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군수 허식의 상소 [永川郡守 許火式 上疏]
삼가 아뢰옵니다. 작년 8월 20일의 변란을 차마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바로 천지를 다하고 만고에 뻗쳐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일입니다. 신은 그때 3일을 통곡하며 충성스러운 분노를 이기지 못하였고, 복위(復位)와 복수하는 일로써 피눈물로 글을 지어 친히 내각에 바쳤으나, 비답이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구(舊) 내각의 역적의 신하들이 중간에서 엄폐하여 임금께 글이 보고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은 재주가 없고 배움이 얕아 시의(時宜)에 맞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소장을 올리던 날에 고향으로 돌아갈 계획을 이미 세웠는데, 처음에는 다만 비답이 내려오지 않은 이유 때문에, 이어서는 폐하께서 외국공사관으로 이어(移御)하신 일 때문에 신의 마음이 황공하고 위축되어 감히 물러가지 못하고 차가운 등불이 있는 여관에서 아직 우물쭈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달 5일 영천군수로 제수하는 명령이 갑자기 신에게 내려졌습니다. 가만히 삼가 생각하건대, 일월처럼 밝으신 폐하께서는 신과 같이 어리석고 용렬한 사람은 감히 이 책임을 감당할 수가 없음을 환하게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것을 비유하자면 마치 하늘의 비와 이슬 같은데, 가죽나무와 상수리나무처럼 쓸모가 없는 재목에게 그 은혜로운 혜택을 베풀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두 손을 잡고 영광스러움에 감사하는 한편, 이어서 송구하고 두려운 마음이 생기니, 앞으로 어떻게 그 만 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신은 구구하게 한 마디 우러러 아뢸 말씀이 있는데, 지금 조정에 하직 인사를 드리는 날에 분수를 넘는 것도 헤아리지 못하고 감히 충정을 말씀드리오니, 오직 밝으신 성상께서는 유념하여 살펴 주시옵소서.
아! 8월의 극악한 변란이 있은 이후 온 나라의 신하와 백성은 억울한 생각이 마음속에 가득 쌓여 죽으려고 하여도 죽을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다행인지 한 두 명의 조정의 신하가 외국공사관에 피해 있으면서 힘써 충성을 바치다가, 같은 해 12월 28일에 이르러 의로운 소리로 한 번 일어나 저 우두머리를 죽였으니, 천지신명이 누구인들 흔쾌하게 기뻐하지 않겠으며, 시골이 신하와 백성이 누구인들 춤추고 발을 구르며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한스러운 것은 그 나머지 역적들이 법망을 빠져나가 해외로 도망쳤으니, 이것은 마치 풀을 뽑는데 그 뿌리를 제거하지 못한 것과 같아, 훗날 화를 빚어낼 단서가 끝이 없게 될까봐 염려가 됩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밝으신 성상께서는 유념하시고 또 유념하십시오.
사람의 죄를 논하는 법은 공로는 공로이고 죄는 죄인데, 지금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안경수는 작년 10월 의거에 참여한 공로 때문에, 군부대신 이윤용은 작년 12월 역적을 토벌하는 일에 참여한 공로 때문에, 진실로 조금이나마 그들의 죄를 속죄하였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또한 그렇지 않은 점도 있습니다. 8월의 변란은 군부 훈련대의 난병(亂兵) 가운데에서 나왔는데, 그때 대신이 바로 안경수이며, 협판은 바로 권재형(權在衡)이었습니다. 손에 군권(軍權)을 장악하고 조종하는 것이 자신에게 있었고 그 군인이 난을 일으켰으니, 어찌 죄가 없을 수가 있겠습니까? 또한 과연 몰라서 보고하지 않은 것이겠습니까? 알고서도 보고하지 않은 것이겠습니까?
또한 그 당시의 경무사(警務使) 이윤용으로 말하면 정탐과 기찰을 담당한 직책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비록 사소한 일이나 예사로운 자취라도 철저하게 살펴서 막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더구나 흉악한 무리가 꾸민 음모는 하루저녁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닌 것이므로, 과연 몰랐기 때문에 보고하지 않은 것이겠습니까? 알고서도 보고하지 않은 것이었겠습니까?
만약 저 무리가 알고서도 보고하지 않은 것이라면 이것은 큰 반역이고, 몰랐기 때문에 보고하지 않은 것이라면 이것은 매우 밝지 못한 것입니다. 반역과 밝지 못한 것은 가볍고 무거운 차이는 있지만 지은 죄는 한 가지입니다. 그러하니 어찌 오늘의 자취를 덮어 버린 채 공로(功勞)만 논하고 그 당시에 저지른 범죄를 논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죄를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큰 벼슬과 중요한 직책을 주었으니 이것이 또한 무슨 의리입니까? 맑은 조정에서 인재를 등용하는 도리가 이와 같아서는 아니 될 것 같으니, 신은 절실하게 통탄스럽고 한스럽습니다.
