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5월[甲午五月]
동학도의 소문이 날로 더욱 흉흉하여 우리나라가 청나라 군진에 구원병을 요청하자, 원수(元帥) 원세개가 대인(大人) 섭사성(聶士成)을 보내 평정하게 하였다. 청나라 군사와 우리나라 군사들이 전주감영의 성문을 지키자 동학도가 성을 나올 수가 없었다. 당시 성안의 부녀자들이 배고픔을 호소하며 성 밖으로 나가기를 청하자 동학도가 거짓으로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는 척하며 말하기를, “진중(陣中)에서는 여인의 복장으로는 나갈 수가 없으니, 별도 복장으로 바꿔 입은 뒤에 모두 떠나가라”라고 하고 베로 두건을 쓰게 하였다. 우리나라 군사들이 이를 동학도로 오인하여 모두 총을 쏘아 사살하였다. 동학도는 몰래 북문으로 모두 달아나 한명도 죽임을 당한 자가 없었다.
왜인 수천 명이 한 밤중에 도성을 넘어 남산의 잠두봉(蠶頭峯)에 진을 치고 도성 안의 병기를 거두어 들였다. 원수(袁帥)가 일본 공사에게 사실을 따지기를, “만국공법(萬國公法)에 몰래 도성에 침입하여 진을 치고 군대를 움직이는 것은 그 벌금이 은(銀) 105만환(鐶)에 해당하오”라고 말하니, 일본공사가 답하기를, “만약 본국(청나라)에서 요청이 없었다면 어찌 조약을 어겼겠습니까. 우리가 앞으로 군비를 징발하겠소”라고 하였다. 원수 원세개가 크게 노하여 당로자(當路者)를 참수하려다가 중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