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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만국공보회가 시비를 분별한 말 [萬國公報會 辨說話]

조선의 의로운 신하가 본관(本館)에 글을 전합니다. 대략 말씀을 올린다면 갑오년 6월 이후부터 일본인이 조선의 내정을 대신 다스렸는데, 조선의 신하 중에서 명성과 위세가 뛰어난 사람은 모두 일본에 아부한 사람들입니다. 또한 각 부의 고문관은 모두 일본인이 허락한 사람이며, 돈과 곡식과 군대와 세금 등의 중요한 책임은 그들의 규찰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조선의 국왕은 권리를 모두 잃고 신주의 자리[尸位]조차도 없습니다.

을미년 윤 5월 사이에 일본공사 이노우에(井上馨)가 갑자기 국왕에게 아뢰기를 “조정의 인물을 낱낱이 살펴보면 대군주처럼 총명하고 어질고 지혜로운 분이 없습니다. 청하건대 대군주께서는 스스로 나라의 정사를 잡으십시오”라고 하고, 외국의 신하는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도록 고하자, 국왕은 그에게 다른 뜻이 있음을 의심하지 않고 기뻐하며 그대로 따랐습니다.

8월 20일 밤에 조선인 우범선(禹範善)과 이두황(李斗璜) 등 10여 명이 저녁 때 일본 교사소(敎師所) 훈련병의 대장으로서 그 휘하의 훈련병 500명을 거느리고 곧바로 궁궐 문을 침입하였고, 일본 군사가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이미 궁궐로 들어가서 우범선과 이두황의 역적 무리와 일본인 4∼5명이 칼을 뽑아 들고 궁궐로 올라갔습니다. 국왕과 왕비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하다가 비로소 급하게 뒤편의 누각으로 피했으나, 역적의 무리가 달려와서 칼로 치기도 하고 찌르기도 하였습니다. 왕비가 땅에 넘어지자 왕비의 머리를 베고 감추어 두었다가 석유를 시신에 붓고 불태웠는데, 타지 않은 것은 모두 연못가에 흙을 파고 매장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두 소리 높여 말하기를 “왕비가 달아났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때에 총리대신 김홍집, 내부서리 유길준, 탁지부대신 어윤중, 외부대신 김윤식 등의 무리는 본래 국모를 시해하는 일을 한 주동자들이고, 재물을 함부로 거두어 자기의 배를 살찌웠으며, 국권을 전적으로 관장하고 위세와 복을 마음대로 결정하였으며, 임금을 위협하여 제어하고 국모를 참혹하게 죽였습니다.

그 후에 3개월이 지나도 장례의 예가 없었고, 상(喪)을 거행하라는 명령이 없었으며, 일본인만을 믿고 태산처럼 의지하여 아부하고 아첨하며 못하는 짓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나라의 임금이 없게 되자, 도적이 도성문 밖에서 벌떼처럼 일어나서 밝은 대낮에 감히 혼자 길을 갈 수가 없게 되었으며, 사농공상이 탄식하고 한숨을 쉬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분노하여도 감히 분하다고 말할 수가 없었고, 조선에 있던 서양의 여러 나라의 사람들도 또한 분격하여 주먹을 쥐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또한 모두 이웃 나라의 내정이기 때문에 서로 돌아보며 감히 드러내 놓고 도울 수도 없었습니다.

이에 충성스럽고 의로운 선비 10여 명이 그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역적의 무리를 제거하고 약한 왕을 보호할 것을 생각하고, 국왕에게 비밀리에 아뢰어 영지(令旨)를 받았습니다. 드디어 10월 10일 밤 도성 밖의 친위대 900명을 감독하여 거느리고 대궐로 들어갔는데, 예상하지 않았던 역적의 무리가 궁궐 안을 차지하고 앉아 먼저 준비하고 있다가, 궁궐 밖의 군인이 들어오자 창과 포를 마구 발사하여 피가 낭자하였습니다. 저들의 세력이 대단하여 지탱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모두 해산하였습니다.

창의(倡義)한 여러 사람이 앞뒤로 생포되었고, 바다를 넘어 도망한 사람은 몇 사람에 불과하였습니다. 역적의 무리와 일본인을 신문지에 실어놓고 도리어 대서특필(大書特筆)하여 말하기를 “역적의 무리가 궁궐을 침범하니, 이는 충의와 반역이 서로 어긋난다. 충의와 반역을 명확하게 증명할 것은 곧 영국·프랑스·미국·러시아·독일의 여러 공사들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 조선의 위급함과 궁박함이 이러한 지극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만약 서양의 여러 나라로 하여금 대신 도모하여 조선국을 보호하고 도와주지 않는다면, 조선의 국왕은 모두 아침 이슬과 같게 될 것입니다.

주석
신주의 자리[尸位] 제사를 지낼 때에 신주(神主) 대신 시동(尸童)을 앉히던 자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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