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사년(1893)
3월에 동학도 수만 명이 보은군(報恩郡) 장암(長岩)에 모였다. 이른바 두령(頭領)이란 자는 최법헌(崔法軒, 해월 최시형)이고, 서병학(徐秉學) · 송병희(宋秉熙) · 이근풍(李根豊) · 이중창(李重昌) · 이희인(李熙仁) · 조재해(趙在海) · 이국빈(李國彬) · 황하일(黃河一) · 최복술(崔福述)은 모두 부두령이다. 과천(果川) 수령 -이름은 알지 못한다- 또한 관인(官印)을 내팽겨치고 그곳으로 갔다. 10여 일이 지난 후 보은에서 올라온 보첩(報牒)을 보니, 추가로 모인 동학도까지 모두 계산하면 6만 7천여 명이라고 하였다. 순무중군(巡撫中軍) 홍재희(洪在羲)가 경병(京兵) 5백 명을 거느리고 가서 토벌하려고 하였다. 동학도가 이 소식을 듣고 4월 초2일 밤을 틈타 달아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