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유년(1885)
8월 28일 대원군 대감이 억울한 일이 명백히 밝혀져 풀려나 환국하자, 본국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대감이 보정부에 들어간 초기에 중국 진남대장(鎭南大將) 이홍장(李弘章, 弘은 鴻의 오기)이 병권을 통괄하여 나라에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황제의 명으로 대원군 대감을 공초(供招)하였는데, 이장(李將, 이홍장)은 당(堂) 위에 앉아 있고 대감은 당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 높이의 차이가 서로 10여 계단 정도였다. 이홍장이 말을 하면 주위에 모시는 자가 그 말을 전달하여 질문하였다.
대감은 처음에 한 마디 답변도 하지 않았다. 이홍장이 또 답변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대감이 말하기를, “장군은 비록 지체가 높더라도 중국의 신하이고, 나는 낮더라도 국왕의 아버지이오. 그 고하(高下)의 차이가 이와 같으니, 지금 어찌 10여 급(級)의 차이가 나는 것이오? 옛날 천자의 당(堂)은 9척이고 제후의 당은 7척으로 그 차이는 겨우 2척이었소. 천자의 방석은 다섯 겹이었고 제후의 방석은 세 겹으로, 그 차이는 겨우 2겹 뿐이었소. 이와 같이 높고 낮음이 황제와 왕일지라도 당(堂)은 2척, 방석은 두 겹에 불과하였소. 그런데 지금 내가 장군과 비교해 보면 10급의 아래에 있으니, 예법이 매우 잘못 되었소. 오늘 내가 변무(辨誣)하는 날인데, 변무란 잘못된 일을 변별하는 것이오. 눈앞에 10급의 잘못 됨을 변별하지 못하면서 감히 천리 밖 먼 곳의 일이 잘못 된 점을 해명하기를 바랄 수 있겠소? 예법의 잘못된 점은 쉽게 변별할 수 있지만, 무고의 잘못된 점은 변별하기가 어렵소. 그 쉬운 것도 변별할 수 없는데, 어찌 감히 어려운 것을 변별하기를 바라겠소. 이미 변별할 수 없다면 억울하게 죽을 뿐이오. 그러므로 말하고 싶지 않는 것은 변별하고 싶지 않은 것이오”라고 하였다. 이장군은 이 말을 듣고 “내가 사과하겠소”라고 말하고 공손히 일어나 당으로 영접하자, 여러 장수와 군졸들 역시 경복(敬服)하였다.
보정부는 본래 큰 관부(官府)였는데, 귀매(鬼魅)로 인하여 폐해진지가 오래 되었다. 풀과 나무가 무성하고 여우와 이리가 담장을 뚫고 자기 굴로 삼았다. 관청의 건물과 담장이 무너져 거주할 수가 없었지만, 대감은 거처함에 난색(難色)이 없었다. 모시는 자들은 모두 본국에서 평소 친하여 데리고 온 사람 몇 명 뿐이었다. 중국 사람이 대감께서 난초를 잘 그리고 예서(隷書)를 잘 쓴다는 말을 듣고 금전(金箋)과 옥지(玉紙)를 가지고 와서 다투어 받아간 자가 모두 명사(名士)의 부류였다. 대접하는 예를 극진히 하였다. 수성관(守城官) 또한 대감을 잘 섬기고 공대하였다.
보정부 뒤쪽 매우 가까운 곳에 화약고(火藥庫) 수십 칸이 있었는데, 화약이 있는 곳이 반이고 빈 곳이 반 정도였다. 갑자기 어느 날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 불이 일어나 먼저 화약이 없는 창고를 태우기 시작하여 화약이 있는 곳까지 이르게 되었다. 온 성안의 사람들이 모두 놀라 달아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수성관이 화재가 발생하였으니 대감께서는 빨리 피신하라고 황급히 말하였다. 하지만 대감은 느긋하게 말하기를, “피신한들 장차 어디로 가리오. 화약고의 화재가 비록 맹렬하지만 어찌 감히 황제의 위엄을 당할 수 있으리오. 나는 바로 황제의 죄인으로, 생사(生死)의 운명이 황제에게 달려있지 화재에 달려있지 않으니, 어찌 화재를 두려워하여 구차히 목숨을 구하리오. 원컨대 수성관은 응당 빨리 떠나 화란을 피하고 나 때문에 지체하지 않아야 할 것이오”라고 하였다. 수성관이 대감의 소매를 붙잡으며 더욱 요청하였지만, 대감은 더욱 듣지 않고 조금도 움직일 기색이 없었다. 이와 같은 때에 바람이 홀연히 반대로 불어 화재가 저절로 꺼졌다. 중국 사람들이 대감의 충직과 아량을 칭찬하였다. 어떤 이는 신인(神人)이라 하고 어떤 이는 천인(天人)이라고 하였다. 이 말이 황제에게 전달되었다고 한다. 여러 사람들이 전하는 바, 듣기에 매우 황공하므로 드디어 여기에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