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4일에 제수(祭需) 짐꾼이 돌아가는 편에 아들에게 답장을 한다 [答阿子 三月十四日 祭需卜軍回便]
연달아 편지를 받아보고 정무(政務)를 살피는 형편이 좋고, 둘째 며느리가 탈이 없다는 것을 아니 매우 위로가 되고 기뻤다. 이 아비는 증조할아버지의 기일(忌日)이 하루 전이라 추모하는 마음을 이루 다 미칠 데가 없다. 네 어머니의 숙식(宿食)은 여전하고 네 댁의 병도 쾌차하여 매우 기쁘다. 그리고 용금(龍金)의 병은 지금에야 근심을 풀었다. 영남과 호남의 소식을 들어보면, 기민(飢民)에게 부역(賦役)이 날로 번잡하고, 관(官)의 명령은 혹독하여 원성이 길에 가득하다고 한다. 이런 때에 수령과 민생(民生)이 모두 보존하기가 어려우나 더욱 권면하는 정치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방읍(邦邑, 국세와 지방세)에서 받을 세금을 미리 헤아려서 감영에 보고하여 맥추(麥秋)까지 물리는 것이 좋을 듯하다. 돈 300냥을 내어 이익을 늘려 호포(戶布, 여기서는 고르게 매긴 병역세)할 때에 과연 읍내에 주었는가? 칭송하는 소리를 전해 들으니 매우 좋다. 3남(三南)의 동학인이 한꺼번에 서로 호응하여 일어나면 후환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근심스럽다. 제수(祭需)는 서로 대조하여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