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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12월[十二月]

초 9일

원동(院洞)에 있는 선비(先妣) 산소에 상석(床石)을 먼저 세우고 제사를 지냈다. 11일 선고(先考)의 산소에서 재계하였다. 석물(石物)을 모두 세워 묘도(墓道, 산소가는 길)가 찬란하였다.

12일

고향 마을에 돌아오자 손님과 벗들이 전례(奠禮, 죽은 사람의 영전에 올리는 예물)를 행하니, 슬픈 감정이 일어나면서 경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경비는 도합 1백 7십 7냥 3전(錢)이다. [석수공전(石手工錢) 합 70냥, 정군세(釘軍貰) 9냥, 마석(磨石) 값 8냥, 나머지는 모두 술과 음식값 빚이었다.]
안동부(安東府) 관찰사 김석중(金錫重)이 먼저 스스로 단발을 하고 노령(奴令)에게 머리카락을 자르게 하니, 노령들이 일제히 나가서 일본병사 몇 명을 구타하여 살해하였다. 또한 온 고장 아무개 아무개 집에서 통문을 돌려 서로 모여 드디어 의병을 창설하고 각 고을에 통문으로 알렸다. 대장(大將) 권세연(權世淵), 부장(副將) 곽종석(郭鍾錫), 총병(摠兵) 유신영(柳臣榮), 내방장(內防將) 유응수(柳應守), 외방장(外防將) 김우진(金佑鎭), 모사(謀事) 김□□, 종사관(從事官) 유(柳)□□이라고 한다.
진주 관찰사 이(李)□□은 맹세코 단발을 하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 장정을 불러 모아 일본병사 70명을 찾아내서 죽였다고 한다. 홍주(洪州) 관찰사 역시 단발을 하지 않으려고 소속 22개 읍에 은밀히 통지하여 드디어 일본병사를 쫓아냈다고 한다. 이와 같은 관원들은 의리를 지킴이 당당하도다. 아, 저 김석중이 어찌 귀가 없지 않으리오.
본도 관찰사 이중하(李重夏)가 먼저 단발하고 열읍(列邑) 관원에게도 머리카락을 자르려고 하였는데, 관원이 서로 관망하며 먼저 단발하려고 하지 않았다. 본읍 수령 이범창(李範昌)은 바로 관찰사의 재종질(再從姪)이다. 관찰사와 더불어 모의하여 열읍 보다 먼저 온 고을의 백성을 단발하고자 하였는데, 백성들이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안의(安義)에 거주하는 노응규(盧應奎)가 임상제(林喪制)와 강승(姜僧) 5∼6인이 함께 모의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그는 정병(精兵) 70인을 얻어 곧장 진주 감영에 이르러 한밤중을 틈타 성을 함락시키고 관아에 주둔하였다. 원근에서 따르기를 원하는 자들이 하루에 거의 백여 명씩이나 모여들었기에, 장차 대구감영을 함락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대구 관찰사 이중하가 이 소식을 듣고 몹시 두려워서 먼저 군사를 일으켜 고령(高靈) 등지로 진격하여 방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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