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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병인양요는 교주 장경일의 피살에서 그 사건의 발단이 시작되었다. 이 해 가을 서양의 병선이 연해 포구에 정박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영(沁營, 강화 진무영)이 지켜지지 못하고 패영(貝營, 貝은 浿의 오기, 평양감영)에서 급보를 알렸다. ≪서양병선이≫ 심지어 한양 인근지역까지 범접하여 서강(西江)에 주둔하자, 온 나라가 소동이 일어났다. 묘당에서 각 도(道)에 소모사(召募使)를 차하(差下)하여 한양으로 와서 외적을 토벌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호서 소모사는 전 승지 상공 이용직(李容直), 호남 소모사는 전 병사 이관연(李觀淵), 영남 소모사는 전 정언 이훈재(李暈載)와 전 교리 이우수(金禹洙), 해서(海西) 소모사는 전 현감 이민도(李敏道), 관서 소모사는 전 승지 선우업(鮮于澲), 관동 소모사는 전 현감 이주하(李周夏), 북관 소모사에는 전 오위장 마행일(麻行逸)이었다.

당시 나는 종사군관(從事軍官)으로 호서 소모영(湖西召募營)에서 불러 영동(永同)으로 속히 내달려갔다. -이승지공(李承旨公)의 본댁(本宅)이 영동에 있음- 소모사의 막하에 있으면서 주공(主公)과 밤낮으로 서양을 격파할 계책을 의론하여 혹은 격문을 빨리 보내 의병을 규합하거나 관문(關文)을 보내 여러 고을에 병마(兵馬) · 군량 · 마초(馬草) · 군기(軍器)의 정수(定數)와 분배(分排), 기일(期日) 등을 알려서 앞길에서 기다리게 하였다. 장차 행차가 병영(兵營)으로 출발하여 그길로 경성(京城)에 나아간다는 뜻으로 막 노문(路文)을 보냈는데, 영동(永同) · 황간(黃澗) · 청산(靑山) · 옥천(沃川) · 보은(報恩)의 수령들이 각기 관예(官隷)를 거느리고 와서 명령을 기다렸다. 그리고 소집에 자원하여 호응한 용사(勇士)가 수십 인으로, 무척 굳세어 그 기세가 매우 씩씩하였다. 경성에서 순영(巡營)으로 보낸 관문으로 인하여 순영에서 이문(移文)이 왔는데, 소모(召募)를 우선 정지하라는 내용이었다. 각 도의 소모가 즉시 중지되었고, 서양 배 역시 되돌아갔다. 그런데 이로부터 서양 배가 종종 우리나라에 출몰하였는데, 외국인이 나올 조짐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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