또한 오늘날의 벼슬길을 말할 것 같으면 내직과 외직을 막론하고 모두 구 내각의 역적 신하에 의해 등용된 사람이라면, 비록 아주 작은 잘못이나 실수가 없더라도 진실로 마땅히 혐의를 피하여 물러나 두려워하고 반성을 해야만 선비와 군자가 출처(出處)하는 도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안팎을 돌아보면 외직이나 내직에서는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예의와 염치가 땅을 쓸듯이 남아있는 흔적이 없으니 어찌 진실로 한심하지 않겠습니까? 외직의 관찰사의 직임과 내직의 협판(協辦)의 직책은 더욱 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중요한 직책이니, 이를 감당할 만한 사람을 가려서 뽑는 것이 또한 어찌 어렵지 않겠습니까?
여러 해 전부터 23부의 관찰사와 각 부의 협판은 모두 구 내각의 역신(逆臣)의 손에서 배출되었습니다. 지금 혹시 결원이 생겨 바뀐 곳이 있지만, 함흥관찰사 김유성(金裕成), 평양관찰사 정경원(鄭敬源), 대구관찰사 이중하(李重夏), 새로 교체된 군부협판 백성기(白性基) 무리는 모두 역적의 괴수 김홍집의 심복이고 앞잡이입니다. 또한 정병하·유길준·조희연·권형진·어윤중·김윤식 등의 무리들과 배와 심장이 서로 이어져 있듯이 한 통속이 되어 매우 긴밀하게 일을 꾸며온 사람들입니다. 이는 단지 소신만이 아는 것이 아니라 조정의 신하 모두가 알고 온 나라가 모두 알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수많은 사람이 보고 있어 가리기가 어렵습니다.
근래에 들으니 근처의 지방에서 소요를 일으킨 백성들이 그것을 핑계대고 말을 퍼뜨려 말하기를 “아무개 관찰사와 아무개 협판은 모두 역신의 심복과 앞잡이다”라고 하는데, 조정에서 이들을 끝내 제거하지 않고 여전히 관직을 위임하고, 병권이 저들의 손아귀에서 좌지우지되며, 화폐가 저들의 부서에서 풀리기도 하고 묶이기도 하니, 나라의 재정이 어찌 위태롭지 않겠으며, 백성이 무엇을 의지하고 믿겠습니까? 이와 같은 말들이 한 번 전해지고 두 번 전해지면서 와전되어 서로 동요를 일으키니, 옛 사람들이 이른바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냇물이 넘치는 것을 막는 것보다 어렵다”라고 한 것이 이 때문입니다.
아! 저들 무리는 모두 대대로 나라의 녹봉을 먹은 신하이고 높은 벼슬을 해 온 족속입니다. 진실로 하나의 절반이라도 염치가 있다면 당장 벼슬을 그만두고 문을 닫아걸어 스스로 자책하는 것이 아마 잘못을 고치고 스스로 새롭게 되는 도리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지 않고 도리어 크고 좋은 집에 누워 좋은 음식을 실컷 먹으면서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욕심이 많고 악독하여, 은연중에 “누가 감히 나를 어찌하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속마음을 따져보면 하는 짓을 헤아릴 수가 없는데, 하물며 법망을 빠져나가 도망친 도적이 나라에 흩어져 있으니, 어찌 몰래 서로 내통하여 안으로 호응하고 음모를 꾸며 화를 초래할 염려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겠습니까? 『주역』에 이르기를 “재앙은 밖에 있으니 나로부터 도적을 부르는 것이다. 공경하고 삼가면 패하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진실로 오늘날에 거울로 삼고 경계해야 할 말입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밝으신 성상께서는 시원스럽게 결단을 내리시어 안경수·이윤용·권재형·김유성·정경원·이중하가 담당한 직책을 빨리 체직하십시오. 그리고 국법으로 죄를 논하여 죄에 따라 처벌하여 한편으로는 삼강과 오상을 지탱하도록 돕고 벼슬길을 맑게 하는 방도로 삼으시고, 한편으로는 염치를 독려하고 밖으로부터의 재앙을 막는 방편으로 삼으십시오. 그렇게 되면 진실로 조정에는 다행이고 백성에게는 복이 될 것입니다.
만약 신이 아뢴 말이 미치고 망령된 말로 귀결되어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신이 비록 용렬하지만 저 무리와 함께 조정의 명부에 이름을 섞어 올리고 싶지 않습니다. 더구나 은혜롭게 임명된 영천군수는 곧 대구부(大邱府) 이중하의 관할입니다. 제가 어찌 감히 저 사람의 통제를 따르면서 달가운 마음으로 사무를 볼 수가 있겠습니까? 신이 맡고 있는 직책을 즉시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는 은혜를 내려주셔서 사사로운 분수를 편안하게 해 주십시오.
임금의 비답에 “말한 것이 혹 근거가 있기는 하지만, 반드시 다 그러한 것은 아니므로 그대는 사직하지 말고 부임하라”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