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무사가 조병식의 탐학을 조사하여 장계를 올림 [宣撫使採探 趙秉式 貪虐狀聞]
의정부에 도착한 공문서와 하교이다. 곧 양호선무사 어윤중의 장계를 보니, 임금의 윤음(稐音)을 널리 선포한 후에 보은의 비도들이 이미 모두 귀화하여 해산하였으나, 충청도 전 관찰사는 질서를 바로잡고자 지역을 조사하여 책임을 묻기를 더욱 각별하게 하였는데, 무리들이 모인 이유를 아뢴 장계를 잃어버렸고, 이미 올린 어사의 의견은 그대로 내버려둘 수가 없으니, 잠시 먼저 붓으로 지워버리는 법[形削之典]을 시행하십시오. 탐학과 불법에 이르러서는 이미 말하기를 “찾아 조사하지 못했다”라고 하니, 다시 선무사로 하여금 실상에 따라 특별히 조사하게 하여 장계로 아뢰게 해야 합니다.
비답(批答)하여 윤허한 전교(傳敎)입니다. 전교한 내용의 말뜻을 받들어 살펴 시행할 일입니다.
신은 이 달 초 9일에 공주목에 도착하여 전 충청도 관찰사 조병식(趙秉式)이 탐학한 정황은 대충 조사해 보았는데, 관찰사로 임명된 이후 정령(政令)이 몹시 가혹하고 끝없이 가렴주구(苛斂誅求)하여 진실로 근래에는 들어보지도 못하였습니다. 사방으로 번진(藩鎭)을 살펴보고 마땅히 두터운 임금의 은혜에 보답할 것을 생각해야 하는데, 다시 충청도 관찰사에 임명되었으니, 어찌 옛날의 허물을 덮으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의 가문은 충성스럽고 절개가 있으나, 그의 사람됨은 탐욕스럽고 마음이 더러우며, 그의 벼슬은 현달하지만, 그의 행동은 협박하여 물건을 빼앗으니, 돈을 탐하는 냄새가 세상에 넘쳐 득과 실을 걱정하는 대부(大夫)가 된 것이 애석합니다. 욕심이 절절 넘치고 땅을 석권하여 거리끼고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으로 자처합니다. 그가 내리는 정령을 말하면 당나라와 주나라의 종이에 쓴 비밀 공문서처럼 귀신도 짐작할 수 없어 다듬지 않은 모난 나무로 특별히 형장(刑杖)을 만들어 목숨을 곧바로 판결합니다. 죄인을 상급 관리에게 넘기는 것이 진실로 관례이지만, 재산을 몰수하고 죽이는 것을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것과 같이 하고, 군교(軍校)와 차인(差人)은 계속 보내 만나는 사람들마다 난리를 당한 것과 같습니다. 계속 거두어 들이는데 그 근거를 캐보면 공납이 아닙니다.
사람의 좋지 못한 일을 들추어, 불효하고 화목하지 못하고 간음한 것 등 각종 명목으로 죄안(罪案)을 얽어 만드는데, 처음에는 사람을 보내어 겁을 주어 공발협박하다 그 뜻을 이루지 못하면 끝에는 곧바로 그들의 산업(産業)을 몰수합니다. 잡기(雜技), 송속(松贖), 토호(土豪), 임채(任債), 각 읍 아전들의 경비, 공전(公錢)을 징수하고 남은 것, 옛날에 경채(京債)를 멋대로 징수한 것, 계를 핑계한 돈[契錢], 송사로 빚진 것 외에 거두어 가로챈 것, 직함을 빌려주고 받은 돈[借㗸錢], 종이의 징수를 지정한 돈[差紙錢]은 많은 읍이 재정을 늘리는 명목인데, 심하게 거두어 끝이 없습니다.폐단을 보충한다고 핑계대면서 혹은 이곳저곳의 장부에 옮겨 적고, 사람의 귀와 눈을 가려 그 재물이 머물 곳을 궁리하였는데 모두 개인주머니를 채운 후에 그만둡니다.
