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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1893년[癸巳]

1월[端月]

초1일

아침까지 짙게 흐림. 아침 이후에는 햇빛이 비추니 매우 온화하였지만 운무(雲霧)로 오히려 자욱하고 흐림.
정월 초하루에 마시는 술을 ‘도소(屠蘇)’라고 하는데, 도(屠)란 베다는 뜻이고, 소(蘇)란 모은다는 뜻이다. 이 술을 마시는 자는 즐거움을 위해 마시는 것 뿐만이 아니라, 예전에 물든 나쁜 것을 씻어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 술에 빠져 취해서는 안된다.
노숙한 농부가 말하기를, “새벽녘에 새나 짐승이 먼저 우는 것으로 한 해의 풍흉(豊凶)을 점쳤다. 까마귀와 까치가 먼저 울면 풍년이고, 참새가 먼저 울면 흉년이라고 한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서로 앞뒤로 울었다. 정오에 까치 한 마리가 논의 물에서 목욕하니, 괴이한 일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먼저 봄기운의 따뜻함을 타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그 또한 옛날을 씻고 새로운 것을 따르고자 한 것인가. 오후에 천기가 청명하고 밤에도 그랬다.

초2일

초2일

아침에는 구름으로 흐렸다가 아침 이후 맑아졌다. 성자동(聖子洞) 묘소에 전배(殿拜)하려고 갔는데 고현(羔峴) 백룡동(白龍洞)에서 출발하여 저물녘에 집으로 돌아왔다.

초3일

아침에는 흐렸다가 아침 이후에는 햇빛이 비추었다.

초4일

나는 운봉(雲峰)에 가서 이성수(李聖授)를 방문하였는데, 마침 이성수가 병환이었다. 밤에 눈이 뜰에 가득 내렸다.

초5일

맑음. 쌓인 눈이 거의 화로(火爐) 위의 한 점에 가까웠다. 그대로 이성수 집에 유숙하였다.

초6일

맑음. 이성수의 두 아들과 함께 함양(咸陽)에 가서 지사(地師) 홍성도(洪聖道)를 방문하였다. 그 사람 역시 묵은 병환이 있어 함께 오지 못하였다. 그 사람이 말하기를 “지난해 섣달 그믐날 밤에 간감방(艮坎方), 북동쪽에 시성(矢星)의 크기가 달과 같고 구름 속에 □□□□ 잠시 뒤에 사라졌다. 함양에서 이를 본 사람이 많았다”고 하였다.

초7일

맑음. 나는 이성수의 집에 돌아가 묵었다.

초8일

맑음. 길에서 쌓인 피로가 심하여 그곳에서 그대로 이틀 동안 묵었다.

초9일

맑음. 저물녁 본가에 도착하였다. 중당께서 한결같이 평안하셨다.

초 10일

맑음. 오후에 빽빽한 구름이 끼었다. 깊은 밤에 눈이 내렸다.

11일

맑음. 근래 동학과 서학이 민간을 마구 짓밟아 어리석은 백성들이 동학에 들어가지 않으면 서학으로 들어갔고, 여기에서 나오면 저기로 들어가 우리 유도(儒道)가 쇠퇴해진지 오래 되었다. 맹자가 말하기를 “양묵(楊墨)을 거부할 수 있는 말을 하는 자는 성인의 무리이다”고 하였다. 지금 만약 동학과 서학을 거부하면, 그 또한 성인의 무리이다. 대개 양주는 위아(爲我)를, 묵적은 겸애(兼愛)를 주장하였지만, 말단에는 아비와 임금을 업신여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때문에 맹자께서 말씀하여 이단을 크게 물리친 것이다. 지금 동학과 서학의 무리들은 우마(牛馬)에 의복을 입힌 경우이고, 인면수심(人面獸心)으로 참 진리를 어지럽히는 것이 양주와 묵적보다도 심하고, 백성을 미혹시키는 것이 불교와 노자보다도 심하다.
지금 □…□ 보통 일처럼 보고 도리어 □…□ 도우니 아무런 힘없이 말만할 수 있는 선비가 도리어 그 해를 당한 경우가 많았다. 아, 도도한 푸른 바다에 누가 □…□ 아득한 긴 밤에 누가 어두운 거리에 촛불이 되어 인도할 것인가.

12일

아침에 맑았고 이윽고 짙게 흐렸다가 혹 개었다. 눈이 조금 내리고 바람이 가볍게 불어왔다.

13일

□…□

14일

맑음. 봄기운이 화창하였다.

15일

아침에 구름이 하늘을 가렸는데, 아침 이후에 맑아졌다. 오후에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다가 밤에 조금 더해졌다.

16일

흐렸다가 맑아지고 바람이 불었다. 가친(家親)이 중부(仲父)와 함께 순창으로 가서 조고(祖考)의 산소[심초리(深草里)에 위치한다.]에 성묘하였다.

17일

아침 이후 맑음. 죽계(竹溪)로 가는 도중에 바람과 눈을 만났다. 가는 걸음이 매우 어려웠다. 눈을 무릅쓰고 농산(農山) 신득구(申得求) 어른을 알현하고 관자(冠子)의 시에 차운하고 시간을 보내며 학문에 대해 강론하였는데 그동안 바람과 눈이 조금 그쳤다. 오후에 지당(池塘)에 가서 방씨(房氏) 집안으로 시집간 고모를 뵈었다.

18일

맑음. 아침 이후 본가에 도착하였는데, 가친이 돌아오셨다. 어제 바람과 눈 속에서 평안하셨으니 매우 다행이다.[이하 일기 역시 망실함이 많았다.]

주석
양묵(楊墨) 자애설을 주장한 양주(楊朱, 또는 楊子)와 겸애설을 주장한 묵적(墨翟, 또는 墨子)를 말한다. 맹자는 이를 이단이라고 공격했다. 곧 동학과 서학을 비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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