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 전 승지 이남규 소초[一九八 前承旨李南珪疏草][이승지, 아계 (鵝溪)의 후손]
삼가 아룁니다. 성상께서 즉위하신 이후 학문이 한층 더 밝아져 백성을 잘 인도하여 오직 정학(正學)만을 높이고 이단을 물리치시니, 다만 유관(儒冠)을 쓰고 유복(儒服)을 입은 자만 성현의 말씀을 외우고 본받을 뿐 아니라, 어린아이나 미천한 노비들까지도 정학을 따르고 이단을 배척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근래에 와서 이른바 동학(東學)이라는 것이 날로 성대해져 이들의 무리가 자꾸만 번성해져 갈 뿐만 아니라 심지어 대궐 문 앞에 봉장(封章)을 가지고 와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그들의 행태를 살펴보면, 무리를 불러 모아서 멋대로 날뛰면서 전연 아무런 거리낌이 없습니다. 그 사연을 들어보면, 저들 괴수를 위해 억울함을 호소한다는 것인데 혼매하여 두려운 줄을 모릅니다. 아, 세상이 변한다고 한들 어찌 이 지경에까지 이른단 말입니까.
저들의 이른바 학문이라는 것이 무슨 학문인지, 신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것을 가지고 말씀드리면, 그 학설은 요괴한 것이며, 그 방법은 괴력을 숭상하는 것이며, 그 마음은 변란을 생각하는 것이며, 그 법도는 귀신을 빌려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입니다. 이른바 그릇된 도리를 이용하여 정치를 어지럽히는 것입니다. 참람하게 유학의 글에 의탁하였으나 실은 해롭게 하는 것이며, 겉으로는 서학(西學)을 배척하지만 안으로는 비호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뱀이나 지렁이처럼 엎드려 뒤엉켜 있지만 결국에는 여우나 살쾡이처럼 날뛸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엄중히 다스려서 뿌리를 뽑아 버리지 않는다면 어찌 나라에 법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서학에 대해 말씀드리면, 시골 구석의 미련한 자들이 가끔 물이 들어서 서로 전파하면서 공공연히 행패를 부려도 아직까지 제거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동학 무리들이 하는 것처럼 무리를 불러 모아서 기세를 부리고 저들의 괴수를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일이 또 어찌 없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이 끼치는 화를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