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도사 이종렬의 상소 [前都事 李宗烈 疏]
삼가 아뢰옵니다. 삼강(三綱)에는 군위신강(君爲臣綱)이 삼강 중에서 으뜸이고, 오륜에는 군신유의(君臣有義)가 오륜 중에 으뜸이니, 이것은 천지의 떳떳한 법이고, 옛날과 지금에도 통하는 의리입니다. 진실로 사람의 신하가 되어 이것을 범하는 사람은 죽이고 용서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단지 그 악행을 미워한 것일 뿐만 아니라 기강을 유지하고 교화를 돕고 지탱하기 위해 엄정하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인들이 정치를 논하여 말씀하시기를 “반드시 명분을 바로 세워야 한다”라고 하였으니, 명분이 바르게 서면 만사가 다스려지고, 명분이 문란하게 되면 만사가 어지러워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 갑오년 6월 이후부터 입헌정치(立憲政治)에 대한 논의가 멋대로 행해져 난을 일으키는 역적의 무리가 뒤를 이어 일어났고, 작년 8월 20일에 이르러 윤리와 상식이 무너지고 하늘과 땅이 뒤집혀 바뀌었으니, 이는 진실로 만고에 없던 변란입니다. 이 달 23일에 이르러서는 저 무리들의 흉악하고 반역을 꾀하려는 마음이 더욱 더 방자해지고 더욱 확장되어, 거만하게 서명을 하면서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꺼리는 마음이 없으니, 천지신명을 속이고 사람들의 눈과 귀를 현혹시킬 수 있다고 말할 만합니다.
관직을 버리고 돌아가 의리를 붙잡은 탁지부대신 심상훈(沈相薰)과 관직이 해임되면서까지 참여하지 않고 우뚝 자신의 의지를 세운 내부대신 박정양(朴定陽)의 이름을 뒤섞어 쓰고, 한 세상을 몰아 모두 나쁜 세상으로 만들려고 하였으니, 그들이 먹은 마음과 계획이 아! 또한 교묘하였습니다.
더구나 전(前) 외부대신 김윤식과 전 탁지부대신 어윤중은 모두 높은 벼슬을 한 세족(世族)으로서 나라의 은혜를 후하게 입어 분수에 넘게 재상의 반열에 올랐는데, 그렇다면 감격스러움과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이 마땅히 다른 사람보다 뒤지지 않아야 하거늘 김홍집·유길준의 무리와 함께 뱀처럼 서리고 지렁이처럼 얽혀서 올빼미가 울면 부엉이가 대응하듯 서로 호응하면서 빈틈없이 일을 꾸며 못하는 짓이 없었습니다.
김윤식은 8월의 사변 이후에 각 나라의 공사에게 공문을 보내 알리면서 속일 수 없는 정황을 속여 “이번의 일은 진실로 종묘사직과 백성을 위해서 한 것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하였고, 또 일본공사에게 공문을 보내 알리면서 “우리 군병이 진실로 이러한 죄를 범하였다”라고 하면서 앞장서서 담당하여 난리와 역적의 일을 저지른 죄과를 달게 받겠다고 말하니, 그의 임금도 안중에 없는 부도덕한 모습은 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바이고, 만 사람의 눈을 가릴 수가 어렵습니다.
어윤중은 10월에 임최수(林最洙)·이도철(李道轍)이 거사하였을 당시에 서리군부(署理軍部)로서 힘껏 저들을 쫓아내고 흩어지게 하여 나라의 원수를 갚을 생각은 하지 않고 도리어 흉악한 무리의 편이 되었으며, 또한 탁지부의 은화를 꺼내어 역적의 괴수인 이진호와 이범래 등의 무리에게 상까지 주었으니, 저 무리와 더불어 배와 심장을 서로 대한 것처럼 한 통속임을 환하게 볼 수가 있습니다.