그것을 조사하여 찾아낼 때에는 슬픈 저 무고한 사람들은 죄인의 발과 목에 채우는 쇠사슬 사이에서 구르면서 하느님을 부르고 아버지를 부르지만 막막하여 구제될 수가 없고, 죽으려 하여도 또한 할 수가 없습니다. 이들 모두 대대로 임금이 남긴 백성인데, 이를 참지 않으면 어느 것을 참을 수 있겠습니까? 백성들이 그들의 산업에 애착을 갖고 지키려는 것은 목숨보다 심함이 있으니, 이것이 있으면 살아갈 수가 있고 이것을 잃어버리면 죽기 때문입니다. 하루아침에 천금의 자본과 백 무(畝)의 토지를 이리의 입에 집어넣고 그들 처자를 이끌고 길거리를 헤매면서 돌아갈 곳이 없게 되었으니, 이것은 진실로 누가 시켜서 그렇게 된 것입니까?
동학을 금지하고 단속한다고 말하는 것은, 말은 비록 이단을 배척한다고 하면서 생각은 모두 재물을 훔치려는 것입니다. 전 영장 윤영기(尹泳璣)는 귀신과 같은 거간꾼이 되어 그 사이를 조종하였고, 전 공주진 영장 이존필(李存馝)은 손가락질하며 사주하고 멋대로 불러들여 그로 하여금 그 무리들을 끌어들이도록 하여, 돈이 있는 사람은 재산을 탕진하고서 다행히 달아나게 무사하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혹은 죽고 혹은 유배시킵니다. 또한 백성이 조금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있는 사람은 동학의 이름에 멋대로 집어넣어 모두 없는 죄를 교묘하게 꾸밉니다. 이에 그 무리들이 혹시 참지 못하여 그 무리를 불러 모아 같은 소리로 진영 아래에 운집하여 복수하려고 합니다. 이 관찰사의 속마음은 겁을 주려고 하면서 다시 침학하지 않는다는 뜻을 각 읍에 글로 써서 보내었고, 그 후에는 묵인하여 허락하였다고 핑계대면서 더욱 거리낌이 없게 되었는데, 올 봄이 가장 심하였습니다.
영진(營鎭)의 공문서를 구해 살펴보고, 읍과 마을에서 전해들은 소문을 조사하여 대개 갖게 된 것입니다. 남몰래 주고받은 것으로, 몰래 수갑을 채워 빼앗은 것, 서울 사람이 지방의 읍에서 어렵게 채방(採訪)한 것, 영속(營屬)들이 같은 악한 무리와 짜고 서울 집에 숨겨놓은 것은 신이 진실로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공문서의 전한 소식에 의거하여 명백한 것을 서로 참작하여 모아 수를 집계하니, 이것은 열 개 중에 두세 개에 불과합니다.
각 읍의 진휼을 보충하기 위한 돈 61,600냥은 전부 진휼에 사용하지 않고, 온궁(溫宮)의 수리비라고 한 40,000냥이며, 산성을 수축하는 비용이라 한 20,000냥은 계산하여 마감하였는데, 온궁의 수리비는 온양군(溫陽郡)이 보고한 실제 수는 8,000냥에 불과한데 이 또한 징수한 돈을 조사하여 옮긴 것이며, 산성의 공사는 이미 각종 명목으로 함부로 징수하여 기록된 돈은 거짓으로 기록한 것이 사실입니다. 보은군의 대동전(大同錢)은 3,400냥이고, 옛날의 경채(京債)라고 칭한 것은 향리(鄕吏)를 잡아 가두고 빼앗았으나 공납을 충당하기 어려웠고, 태안(泰安)의 기속전(技贖錢)은 66,000냥인데, 탐학한 수령을 풀어주고 멋대로 징수하여 한 읍이 거의 텅 비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가장 애통하고 분한 것은 공주의 백성 오덕근(吳德根) 등의 마을 터를 빼앗고자 별업(別業, 별장)을 운영하면서 간음하였다고 꾸미고 진영에 여러 오씨(吳氏)를 붙잡아 가두고 위협해 죽이고 그 가산을 몰수했으며, 군대를 보내 징소리를 울리면서 춥고 눈 오는 겨울밤에 그 남자의 부인을 내쫓았는데, 죽은 늙은이와 어린이가 5∼6명이며 촌락이 텅 비게 되어 풀과 나무들도 서로 불쌍하게 여깁니다.
