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 전 교리 유면호의 상소문[二一八 前校理柳冕鎬上疏][8월 초9일]
삼가 아룁니다. 병자년 개화(開化)한 이후 온 나라의 신민이 지금까지 통곡하고 있으니, 이는 전하께서 할 수 있는 일이 이미 떠난지 오래 되었기 때문입니다. 옛날의 개화란 사물을 열고 일을 이루며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이른바 개화라는 것은 역신(逆臣)들이 이웃 나라의 사주를 받아 아무런 연고없이 군대를 출동시켜 군부(君父)를 위협하고 모욕을 주며 화친(和親)을 주장하고 나라를 팔아먹는 것입니다. 6월 21일 변란의 경우 그들의 속마음을 끝까지 추측해 보면, 그 유래한 바가 오래 전부터 차츰 계획된 것입니다. 비록 아비와 임금을 죽이는 일이라도 어찌 꺼려서 행하지 않겠습니까? 응당 그들을 모두 초멸하는 데도 지체할 시간이 없는데 전하께서는 도리어 충성으로 여기십니다.
오호라, 애통합니다. 이들은 바로 나라를 망치는 무리들인데 우리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이처럼 수십 년 동안 그들에게 미혹을 당하십니까? 이로부터 하늘의 시력이 아득해졌습니다. 어떤 말이 마음에 순순히 받아 들여지면 도리에 맞는지 살펴보고, 어떤 말이 마음에 거슬린다면 도리에 맞지 않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려운 과업을 잘 하라고 요구하는 것을 대역(大役)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일상생활에서 요·순·문·무(堯舜文武)의 도리를 버리고 걸·주(桀紂)의 포악한 정치를 행하며 오직 무익한 일을 하고 외국의 물건을 귀하게 여기고 5백년 종묘사직의 흥망을 선천(先天)으로 돌리고, 삼천리 인민들이 도탄에 빠진 것을 꿈밖의 일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임금께서 크게 하고 싶으신 일은 나라를 망쳤던 진(秦)나라 이세(二世)와 진(陳)나라 후주(後主)의 즐거움이요. 앞으로의 일은 볼모가 되었던 송나라 휘종과 흠종의 계책입니다. 통곡합니다. 통곡합니다.
오호라, 애통합니다. 옛 사람들이 말하기를, “하늘의 변고는 사람의 요망함에서 시작하고, 외부의 침략은 내란에서 말미암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이 진실로 허황되지는 않습니다. 한 사람의 탐욕과 어긋남으로 인하여 한 나라에 난리가 일어난 것은 예로부터 그랬습니다. 지금 간사하고 흉악한 무리들이 온 나라에 가득 차 있으며 오랑캐와 국교를 맺자 변괴가 한번 나와 나라가 필시 멸망하게 될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 애통합니다. 혹 이와 같이 된 이후에야 임금님의 마음에 좋습니까? 그래도 부족하다고 여기십니까? 지난날 척화(斥和)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죽이지 않고 그들의 말을 들었다면, 오늘날의 수모가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첫 번째 홍재학(洪在學)의 상소문은 해와 달과 그 빛을 다툴 정도이고 늠름한 의리는 가을의 서리와 같아 사육신(死六臣)과 삼학사(三學士)에게도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임금님께서 속히 명령을 내리시어 즉시 표창하시고, 나머지 척화를 주장했던 상소문을 올린 자 혹은 당시의 폐단을 적절히 직접 언급하고 강력히 간언한 자를 낱낱이 자세히 살피시어 정려(旌閭)를 하고 등용하시어 영령으로 하여금 원망이 없게 하소서.
대개 돈이란 천지간에 사용하는 큰 물건이기 때문에 천원지방(天圓地方)의 뜻을 체득해야 합니다. 만약 구멍 없는 돈을 사용한다면 길합니까, 흉합니까? 결단코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 분명합니다. 민심이 흉흉할 즈음에 이로부터 온갖 폐단이 거듭 생기고 있으니, 애달픈 생민들은 차라리 죽는 것보다 못합니다. 간사하고 흉악한 환란이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른바 ‘큰 대(大)’자가 진실로 무슨 의리입니까. 대조선(大朝鮮)이라는 칭호를 삼는다면 왕정(王政)에 무슨 보탬이 있습니까? 운운.
갑신정변은 예전에 없던 사태로 만약 청나라 사람이 아니었다면 종묘사직이 어떤 지경에 이르겠습니까? 전하께서 천수(天壽)를 어찌 누릴 수 있었겠습니까? 생민이 편안히 보호받게 된 것은 이 누구의 힘입니까? 천추 만세가 되도록 갑신정변을 구원해준 것을 보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깊이 이를 살피소서.
『시경』에 “허물을 짓지도 잊지도 않는 것은 옛 법도를 따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니, 열성조에서 옛날부터 전래되어 온 법도는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변란 중에 새로운 법을 창출하니, 이 무슨 의사입니까? 음관(蔭官)과 무직이 계속 벼슬하고, 이서와 관아의 하인이 대대로 전수되어 온 것은 예부터 내려온 규례입니다. 그럼에도 아무런 죄 없이 없애버려 상도를 저버린 원통함을 하소연하고 있으니, 이것이 이른바 개화입니까? 간사하고 흉악한 자들의 소행이 심합니다. 운운.
상신(相臣) 김병시(金炳始)와 조병세(趙秉世)가 경연에서 충언을 아뢰였지만, 말해도 듣지 않고 간언해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갑신년에 고 상신 김병덕(金炳德)이 직언으로 극히 간언하였으니 바로 이윤(伊尹)과 여망(呂望, 강태공)과 같은 보좌인데 전하께서는 충성스러운 간언을 불충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추출하는 데에도 겨를이 없었습니다. 일마다 이와 같은데 소인배가 어떻게 친근하지 않을 수 없으며, 현인이 어떻게 소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로 인하여 흉도들이 점차 세력이 커져 드디어 헤아릴 수 없는 환란을 초래하였으니, 어찌 애통함을 견디겠습니까? 운운.
화친을 주장하고 나라를 팔아먹는 역신(逆臣)을 모두 도륙해야 합니다. 척화를 주장했던 사람들은 신원(伸寃)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청나라를 배척하는 일은 결단코 행해서는 안됩니다. 선왕의 옛 법도를 폐기할 수가 없습니다. 구멍이 없는 돈을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신의 이 상소문이 응당 중대한 형률에 합치되니, 신의 머리를 잘라서 왜인과 흉도들에게 보여준다면 개화하는 일에 큰 다행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