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十一月]
초 9일
나는 기동(耆洞) 고숙(姑叔)[여석무씨(呂錫武氏)]와 함께 영저(營邸)에 가서 신달판(申達判) 어른[신학휴씨(申學休氏]을 뵈었다. 그리고 복시의 대강의 줄거리를 물으니 금년의 복시는 공정한 도리가 없을 듯 하다고 하였다.
15일
조반을 먹었다. 선화당(宣化堂) 문 밖에 가니 복시에 응시한 유생들이 많이 와서 기다렸다가 이름을 부르면 차례로 들어갔다. 이어서 시(詩)·부(賦) 각 3수씩 출제하였다.[시제(詩題)는 ‘거문고를 타고서 사마의를 물리침[彈琴却司馬懿]’,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천도(天道)의 떳떳함이다’, ‘임금의 은덕을 널리 펼치고 백성과 더불어 즐기는 것은 자사(刺史)의 일’이다.] 나는 즉시 시권을 작성하여 제출하였고, 고숙 역시 시권에 글을 다 쓰고 시험장을 나왔다.
16일
비교방(比較榜, 급제자의 등급)이 나왔는데, 나와 고숙과 친구 조윤묵(曺允默)이 참방하여 비교(比較) 3인이 모두 당상(堂上)으로 올라갔다. 비교 유생 50원(員)이 모두 차례대로 열좌(列坐)하여 자리가 정해지자 시제를 걸었는데,[시제(詩題)는 ‘현량방정(賢良方正)하고 직언극간(直言極諫)한 선비를 등용함’이다.] 주필(走筆)로 써서 시권을 올리니, 그 순서가 바로 이천(二天)이었다. 조금 있다가 비교방이 나왔는데, 나는 낙방하고 고숙은 또 비교방에 참여하고 조윤묵은 원방(原榜, 과거급제)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