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agraph align="left" indent="1">갑자년(1864, 고종 1)에 이르러 우리 황제께서 ≪경운궁[덕수궁]에≫ 입궐하여 대통(大統)을 계승하자 대원군이 국정을 주도하여 대규모로 궁실(宮室)을 중건하고 매관매직하여 백성의 고혈을 빼앗고, <annotation id="003" type="각주"><noteTitle>원납(願納)</noteTitle><noteContent>일명 원납전(願納錢)으로, 경복궁 중건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각계각층에 자진 납부하게 한 돈을 말한다. </noteContent></annotation>이라는 명색으로 세금을 마구 거두었다. 경성(京城)의 사대문(四大門)을 출입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annotation id="004" type="각주"><noteTitle>문세(門貰)</noteTitle><noteContent>경복궁 중건 경비의 부족을 충당하기 위한 서울 사대문을 통과하는 사람에게 부과한 통행세. 일명 문세전(門稅錢), 사대문세(四大門稅)이라고 하였다.</noteContent></annotation>라는 명분으로 돈을 거두었고, 화폐를 바꾸어 당백전(當百錢)을 주조하여 사용하다가 몇 년 되지 않아 또 청국(淸國)의 돈을 사용하여 호전(胡錢)이라고 칭하였다. 이 때문에 물가가 많이 올라 가산이 기울거나 탕진한 사람이 많았다. 만일 비방하거나 원망하는 사람이 있으면 감옥에 가두고 마치 삼[麻]을 베듯 살륙하여 큰 혼란이 초래되었다.</para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