으로 방향을 바꾼 연유는 어제 이미 급히 보고하였습니다. 4월 11일 도착한 무장현감 김오신(金五信)의 보고서의 내용에, “현감으로 부임하기 위하여 인부(印符)와 열쇠를 이미 전하여 받았으며, 장성에서 아직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연이어 접한 유향좌수의 문보(文報)와 정탐을 한 구실아치의 보고에서, ‘4월 초 9일 신시(申時) 무렵 저들 무리 10,000여 명이 읍내 동헌과 각 관청에 들어가 모두 부숴버리고, 그들 무리 4,000명이 읍에서 잡아 가둔 자를 과연 모두 방출하였습니다. 성내와 성외 7거리의 인가를 모두 불에 태워서 불빛이 하늘을 찌를 듯하였고, 좌수, 공형, 수교 및 읍에 사는 관속들을 잡히는 대로 모두 죽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한편으로 주위를 둘러싸서 성을 만들고 진의 위세를 읍에서 1리 떨어진 호산봉(狐山峰)에 크게 만들어서 어떤 자는 갑옷을 입고, 어떤 자는 총과 창을 가졌습니다. 그 세력이 매우 두려워서 읍의 모양은 짓밟혀 결단이 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재차 통고할 사람도 없고, 또한 가서 조사할 길도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로써 미루어보건대 무장 1개 읍은 성 전체가 피해를 입었으니, 몹시 놀랍고 탄식할 일입니다. 현감은 이미 부임할 수 없을 만큼, 적의 세력이 갈수록 창궐하여 그들을 모조리 죽이는 것이 시일이 급합니다. 초토사 신(臣) 홍계훈과 상의하여 하루빨리 초멸할 계책을 기약하고 이런 연유를 아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