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오년(1882)
6월에 일어난 군란(軍亂)은 옛날 없었던 큰 변고였다. 갑자기 내전(內殿)을 범하여 국휼(國恤)을 반포하고 중외(中外)에 상복을 입게 하기까지 하였다. 흥인군(興仁君) 이명응(李明應)씨와 김보현(金輔賢) 및 민태호(閔台鎬)가 모두 난리 중에 죽었다. 6월 군란이 일어났을 때 화란이 장차 중궁 전하에게 미치려하여 사태가 매우 급박하자 무예별감(武藝別監) 홍재희(洪在羲)가 몰래 등에 업고 피신하여 보은군(報恩郡)의 민가에 숨어지냈다. 8월에 조정에서 모시고 돌아와서 중궁전의 지위를 회복시켰다. 이 때부터 국상으로 인한 상복이 정지되었다고 한다.
대원군이 중국에 피랍되어 보정부(補政府, 補政은 保定의 오기)에 유폐되었으니, 잘못된 일을 변별하기 위함이었는데, 나라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여 하늘을 우러러 안전하게 귀환되기를 소망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