공주의 김현익(金顯益)·박태순(朴台淳)·고성룡(高成龍), 은진(恩津)의 최성숙(崔成叔), 홍주(洪州)의 박계화(朴桂和), 홍산(鴻山)의 김팔서(金八瑞) 등은 혹은 집안에 간음한 사람이 있다고 칭하고 혹은 직함을 빌려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였으며, 아산(牙山)의 김상준(金相俊)은 죄수로 만들어 공주 진영에 옮기고 수 만 냥을 내도록 책임지우고, 형구로 신문하고 주리를 틀었는데 그 백성이 이행하지 못한 것 같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을 끊었습니다.
연산(連山)의 전 감역(前 監役) 이익제(李益濟)는 그 아들과 이웃 여자가 간통했다고 꾸며 이웃 여자를 죽게 하고, 우선 빼앗은 뇌물이 1만 냥이며, 진잠현감 이시우(李時宇)를 시켜 이웃 여자의 시체를 파서 검사하고 옥에 가둔다고 협박하여 연산과 은진의 좋은 논 20여 석락(石落)을 빼앗아 재산을 탕진하게 하였습니다. 지방의 읍에 공문을 보내 각각 양안(量案)을 작성하여 해당 민에게 되돌려 주었습니다.
그밖에 백성의 토지와 보(洑)를 함부로 빼앗아 자기 소유로 한 것이 있으며, 개인의 빚을 일가에게 징수하고, 화를 인척에게 연좌시키는 것도 있으며, 뜻대로 사람의 무덤을 파서 다른 사람의 입장(入葬)을 허용하였으며, 이미 무덤을 파고는 그로 하여금 다시 장례를 치르도록 한 것도 있었습니다. 교체되어 돌아간 후에도 남은 위력이 아직도 두렵게 하여, 예산의 부잣집은 가격을 지급하지 않고 강제로 차지하였으며, 천안의 옛 무덤은 표시를 하여 모두 파냈습니다. 또한 뇌물을 받은 범죄가 탄로날까봐 두려워하여 김제홍(金濟弘)을 죽이고, 그 마을을 협박하여 함부로 입을 열지 못하게 하였으니, 비록 그가 선하지 못한 것을 가리고자 하여도 더욱 그 계획이 날마다 옹졸하였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도내 공사전(公私錢)을 훔치고 빼앗은 당백전(當百錢)이 644,391냥이고, 엽전은 108,390냥 정도인데, 인명(人名)에 따른 돈의 액수는 특별히 모두 책으로 엮어 올려 보냅니다.
이 관찰사는 고관대작의 이름난 문벌 출신으로 몸은 덕으로 교화하는 지위를 계승하여 진실로 임금의 은혜를 갚으려고 하여 먼저 백성을 보호해야 하거늘, 오직 가렴주구를 일로 삼아 나라의 은혜를 저버리고 백성의 원망을 샀으니, 그 죄상은 의정부가 아뢰어 처리할 것을 청합니다. 이 관찰사가 불법을 자행한 것은 한 영(營)에서 저지른 것으로, 백성들에게 서로 간악하고 찾아내서 한 도(道)를 시끄럽게 하였으니 징계하여 경계해야 합니다.
전 영장 윤영기와 이존필, 공주의 신천서(愼天瑞), 영리(營吏) 고복은(高福殷)과 서형쾌(徐亨快)는 그의 매와 개가 되어 옥에 가두어 뇌물을 거두면서, 모든 것을 간섭하고 피해를 백성에게 끼쳤으니, 청컨대 모두 담당 벼슬아치와 관찰사의 죄상을 참작하고 감안하여 처단하시기 바랍니다.
비도들이 이미 해산하여 조사할 안건은 끝났으니 신은 마땅히 다시 갈길을 가겠습니다. 사신(使臣)이 되어 보잘 것 없음이 사람의 말에 이미 나왔으니 진실로 감히 도성의 문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물러나 삼가 사저에서 살려고 합니다. 공손하게 임금의 처벌을 기다립니다. 이러한 연유를 모조리 장계에 적어 곧바로 올립니다.