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1일에 이돈수(李敦守)편에 아들에게 편지를 한다 [書阿子 三月十一日 李敦守便]
연일 편지를 받아보니 기쁘기가 끝이 없다. 밤사이 정무(政務)를 살피는 형편이 뜻밖의 일로 많은 근심과 괴로움을 당했는지, 둘째 며느리도 적에게 놀라거나 겁을 먹었는지 매우 걱정스럽다. 그러나 태아가 여전히 편안한 것이 다행스럽다. 이 아비와 네 어머니는 여전하고, 네 댁의 병세가 더욱 좋아져서 기쁨을 말로 다할 수가 없다. 동학류(東學類)가 괘서(掛書)한 일은 감영과 병영(兵營)에 보고하고, 그 회제(回題, 회답의 결정)에 따라 조처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러나 본 수령의 말이 이와 같고 순상(巡相, 순찰사)이 서천(舒川)에 갔다가 감영에는 보름쯤에 돌아올 것 같다고 한다. 수작(酬酌, 말로 서로 응대하는 것)하는 일이 너무 늦어지니 한탄스럽다.
내아(內衙, 관아의 안채)에 상직(相直)하는 사람이 너무 적어 이와 같은 변고가 있었기 때문에 복지(福之)와 양윤(良允)어미를 기송(起送)하였다. 대개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일은 변괴가 아닌 것이 없다. 관속배(官屬輩)가 모두 흉포하니 오래 머무르지 말고 미련 없이 그만두고 돌아가서 부모를 편안히 모시는 마음으로 청산(靑山)을 삼아라. 동학군(東學群)의 문자는 아침에 관문(官門)에 부쳐졌는데, 본 수령이 밀찰(密札, 비밀리에 보내는 공문)로 순영문(巡營門)에 알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