결국 임금의 대가(大駕)가 이어(移御)하고 관군의 토벌이 한창 행해질 때에 저들이 과연 범죄가 없다면 어찌 변복을 하고 허겁지겁 달아나 숨었다가, 마침내 백성에게 살해되기에 이르렀겠습니까? 그러한 행적의 원인을 비록 자신에게 말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해명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 당시의 우두머리 중에는 혹은 죽거나 혹은 달아나기도 하였는데, 오직 이 두 역적만은 죄명을 더하지 않았으니 이는 형벌의 적용이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빨리 관리에게 명하여 김윤식에게는 극형을 시행하시고, 어윤중에게는 추가로 죄를 처벌하십시오. 그러한 이후에야 귀신의 분함을 씻을 수 있고, 백성들의 뜻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내각·내부·군부에 속한 벼슬아치들은 김홍집·유길준·조희연의 심장과 앞잡이였던 사람들인데, 아직도 이렇게 편안히 보통 사람과 똑같이 관직을 맡고 있다면, 손바닥을 어루만지며 속으로 비웃으면서 “누가 감히 나를 어찌하랴?”라고 말할 것이니, 이로부터 이후에는 요사스럽고 음흉한 무리가 더욱 꺼리는 일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이 또한 형벌이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빨리 관리에게 명하여 하나하나 조사하여 판단한 다음 마땅한 법으로 다스려서, 법과 기강을 바로잡고 명분을 바르게 잡으십시오.
아! 온 나라의 신하와 백성은 모두 환어(還御)가 아직도 지체되고 있는 것과 국장의 기일을 선택하지 못한 것을 가지고 떠들썩하게 의심하고 두려워하지만, 신은 역적을 토벌하는 일이 이것보다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춘추(春秋)』의 의리에는 나라의 역적을 토벌하지 않았으면 장례에 대한 기사를 남기지 않는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국장을 미처 거행하지 못한 것은 『예기(禮記)』에 또한 근거할 만한 것이 있고, 환어 또한 반드시 만전을 기대한 후에야 거행하여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역적을 징계하고 토벌하는 이 한 건은 빨리 시행하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그런데 몇 달을 귀 기울여 들어보아도 이에 대한 대대적인 조치나 시행이 있을 것이라는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으니, 신은 그것이 이상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지금 나라의 형세[國勢]는 두렵기가 마치 매달린 깃발의 술[旒]처럼 위태롭고 백성의 심정은 들판에 타들어 가는 불길보다 위급한데, 성상께서는 임시로 거처하고 계시니 이는 진실로 신하들이 정성과 힘을 다해야 할 때입니다.
고위 관직의 신하와 대대로 벼슬해 온 신하들이 대부분 고향에 있으면서 달려와 잠시 문안한 후 곧 각자 집으로 돌아가, 막연히 마치 조정과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면서 한 가지 꾀를 내거나 하나의 계책을 꾀하면서 국가의 근심을 자신의 근심으로 생각하지 않으니, 분수와 도리에 있어서 대단히 개탄스럽습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특별히 엄격한 칙령을 내리셔서 거듭 깨우치시고, 불러서 좌우에 두고 자문하는데 대비하도록 하십시오. 폐하께서는 또한 시원스럽게 결단하여 분발해서 일어나도록 신하들을 꾸짖고 타일러, 그들로 하여금 옛날의 해이하고 게으르며 쇠미하고 약한 습성을 다시 답습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법과 기강을 바로잡고 명분을 바로 세우십시오. 신이 미천한 말단 산관(散官)으로서 지위에서 벗어나 함부로 말하였으니 매우 참람합니다.
그러나 송나라 신하인 주희(朱熹)가 말하기를 “국가가 위급할 때 결단을 내릴 일이 있으면 비록 벼슬을 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라고 하였으니, 신은 이 때문에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점점 위태로워지는 것을 편안하게 하고, 막힌 운수를 바꾸어 태평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오직 ‘발강강의(發剛强毅)’ 하는데 달려 있지, 머뭇거리며 구차하게 있는데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오직 폐하께서는 판가름하시되, 사람 때문에 말을 폐하지 않으신다면 국가에 매우 다행이겠으며, 종묘사직에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임금의 비답(批答)에 “진실로 그대의 말은 공적인 분노에서 나온 것임을 알겠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